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28 :: 키쿠마루 에이지 생일 축하해!

 

* 연예인 패러렐 주의 (테니뮤 패러렐에 가깝습니다...)
* 테니뮤 세컨드 시즌이 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무대는 참으로 조용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는 이렇게 적막했던가 하는 생각이 키쿠마루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평소에 공연하던 곳보다 더 커서 그런 게 아닐까.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서 천천히 사방을 멀리 둘러보았다. 이 무대에서부터 저 끝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자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누군가 보면 참 쓸데없는 걸 고민한다고 여길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키쿠마루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저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무대 위에 선 우리가 어떤 크기 정도로 보였을까?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을 쭉 뻗으면 닿을 것처럼, 파랗게 관객석을 수놓은 팬라이트의 불빛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상은 한참을 뛰어올라가야 하는 거리가 공연 중간에는 전혀 멀지 않았다. 신나게 웃었고 즐거웠고 더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 쓸쓸했다. 이젠 이 무대에 설 일은 없겠구나. 쓸쓸했고, 그보다 조금 더 이상했다.

 

 「잘 부탁해!」

 

  에이지라고 부르면 돼, 하고 웃었을 때 자신을 향해 똑같이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어 준 건 오오이시였다. 얘가 앞으로 내 파트너구나. 누구나 처음엔 다 긴장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키쿠마루 에이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긴장보다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무대에 더 들떴다. 다만 테즈카 앞에서는 잠깐 긴장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모시로가 어찌나 자지러지면서 웃어댔는지 잊을 수가 없었다. 키쿠마루는 무대를 위한 훈련 기간 동안 유난히 모모시로가 힘들어했던 이유에 분명 테즈카의 복수가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게 어느새 몇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몇 년을 똑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했다. 그다지 긴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 마지막을 맞이했다. 아직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대 하나가 끝났으니 며칠 휴일을 가진 다음에, 다시 연습장에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뛰고, 새 안무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며칠 뒤에는 분명히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게 뻔했다. 으악, 지각이야! 하고. 하지만 곧 연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앉은 채겠지. 며칠 뒤를 떠올리니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키쿠마루는 홱홱 고개를 저었다.

 

 “에이지, 여기서 뭐 해?”
 “그냥 보는 중.”

 

 키쿠마루는 자신의 옆 자리를 팡팡 쳤다.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오이시가 다가와 앉았다. 커다랗고 빈 무대 위에 두 사람이 있었다.

 

 “별로 끝난다는 실감이 안 난다냥.”
 “나도 그래.”
 “이 멤버가 다 같이 모여서 또 연습하기는 아마 어렵겠지?”

 

 대답하는 대신 오오이시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당연하게 해 왔던 모든 게 바뀌게 될 것이다. 키쿠마루는 그게 어딘지 자꾸 자신의 마음을 간질여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항상 인사는 “내일 봐!”거나 “다음 연습 때 봐!”였는데. 물론 다른 무대에서 다시 보게 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모두가 다 같이 다른 무대에서 만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이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고 나서주던 사람들. 다시 코끝이 찡했다. 웃으면서 끝내자고 말한 건 무대 위에 있던 자신들이었다. 최대한 웃었다. 물론 정말 다른 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모든 무대가 끝나고 난 지금 느끼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행복한데 섭섭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복잡하고도 미묘해 보이는 그 표정을 오오이시는 놓치지 않았다.

 

 “복잡한 기분이지?”
 “오오이시도 그러냥?”
 “응. 무척.”

 

 키쿠마루는 앉은 자세에서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아직 빼놓지 않은 파란색 손목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지. 정말 고마워.”
 “응?”
 “넌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어.”
 “뭐, 뭐다냥, 갑자기!”

 

 왠지 부끄러워져서 손사래를 쳤지만 키쿠마루도 내심 기뻤다. 다행이다.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키쿠마루의 표정을 보더니 오오이시는 또 피식 웃었다. 오오이시의 시선도 관객석을 향했다. 아까와는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만이 내려앉은 관객석을 보는 눈이 어딘지 반짝거려 보였다.

 

 “마지막까지 최고를 보여줬으니까 우린. 아쉬움 같은 거 남기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걸로 괜찮을 거야.”
 “우와, 오오이시 지금 엄청 오글거려.”
 “아, 그런가.”

 

 머쓱하게 오오이시가 머리를 긁적였다. 키득키득 웃었지만 키쿠마루도 그 말에 동의했다. 진짜 이게 정말 최후, 마지막의 마지막이니까 남은 걸 전부 다 쏟아 부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온 힘을 다했다. 좀 더 잘 할 걸, 그런 종류의 감정은 남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끝났다.

 

 “그래도 진짜 열심히 했어.”
 “절대로 못 잊을 거야, 관객석.”
 “그치? 엄청 파래서, 막 여기서부터 저어기까지 다 파래서 진짜 신기했어.”
 “엄청 예뻤지.”
 “응응! 감동이었다냥. 쪼금 울 뻔 했어.”
 “노래 부르다가도 울 뻔 했으면서.”
 “아냐!”

 

 키쿠마루는 잔뜩 볼을 부풀렸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도 절대 울지 말아야지, 웃는 얼굴로 끝내야지,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걸로 진짜 마지막이야!”하고 말할 때에 울컥 솟아오르던 감정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그건 그냥 평범한 대사가 아니었다. 정말로 오오이시와 부르는 마지막 듀엣곡이었으니까. 펑펑 울어버리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 순간엔 아찔했다. 어라, 울면 안 되는데.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더랬다.

 

 “뭔가 우리 연습장 몇 시까지 맞지? 이런 얘기 안 하겠구나 싶어서 이상하다냥.”

 

 오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쿠마루가 그 뒤에 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젠 이렇게 만날 볼 수는 없겠지. 정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하지만 오오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오오이시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가자.”
 “응?”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니까.”

 

 키쿠마루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다. 주인공? 무슨 주인공을 말하는 거야? 주인공은 내가 아닌데. 멍하니 오오이시를 쳐다보던 키쿠마루의 표정이 점점 환해졌다. 아, 내 생일 얘기하는 거구나. 내 생일 파티 하자는 거구나. 그렇지, 참. 이 무대가 끝난다고 해서 영영 못 만날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니잖아. 바보 같은 고민을 했단 생각에 웃음이 났다.

 

 “당연하지!”
 “무대는 끝났지만 우린 계속 만날 거니까.”
 “당연한 소릴!”

 

 키쿠마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기지개를 피고 허리도 한 번 쭉 폈다. 그리고는 오오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오이시가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무대 위에 섰다.

 

 “생일 축하해, 에이지.”
 “고맙다냥!”
 “그럼 이제 내려갈까.”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냥!”

 

 

(201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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