올바른 해결책
오시타리 유시 드림
그때는 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머리를 좀 자르러 미용실에 가는 일은 일상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며, 그 김에 염색을 하든 파마를 하든 그때의 기분에 따르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코우노 나츠키에게는 인생의 중대사가 결정되는 것만큼의 중요도를 가지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잔뜩 상해 지저분해진 긴 머리에서는 벗어나면서 일명 거지 존이라 불리는 어중간한 짧은 머리는 피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중간한 길이를 고수하느니 파마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으나 며칠도 못 가 풀려버릴 걸 생각하면 그도 답이 아니었다. 꼭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고장이 났는지 온도가 제멋대로 계절을 넘나들던 헤어 아이론이 결국은 사달을 내서 머리 중간을 태워 먹은 일만이 꼭 이유는 아니었다. 밤새 시끄러운 옆집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쳤기 때문만도 아니었고, 방 청소를 하던 중에 손톱 끄트머리가 갈라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한창 이력서를 넣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지만 꼭 그래서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츠키를 짓눌렀다. 한 가지만 있어도 신경을 거스를 법한 사안들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짜증은 배로 치솟았다.
이 짜증이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은 온전히 데이트 약속 덕이었다. 남자친구의 스케줄에 맞추어 늦은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기에, 몇 달 치 스트레스를 한껏 몰아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상으로는 여유로웠다. 추스르지 못한 감정 대신 머리부터 수습하고자 미용실에 올 정도의 심적 여유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예약 없이 찾아온 손님에게 주어진 기나긴 대기시간은 새끼손톱만 하던 여유조차도 앗아갔다. 머리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았건만 약속 시각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차라리 오늘은 만나지 말고 내일 보자고 할까?
이쯤 되니 절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남자친구가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여기서 데이트 약속을 취소했다가는 남은 시간마저 우울함의 바다에서 헤엄칠 게 뻔했다. 그러다 또 이런 꼴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불쑥 자리를 차지했다. 머리가 이런 꼴이든 말든 남자친구는 보고 싶었지만, 바로 그 사람이 남자친구이기 때문에 ‘이런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십여 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괜히 껐다 켰다를 반복하던 메시지 앱에서 새 메시지가 떠올랐다. 예정대로 퇴근한다는 메시지가 반가운 것인지 우울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동시에 미용사가 나츠키를 불렀다. 나츠키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미용실이라 좀 늦을 것 같아. 미안.」
오전 중에, 그리고 이른 오후에 있었던 일을 이미 전해 들었으니 미용실에 남자친구가 올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그 외의 어떤 것도 예상과 달랐다. 결국 의도했던 머리 길이보다 더 많이 머리를 잘라야 했던 점도 그랬고, 그 모습이 생각보다 더 많이 낯설어서 서러워진 점도 그랬다. 이런 머리 모양과 이런 기분으로 남자친구를 봐야 한다는 점은 더더욱 그랬다. 머리카락과 함께 마음도 좀 가다듬고 새로운 기분으로 데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유시.”
결국은 눈물이 터졌다. 미용실 앞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시타리 유시는 미용실의 입구를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자신을 보고도 딱히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가 자연스레 품으로 나츠키를 끌어당겼다.
“오늘 힘들었제?”
“짜증 나, 다 서러워.”
“괘안타.”
어쨌든 미용실에서는 정성스레 드라이까지 해주었고, 이를 알아차린 것인지 오시타리는 평소 하던 대로 머리를 토닥이는 대신 어깨를 토닥였다. 나츠키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훌쩍였다. 평소와 같은 온기가 안심이 되었고, 어쩐지 눈물이 더 쏟아졌다. 아무 말 없이 큰 손으로 도닥이는 속도가 심장 박동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리듬은 안정감을 되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안 괜찮아, 머리가 이게 뭐야.”
“와, 맘에 안 드나?”
“몰라. 그것도 모르겠어.”
오시타리의 손에는 언제 꺼냈을지 모르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눈물을 닦아내는 손길이 하나하나 섬세해, 새삼스레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도 있는 기제. 남친 뒀다 뭐 하노. 이럴 때 안아 달라 카고, 하소연 들어 달라 카고, 맛난 거 먹자 카고 그러는 기래이.”
나츠키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오시타리는 한 번 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마주 끌어안자, 가슴에 걸려 있던 답답한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단숨에 녹아내릴 짜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하소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은 뚫린 셈이었다.
“온종일 하소연 들어줄 거야?”
“마, 말만 하래이.”
피식 웃는 오시타리를 보고 같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미 한 번 터진 감정이라 눈물이 계속 뚝뚝 떨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오시타리의 말대로, 맛있는 걸 먹고 하소연을 하고 난 뒤에는 꼭 안아 달라고 할 것이다. 그게 이 순간의 가장 올바른 해결책이었다.
“일단, 이 머리가 예쁘다고 해줘.”
“물어 뭐 하노. 내 눈에는 맨날 예쁘다 안 카나.”
“그치만 취향이 아니면 어떡해.”
“내는 늘 낫쨩이 취향이었데이.”
만족할 만한 대답이었다. 오시타리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마저 훔쳐낸 나츠키의 얼굴이 미소로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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