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의 이유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엔딩 후

- 이미 결혼한 사이!

 

 

 졸졸졸. 개울물이 흐르는 미약한 소리가 귀에 꽂혔다. 베르나데타는 황급히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소리를 따라가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개울가 저 위쪽에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베르나데타의 발이 더 빨라졌다. 졸졸졸 소리가 점점 커졌고 그만큼 제 숨소리도 커졌다. 검은색 덩어리 같던 것은 이제 명백히 사람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찾는 이가 맞았다. 짙은 청록색 머리카락이 물을 머금은 탓에 더 어두워 보였다.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베르나데타는 허겁지겁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벨레트 씨!”

  망토 역시 물을 머금기는 마찬가지라 무게가 상당했다. 끙끙대며 그의 몸을 돌아 눕히는 데 성공한 베르나데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였다.
  얼굴이 너무나 창백했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은 꼭 죽은 사람의 그것 같았다. 공포가 온몸을 엄습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자신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인지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숨을 확인하고자 코 앞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개울물에 엎어져 있던 탓인지 그의 코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손에 걸리는 것이 바람인지 그의 숨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벨레트 씨?”

  쇳소리 같은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에라도 그가 눈을 떠주기를 빌었다. 간절함은 길어지고 제 호흡은 짧아졌다. 가뜩이나 젖어 있는 그의 망토 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다시 이름을 부르고 싶었으나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꽉 조여서 숨도, 소리도 겨우 뱉어내는 수준이었다.

  “안 돼……”

  손으로 마구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차갑게 식은 피부를 체온으로 녹여주기라도 하면 그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눈물이 비산해 어디로 흩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안 돼…… 안 돼, 벨레트 씨……”

  그리고 번쩍 눈이 뜨였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익숙한 천장은 베르나데타를 빠르게 안정시켜 주었고, 자신이 악몽을 꾸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귓가가 축축했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실제로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가슴이 쾅쾅 뛰어서 아플 지경이었다. 거칠어진 숨을 한 번 크게 뱉어내고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저녁에 들었던 이야기가 꿈에 나온 모양이었다. 창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문득 사라졌던 5년 동안에는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했더랬다. 벨레트는 평소와 같은 태연한 얼굴로 정말로 자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소티스가 깨우기 전까지는 자신이 자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제는 제법 잘 웃게 된 벨레트가 ‘사실은 죽어 있었던 것을 여신의 힘으로 부활시킨 것인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농담을 한 당사자이자 베르나데타의 남편인 벨레트는 곤히 자고 있었다. 완벽히 가시지 않은 불안감이 슬그머니 또 고개를 드는 것 같아 베르나데타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처럼 그의 코를 드나드는 숨이 베르나데타의 손을 간지럽혔다. 조금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베르나데타는 남편의 볼에 손을 얹었다. 체온이 느껴졌다. 저보다는 조금 낮지만 확실하게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이었다.

  자는 모습도 참 사랑스러워.

  그런 생각에 무심코 미소를 지으며 베르나데타가 벨레트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럴 때면 그는 부드럽게 눈을 뜨고서는 베르나데타와 눈을 맞추고 미소 짓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피곤한 것인지 눈을 뜨지 않았다. 꺼지지 않은 불씨가 다시 확 기세를 키우듯, 불안감의 늪이 다시 베르나데타를 집어삼켰다.
  벨레트는 그것을 용병 시절의 버릇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위를 경계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벨레트는 잠귀에 매우 밝았다. 베르나데타가 약간만 뒤척이거나 그와 닿아도 번쩍 눈을 뜨고는 했다. 베르나데타와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그런 버릇이 없어지고는 있었다. 다만, 지금 베르나데타의 상황에서는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머릿속으로 외웠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벨레트와 결혼하면서부터 조금씩 없어지던 부정적인 생각이 한 번에 떠밀려 나와 베르나데타를 잠식하는 것 같았다.

  “벨레트 씨.”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이름을 불렀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렀다. 눈물이 턱에서 똑 떨어질 때, 벨레트가 아주 부드럽게 눈을 떴다.

  “베르나데타.”

  약간은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였다.

  “미, 미안해요.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악몽을 꿔서, 벨레트 씨가 눈을 안 떠서, 너무 차가운데 눈을, 눈을 안 뜨고, 숨도 안 쉬고, 무서워서……”
  “괜찮아, 베르나데타.”
  “깨보니까 벨레트 씨는 자, 잘 자고 있고, 그래서 안심했는데 또 이번에는, 제, 제가 쓰다듬었는데도 안 깨니까 또 무서워져서……”

  남편이 부드럽게 제 이름을 부르자 무서운 감정은 단번에 사라졌다. 하지만 억눌렀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 사이로 훌쩍 소리가 뒤섞였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이불을 적셨다. 벨레트는 몸을 일으켜 베르나데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등을 토닥이며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당연하고 편안하게 느껴져서 그래. 내게 닿는 게 네 손이라면 그건 편안하고 기분 좋은 거지, 위협이 아니니까.”
  “그, 그런 거예요?”

  훌쩍이면서도 그런 대답을 뱉어냈다. 벨레트가 후, 하고 웃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살포시 그의 등에 얹어놓은 손바닥을 통해 맥박이 느껴졌다. 한때는 느끼지 못했던 맥박이 이제는 또렷하게 손을 타고 전해졌다.

  “응. 베르나데타는 내게 안식처야. 편안하고 행복한 곳.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마. 아마 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아직 적응하는 중이라 상태에 난조가 있는 걸지도 몰라.”

  베르나데타를 품에서 조금 떼어낸 그가 투박한 손으로 베르나데타의 볼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벨레트의 말대로 그의 손은 편안하고 기분 좋았다. 위협이라고 생각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 그대로 그의 손에 제 얼굴을 맡기고 베르나데타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벨레트 씨.”
  “카스파르한테 들었는데 꿈은 반대래. 꿈에서 내가 죽었다면 아마 나는 장수할 운명일지도 몰라.”

  결국은 풋 웃음이 나왔다. 벨레트도 따라 미소 지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밖은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손을 꼭 잡은 채, 한 부부는 그들의 편안한 안식처에서 나란히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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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일본 풍설 웹온리에서 레트베르 신혼 앤솔로지가 나올 건데

아무리 그래도 일본어로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 참가는 못 하지만

나도 신혼으로 뭔가 쓰고 싶다~! 하고 썼는데

내용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서 어... 어라...?

하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신혼의 달콤함이 있으니

아무튼 신혼인 걸로 해둡시다

 

그래도 아쉬워서 행복한 플롯도 하나 더 짜뒀으니

조만간 써보겠습니다....

 

앗 맞다 완전 딴소리인데

번역기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니 혹시 몰라서...

편하게 보시라고 적어두는 고유명사

ベレト 벨레트

ベルナデッタ 베르나데타

カスパル 카스파르

이건 소설에서는 안 나오지만 커플명^^

レトベル 레트베르

이것도 소설에는 안 나오지만

日本では略して「風花」韓国では「風雪(풍설)」になってます

 

여러분 물 건너의 저와도 함께 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S2

 

 

 

어느 부부의 어떤 하루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현대 AU

- 이미 결혼한 사이!

 

 

 이불 속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인지 눈물을 훔치는 소리인지 불확실했기에, 벨레트는 이불을 들쳐 보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바로 그 고민을 내려두었다. 경험으로 이럴 때는 굳이 파고들지 않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 이불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아내와는 같은 집에 살게 된 지도 1년이 지났다. 사귀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는 시간. 상대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언정 배려하는 방법은 분명히 알 만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벨레트는 이불을 들추는 대신, 다정하게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베르나데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팽팽하게 펼쳐져 있던 이불이 약간 느슨해졌다. 슬그머니 내려가는 이불 뒤에서 베르나데타의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눈까지 빼꼼 드러낸 베르나데타가 벨레트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빨간 것을 보니 예상대로 운 모양이었다.

 

 “울지 마.”

 “으으, 그치만…… 억울해요. 기껏 마감도 다 끝냈는데, 오늘 피크닉하러 가기로 한 것만 기대하면서 열심히 썼는데…….”

 

 요 몇 주간 베르나데타는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출근하는 벨레트와 달리 베르나데타는 프리랜서 작가였다. 작가라는 일은 예술에는 문외한인 벨레트의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마감 시기가 가까워져 오면 베르나데타가 골머리를 앓는 일이 많았다. 이번엔 특히 더 그랬다. 몇 달 전부터 원하는 대로 내용이 안 풀린다며 울먹였는데, 마감이 다가와도 그게 제 맘처럼 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끙끙 앓은 탓인지, 마감을 마친 후 베르나데타가 드러눕고 말았다. 메일을 보냈다고 환하게 웃은 지 두 시간 만에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열이 오른 것이었다.

 

 “피크닉은 다음 주말에도 갈 수 있어. 원한다면 평일에 휴가를 낼 수도 있고.”

 “오랜만에 벨레트 씨랑 알콩달콩할 수 있었는데…….”

 

 금세 또 베르나데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래도 아내는 아픈 것보다 데이트가 취소된 것이 더 억울한 듯했다. 벨레트는 베르나데타의 이마에 얹어놨던 물수건을 치우고 새 물수건을 얹어주었다. 얼굴에 난 식은땀을 살살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마에 입도 맞추고 싶었지만, 감기가 옮으면 안 된다고 빽 소리칠 것이 분명해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잔기침도 하는 아내의 목까지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병간호를 해주는 알콩달콩 이벤트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놀랐다. 아무래도 베르나데타가 쓰는 소설을 옆에서 쭉 읽었기 때문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눈물이 고여 있던 베르나데타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알콩달콩 이벤트’라는 말이 베르나데타의 가슴에 확 꽂혔을 것이었다. 벨레트는 허튼 공격을 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 그건 기뻐요. 헤헤…….”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벨레트는 똑같이 그녀에게 웃어주었다.

 

  “다 나을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정말요? 약속이에요?”

  “응, 약속해. 밥도 먹여주고 땀도 닦아주고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고 잠들 때까지 토닥여줄게.”

 

 베르나데타가 배시시 웃었다. 부부가 된 지 1년. 예전 같았으면 부끄럽다며 손사래 칠 말에도 배시시 웃는 것을 보니 새삼 부부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베르나데타가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손을 뻗었다. 벨레트는 거기에 손을 얽었다. 열이 나서인지 평소보다 손이 더 뜨거웠다. 제 손도 뜨거운 편이라 썩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벨레트 씨 손, 기분 좋아…… 이렇게 잡고 있어요.”

 

 머뭇머뭇 부탁하거나 과도하게 고마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던 벨레트가 수도 없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아내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응, 계속 여기 있을게.”

 “다 나으면 꼭 피크닉하러 가요. 꽃구경도 하고 도시락 싸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응. 둘이서 담요 하나를 덮고서 손도 꼭 잡고 해 지는 것까지 보자.”

 

 이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꼭 잡은 채, 효과를 발휘하는 약 덕분에 꾸벅꾸벅 눈이 감기기 시작한 아내를 보는 것처럼.

 벨레트는 이제야 제대로 잠이 든 아내가 편하게 누울 수 있게 자리를 정돈했다. 아무리 힘든 마감 작업을 해도 좀처럼 아픈 법이 없던 아내가 드러누워서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아마 열이 올라 정신이 없는 게 아니었다면, 베르나데타도 벨레트가 당황해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베르나데타가 푹 잠든 것을 재차 확인한 후, 벨레트는 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이제부턴 당황한 마음에 서두르다 이것저것 엎지르고 넘어뜨려서 엉망이 된 거실을 정리할 차례였다.

 

 “최대한 조용히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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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걸 쓰려고 했는데...?

베르가 아프네요?

하지만 행복한 부부의 일상 같은 느낌으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된 것은 제가 테니뮤 원정을 다녀오자마자

미친 마감 러시를 마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저는 아프지는 않지만 근육통과 손목 통증에는 시달리고 있습니다 ㅎ

레트베르 사랑해 결혼해라

 

 

 

 

생일 축하의 의미

- 2023 베르나데타 생일 축하 기념

- 2부의 언젠가

- 우울한 분위기

 

 

 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자연스레 소름이 돋아 몸을 움츠렸다. 보호 장구는 생명을 보호할 수는 있을지언정 식어버린 몸을 추위로부터 지켜주지는 않았다. 아마 전장에 서 있는 다른 병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애써 단전에서부터 힘을 주어 소리를 짜냈다.

 

  “모두 철수!”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부상자를 부축해 하나둘 발을 옮겼다. 베르나데타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축축이 젖은 장갑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쳐서 몸이 무거운 것인지, 실제로 옷이 물을 머금어 무거운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힘을 다 긁어모았다. 다리를 다쳐 질질 끌며 걷고 있는 병사를 부축하며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이 짠 전략은 언제나 유효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은 늘 발생했다. 겨울 날씨에 맞지 않게 추적추적 비가 내린 것도 그런 돌발 상황에 해당했다. 비바람은 가뜩이나 비거리가 짧아진 화살의 방향마저 틀어놓았다. 궁수 부대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전투는 승리했다. 전략이 뛰어난 덕도 있었고, 상대 부대 역시 갑자기 내리는 비에 우왕좌왕한 덕도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미끄러워진 바닥 때문에 상대 부대의 대열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부대를 진격시켰다. 멀리서부터 단숨에 다가와 급습하는 어쌔신 부대 상대로는 모험이었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비거리가 짧아졌다면 물리적으로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단거리용 활까지 장비하고 있던 궁수 부대는 재빠르게 장비를 바꿔 들고 상대를 겨누었다. 전술은 먹혀들었고 그들은 승리했다. 아군 병사에도 크고 작은 부상자가 다수 나왔지만 패하지 않았다.

 

  이것을 승리라 불러도 될까?

  매 전투가 끝나면 떠오르는 생각이 파도처럼 베르나데타를 집어삼켰다. 자신의 선택으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 현실이 괴로웠다. 예전처럼 방에 틀어박혀 자수나 놓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수고했어, 베르나데타.”

  “선생님.”

 

  부상병을 의무병에게 맡기고 돌아서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에 튄 피가 비에 뒤섞여 선생님의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아마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몰골일 테지만 새삼 소름이 돋았다.

 

  “이겼구나.”

 

  이것은 과연 승리일까.

  그런 의문에도 베르나데타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 사람의 역할이 컸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이 사람을 믿고 함께했다. 제게 늘 적절한 관심을 표하며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베르나데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겼다고 해도 되는 걸까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되물었다.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허투루 대답하거나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빗소리와 발소리, 각종 무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이건 어떤 정적에 속했다. 얼마간의 정적 후, 선생님이 입을 뗐다.

 

  “이긴 거야. 이긴 자가 살아남는 거니까.”

 

  그러면 나의 선택으로 원치 않게 죽은 이들은?

 

  “너는 성장했어. 단순히 이론이나 숫자로서 전쟁을 파악하지 않고 네 선택의 무게를 통감하며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괴로워도 선택하고 나아가는 너에겐 살아남을 자격이 있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까지 읽은 듯 대답하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쳤다. 기운이 없었다.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곧바로 목을 휘감아오는 죄책감에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살아남은 것을 기뻐해도 되는 것일까. 

  지끈지끈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베르나데타.”

  “네?”

  “생일 축하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온 탓에, 진흙 속에 파묻힌 듯 무겁기만 했던 고개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오늘이 며칠인지조차 잊고 있었으니 생일이란 사실도 당연히 기억하지 못했다. 전장에 나선 순간부터 생일은 사치스러운 소리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있자니 선생님이 덧붙였다.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비가 와서…… 가르그 마크에 돌아가서 줄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베르나데타는 어안이 벙벙했다. 생사의 경계를 가르는 행위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며 한없이 늪에 가라앉던 몸이 단숨에 단단한 평지로 끌어 올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일을…… 축하해도 되는 걸까요?” 

  “응. 적어도 나와 다른 친구들은 너를 축하하려고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눈물이 솟았다.

 

  “이렇게 누군가가 죽어도요?”

  “응. 그래도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가까운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그런 삶의 한 과정이겠지.”

 

  태어났다는 사실을 축하받는 행위가 곧 살아 있다고 외치는 행위인 것만 같았다. 이겼노라고, 내가 살아남았노라고 공표하는 셈처럼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신에게 너는 살아남아야 마땅하고 타당성마저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저도 그래도 되는 거예요?”

  “응. 너도 살아남은 사람이니까.”

 

  아마 이것은 선생님 나름의 위로일 것이었다. 고민하지 말고 너의 삶을 살라는 말 대신 생일 축하를 건네는 것이 선생님 방식의 위로일 테고, 그것은 동시에 베르나데타에게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위로였다.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빗방울에 섞여 티 나지 않을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생일을 맞이한 것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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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야 생일 축하한다...!!

아니 축하하는 거 맞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우울해도 되는 건가 싶고

베르가 성장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런... 이런 우울한 글이 나왔군요

그래도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사랑해 베르야....

 

 

 

10월 29일 제8회 대운동회

테니스의 왕자 쁘띠존

<테니스의 왕자의 공주님이 바로 나야>

by Lina

 

신간 및 구간 재판을 위한 선입금 예약 안내 페이지입니다

신문물에 낯선() 사람이다 보니 티스토리 안내가 되었네요

 

문의사항이 있으신 경우

트위터 @linajeain731 로 찾아오시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안내사항

폭발적으로 일이 들어와서 일을 쳐낸 뒤에 마감 직전에 편집을 몰아서 했더니

무려 모든 책에서 제 티스토리 주소에 k를 빠뜨리는 ㅋㅋㅋ 멍청한 실수를 했습니다.

책에 직접 수정하기는 좀 그래서 수정된 주소를 넣은 포스트잇(or 메모지)을 함께 넣어드릴 예정입니다.

(책에 쓴 주소: tsubasa.tistory.com → 원래 주소: tsubasak.tistory.com)

 

 

 

신간

 

 

<세이가쿠 테니스부의 코케시는 어디로 갔을까>

세이가쿠 올캐러 / 미스터리 / 공포 요소가 약간 있음

테니스부 부원들이 괴담에 휘말리며 겪는 미스터리한(?) 이야기

A5 / 120p / 10,000원

 

신간은 예약 수량+현장 판매분 2~3권 정도로만 가져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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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쿵쿵 울렸다. 쪼개질 듯한 통증에 키쿠마루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한 손으로는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여전히 흐릿한 가운데 보이는 책걸상이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교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만, 익숙한 교실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교실 뒤편 게시판의 모습이 낯선 탓에 금방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난 키쿠마루는 눈을 잠깐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두통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왜 여기서 잤더라?”

깜짝 놀란 키쿠마루가 번쩍 눈을 떴다. 분명 자기 목소리였는데, 자신은 입을 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젠 시야가 또렷했다. 홱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다른 책걸상 사이로 동그란 머리가 톡 튀어나온 게 보였다. 그 정수리는 익숙한 빨간색이었다.

“누, 누구세요?”

키쿠마루가 자기도 모르게 질문했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방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카락 아래쪽이 저와 똑같이 바깥을 향해 솟아 있었다. 고양이 같은 눈매와 입술마저 똑같았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상대는 반소매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운 것도 저와 똑같았다. 눈앞에 서 있는 상대는 또 다른 키쿠마루 에이지였다.

“으아악! 너 뭐야!”

이런 상황에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었다. 물론, 머릿속에 금방 두어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무튼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심코 손가락질까지 해버렸지만 그런 예의에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저쪽은, 그러니까 아마도 도플갱어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중략)

 

“선배.”

갑자기 딱딱하게 굳은 에치젠의 목소리 때문에 후지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에치젠을 돌아보았으나 에치젠은 목이 굳어버린 듯이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후지도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후지 역시 못 박힌 듯 앞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선배, 옆에 있는 걘 뭐예요?”

천하의 후지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은 제 후배이자 테니스부의 루키, 에치젠 료마였다. 하지만 저 앞에 서서 자신에게 부루퉁한 질문을 던진 이도 에치젠 료마였다. 불가사의한 일을 겪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후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에치젠을 쳐다보았다. 황당한 것인지, 낭패감이 든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에치젠이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저 앞에 선 다른 에치젠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에치젠이 저와 또 다른 에치젠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둘 중 하나는 가짜겠지?”

“제가 진짜예요!”

“웃기시네, 내가 진짜거든요?”

당연하게도 두 명의 에치젠 모두 본인이 진짜라 주장했다. 일단 겉모습만 봤을 때는 다를 게 전혀 없어서 누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목소리도 똑같았고, 말투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누이라도 나타나주지 않는 한, 후지가 현재 두 명의 에치젠 중 진짜를 가려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럼 누가 진짜인지 알아낼 때까진 같이 다닐까?”

“네? 그런 게 어딨어요.”

“누가 봐도 제가 진짜잖아요.”

두 명의 에치젠이 동시에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후지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웃으며 다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증거가 없잖아.”

옆에 선 에치젠도, 앞에 선 에치젠도 입술이 부루퉁하니 튀어나왔다. 하지만 후지의 말에 반박할 도리가 없는지 결국, 앞에 선 에치젠이 투덜대며 둘에게로 다가왔다. 이제 후지는 양옆으로 귀여운 후배를, 그것도 같은 후배를 하나씩 끼게 되었다. 살다 보니 참 별난 경험을 다 하게 된다는 잡생각을 하며, 후지는 발을 옮겼다.

 

 

 

 

 

구간

 

재판 예정인 아래 책들은 최소 4년~최대 10년() 전의 책이므로

현재 저의 캐해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용이나 문장은 건드리지 않고 맞춤법과 오탈자를 수정할 예정이며

폰트 등 내용과 관계없는 편집상의 수정이 가미될 수 있습니다

 

만약 기존 책을 가지고 계신다면(감사합니다)

새로 추가되는 내용이나 바뀌는 내용은 없으니 새로 구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간은 재판 예약이 들어온 분량만 뽑을 예정이므로

원하시는 분은 꼭 예약을 부탁드립니다

행사를 너무 오랜만에 나갔더니 최소 수량이 있다는 것을 깜빡하여 그만....

<얼음꽃 피는 곳에서>를 제외하고 모두 2~4권 정도의 여유분과 함께 갑니다!

 

 

 

<벚꽃 흐드러진 곳에서>

에치젠 료마 x 류자키 사쿠노

A5 중철 / 24p, 소설 /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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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피는 곳에서>

효테이 올캐러 동양 패러렐

A5 떡제 / 192p→160p 소설 / 10,000원

(편집 수정으로 페이지 수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주의

인쇄 당시, 공백을 지운다는 것을 깜빡하고 아래와 같은 상태로 인쇄를 넘기는 바람에

실제 내용에 비해 페이지 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새로 편집하면서 해당 공백을 지울 예정이니 페이지 수가 많이 줄어들더라도

내용에는 아무 차이가 없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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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음꽃 피는 나라

 

올해도 변함없이 얼음꽃이 화려했다. 물론 진짜 그런 꽃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이 나라에서는 깊은 겨울이 찾아오는 것을 얼음꽃이 화려해진다고 표현했다. 유난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겨울에 피는 꽃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게 뻔했다. 여기저기 피어난 꽃에 서리가 내려앉아서 마치 얼음으로 된 꽃이 핀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히요시는 그 얼음꽃이라는 표현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한 겨울, 꽁꽁 얼어붙은 얼음 속에서도 생명력을 꽃피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매우 강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히요시는 어릴 적부터 곧고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늘 스스로를 단련해 왔다. 누구보다도 올곧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 꿈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 때문에 좌절되었을지라도 여전히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이젠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원할 뿐.

 

“진짜 할 거야?”

“그럼 농담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타키상.”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국왕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꽤 하네.”

“어설프게 할 거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뭐야, 벌써 준비 다 했어?”

“아뇨,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히요시의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11월 초, 에이세츠(永設)국은 이미 한겨울이 시작된 후였다. 마구 비벼대는 타키의 두 손이 붉었다. 두 사람이 밟고 있는 언덕은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이세츠의 수도를 내려다보기에는 충분했다.

 

“어때, 사람은 많이 모았어?”

“생각보다 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더군요.”

“지금 아토베 국왕이 정치를 하기 시작한 건 열 두 살 때부터였으니까.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 예전에 비해 살기 힘들어진 것도 그렇고.”

“중요한 건 시기입니다. 적절한 정보를 얻어서 시기만 잡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어요.”

“말이야 쉽지.”

 

다시 한 번 타키가 숨을 뱉어내었다. 하얗게 피어오르던 김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그때까지도 손을 비비고 있던 그는 그 손을 양 볼로 옮겨갔다.

 

“안 추워? 들어가자.”

“그러죠.”

 

히요시의 발밑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간밤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히요시는 왕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눈 덮인 왕성의 지붕은 화려하고, 화려했다.

 

*

 

“여어~ 히요시~”

 

저 멀리서부터 무카히가 손을 흔들어대었다. 왜 저렇게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거지, 저 사람은. 한참을 위로 올라가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저명한 학자로 통하는 무카히 가(家)였다. 하지만 지금 히요시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 유명한 무카히가의 장남이면서도 학문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학문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오히려 동생 쪽이었을라나. 도장에는 항상 그렇듯 오시타리도 함께 있었다. 검을 휘두를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도장에 와 있는 것일까. 오시타리는 늘 무카히의 옆에 있었다. 어쩌면, 독서에 좀 더 흥미가 있는 오시타리를 무카히가 억지로 끌고 오는지도. 히요시는 오시타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무카히가 데려온 사람일 뿐, 그 이상 어떤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 있는 정보라면 여기저기서 수집해 온 것들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오시타리 유시를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히요시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꼈다.

 

“와 계셨군요.”

“오늘은 좀 늦었네?”

“제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오오~ 연모하는 여자라도 생겼냐?”

“생각하는 수준이 딱 그 수준이시군요.”

“뭐라고?”

 

무카히가 먼저 목검을 꺼내들었다. 히요시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늘 이렇지.

 

“좋아, 승부다!”

“몇 번이나 하지만 제가 이기잖습니까.”

“그런 녀석이 무과에서 몇 번이나 떨어지냐? 나도 단박에 붙었는데.”

 

칼날처럼 날아오는 히요시의 시선을, 무카히는 애써 빗겨내었다. 히요시에게 있어서 금기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카히는 자꾸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말았다. 그치만 저 녀석 기어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놀리고 싶어진다구. 오시타리가 무언의 질책을 하는 것에 무카히는 속으로 구시렁댔다.

 

“그나저나 왜 시시도는 안 온대?”

 

무카히가 볼멘소리를 하는 사이, 히요시는 목검을 꺼내들었다. 그가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휙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게 히요시는 한 동작, 한 동작을 이어갔다. 어떤 상황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평정심이었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싸움터에 나가더라도 질 일은 생기지 않는다.

 

“오늘 회의라 안카나.”

“뭐? 근데 우린 왜 여깄어?”

“왕성 드간 건 새로 진급한 소장뿐이래이.”

 

머리 위로 목검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치고, 검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서 다시 한 번 같은 자세를 반복.

 

“뭐야, 진급했다고 상이라도 주나.”

“그리 부럽나.”

“하나도 안 부럽거든. 그래봤자 나랑 똑같은 계급인데 뭐가 부럽냐.”

 

왼쪽 위에서부터 사선으로 베어 들어간 후에, 이어서 횡단으로 베기.

 

“곧 다 소집한다 카드라.”

“어디로 갈 지 드디어 정해지는 거야?”

“그래봐야 니랑 내는 여 있겠제.”

“재미없게, 변방에도 좀 나가보고 싶다!”

 

배부른 소리. 머리 위에서부터 내려치는 즉시 몸을 돌려 횡단으로 베고, 다시 한 번 사선으로 베기. 지금 히요시가 상대하는 가상의 적은 오시타리였다. 가장 최근에 했던 대무(對武)에서 오시타리는 의외의 수로 찔러 들어와 히요시를 당황하게 했었다.

언제나 의외의 전략을 꺼내놓는 사람, 오시타리 유시. 그가 변방으로 나가게 될 확률은 한 없이 영에 수렴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주의의 아토베 국왕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바로 저 오시타리 유시였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무카히에게 들은 것들. 그런 신뢰를 받는 장군이 변방으로 나갈 일은 없고, 당연하게도 무카히 가의 자식을 내보낼 리도 없다. 그렇다면 변방으로 가는 건 새로 진급한 시시도상일 가능성이 높군.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은 최대한 빨리 왕성 근처에서 사라져주는 것이 좋다. 오시타리까지 변방으로 나가준다면 더 좋겠지만 히요시는 가능성 없는 일에 목매며 희망을 걸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아, 맞다, 시찰 나간댔지? 그건 우리도 갈 거 아냐, 그치?”

“모른데이.”

“야, 유시~ 뭐 들은 거 없어?”

“없데이.”

 

역시나 오늘도 조심성 없이 말을 꺼내는 것은 무카히였고, 그 대화를 중단시키는 것은 오시타리였다. 시찰이라. 히요시는 이 도장을 찾았다. 자신이 수련을 한 도장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수석 도장답게 왕성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카히처럼 쓸모 있는 정보를 흘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럴 시간 있으믄 좀 더 움직이라 안카나.”

“그렇게 말 안 해도 제대로 하고 있다, 뭐.”

 

투덜거리던 무카히가 히요시의 맞은편으로 섰다. 히요시보다도 작은 체구를 가진 무카히는 몸이 날쌘 편이었다. 히요시가 한 동작을 하고 있으면 두 번째 동작을 이미 하고 있는 속도. 빠르다고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무카히의 그런 빠른 동작들은 상대방을 현혹하기에는 충분했다.

빠르게 무카히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그에 맞추듯 히요시의 검이 움직였다. 장단을 맞추듯 옆으로 위로, 사선으로 직선으로 검을 그어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것은 마치 춤과도 같았다. 커다랗게 호를 그리던 목검이 공중에서 깨끗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무카히가 가볍게 튀어 올라 뒤로 물러났고, 히요시는 발에 힘을 주어 자세를 유지했다. 잠시 서로 눈을 맞춘 채로 꼼짝을 않다가 다시금 목검이 움직였다. 쨍그랑 소리가 아닌 탁탁, 울리는 맑은 소리. 마당에 금세 활기가 넘쳤다.

자리에 앉아있던 오시타리가 합세하려는지 손에 쥔 서책을 덮었다. 다른 낱장보다 두꺼운 재질로 만들어진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서책을 곱게 내려놓고 오시타리가 일어섰다. 그는 빈손이었다. 성격답게 느긋한 걸음걸이로 그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무카히와 히요시가 몇 번이고 목검을 부딪치는 사이로 들어왔다.

 

“야!”

“더 빨리 몬 움직이나.”

“이게!”

 

그 순간만큼은 히요시도, 무카히도 같은 마음이었다. 두 사람이 휘두르는 목검 사이에서 오시타리는 눈 한 번을 깜빡 않고 스르르 움직였다. 커다란 동작도 없이, 가볍게 목을 꺾거나 팔을 살짝 들어 올리고 다리를 치우는 것만으로 그는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이 사람, 역시 기분 나빠. 완벽하게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 사이, 오시타리와 눈이 마주쳤다. 안경알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눈이 마주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 동안 남색 눈동자는 그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목 뒤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히요시는 목검을 비스듬히 쳐 내렸다. 예상 했다는 듯, 오시타리가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여전히 오시타리와 눈을 맞추며, 히요시는 목검을 거두었다.

 

“아, 뭐야, 벌써 끝내?”

“됐습니다.”

“히요시, 기대할끼구마.”

 

마당에서 벗어나 도장으로 들어가려던 히요시가 우뚝 멈춰 섰다. 오시타리는 그 알듯말듯한 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놀리자는 건지, 정말로 기대하겠다는 건지 그의 속내는 아무리 해도 정확히 짚어낼 수가 없었다. 이건 다 내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대답하지 않고 히요시는 발을 떼었다. 하극상을 이루어주겠어.

 

 

 

 

<악마가 눈 뜰 때> 상, 하

릿카이 올캐러 판타지 패러렐

A5 떡제 / 상: 130p→140p, 하: 136p→148p 소설 / 총 20,000원

(상, 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트로만 판매합니다)

 

기존 편집에서 글자 크기 및 자간, 줄간격을 모두 줄여서 밟아넣었던 관계로

글자 크기 및 줄간격 등을 수정하여 페이지가 늘어났습니다.

추가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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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쫓긴다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당연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리 만무했다. 뒤쫓아 오던 발소리는 사라져서 간신히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머릿속이 산소와 이산화탄소 분자로 가득 차 뇌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색색거리는 숨을 가라앉히려 몇 번이나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걸로 아마 스무 번째던가. 그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센 것만 스무 번이므로 그 전에도 쫓겼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는 도대체 자기가 쫓기기 전엔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가 스스로에 대해 아는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 그가 쫓기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 것 마냥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반쯤 헤진 얇은 겉옷을 입은 채였다.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거리였다. 벽을 짚은 손바닥은 상처투성이였고,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머리가 울렸다.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다 마주친 사람은 상냥하게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어왔었다. 도움을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무심결에 그는 손을 내밀었다. 상대방 남자가 자연스럽게 그의 허리에 손을 감았을 때였다. 찰나의 순간 온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힘을 느꼈고, 상대방 남자는 골목 저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황당했다. 내가 그런 건가? 그를 더 무섭게 만든 것은 상대방의 반응이었다. 강렬한 힘에 날아간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들었다. 그렇게나 상냥하게 말을 걸어오던 사람은 이제 누가 보더라도 자신을 공격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조차 하기 전에―물론 자기가 누군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도망치기부터 해야 했다.

얼마나 뛰었는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허기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도 없었다.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주변에 보이는 먹을 것을 아무거나 훔쳐서 달아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뒤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는 지치면 아무 골목에서나 잠들었다. 우연히 지나친 전자제품상점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나서야 그는 자기가 얼마나 추레한 몰골인지 깨달았다. 남색 머리카락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먼지를 떼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고 싶다. 그는 잠시 물이 데워진 욕조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했다.

시선이 느껴져 그는 상상에서 벗어났다. 몸에서 냄새가 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머리가 매우 아팠다. 문득 이런 꼴로 커다란 거리에 서 있는 게 부끄러워졌다. 뒤돌아서던 그는 갑자기 귀에 꽂힌 한 단어 때문에 우뚝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통유리창 안에 전시된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방영 중이었다. 방금 전에 앵커가 ‘키리하라 아카야’라고 했는데. 그게 누구의 이름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확실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다른 말에 비해 그 이름만큼은 칼로 찌르듯 귀를 파고들었으니까.

[주점이 밀집한 뒷골목을 폭파시킨 이 20대 남성은 자신이 마법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남성은 화기성 물질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맨손으로 갑자기 불을 일으켰다고 하는데요. 세간에서는 이 남성이 마법사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나가 있는 미즈이시 기자 불러보겠습니다.]

마법사?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울림이었다. 저 사람은 정말로 마법사일까. 그렇다면 똑같이 알 수 없는 힘을 쓴 나도 마법사일까. 키리하라 아카야라는 이름은 매우 반갑고 친근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뉴스에 나온 그곳을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건물의 코너를 돌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을 이렇게 헤매야할지, 한숨이 먼저 나왔다.

 

(중략)

 

햇볕이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니오는 인상을 세게 찌푸리며 건물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언덕에 누워 굴러다니는 건 좋지만 걸어 다닐 땐 싫단 말이지. 더운 게 싫기 보다는 땀이 나는 게 싫었다. 니오는 오로지 바텐더의 말에 기초해 머릿속에 그린 지도를 따라 걷는 중이었다. 지도를 구해주겠다고 좀 더 현실적인 제안을 해주었던 바텐더를 무시한 게 후회가 되었다. 이 정도로 길을 헤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니오는 원래 비밀통로며 온갖 뒷골목을 헤젓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새삼 이런 데서 니오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건물 그림자에서 벗어난 니오는 한 손을 들어 이마 앞에 가림 막을 만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만 가득한 것을 보면 이곳이 맞았다. 일단 찾아오기는 제대로 왔는데. 그 놈은 어디서 찾는다? 무작정 이런 일을 벌인 키리하라 놈도 미친 게 분명했다. 그 미친놈이 원하는 대로 무작정 찾아온 자신도 미친 건 매한가지겠지만.

니오는 폭발의 흔적이 새겨진 길에 발을 들였다. 뚜벅뚜벅. 오로지 니오의 발소리만 건물 벽에 부딪쳐 되돌아 왔다. 니오는 작은 사거리 정 중앙, 움푹 팬 곳에 멈춰 섰다. 바로 이곳에 서서 마법을 썼을 것이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주변 건물을 휙휙 둘러보았다. 누가 봐도 휘황찬란하게 빛났을 간판들은 새까맣게 변해서 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을린 모습으로도 충분히 퇴폐미를 내뿜는 간판이 있는가 하면 정직하게 상호만을 박아놓은 간판도 있었다. 여기서 어떤 것이 키리하라를 건드려서 폭발하게 했을까.

“여.”

뒤돌지 않았지만 니오는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쳇 하는 소리가 니오의 귀에 들려왔다.

“기척 숨기는 데는 재주가 없나 보지, 미역머리?”

“미역이라고 하지 마라.”

뒤를 돌아보자 잔뜩 인상을 구긴 키리하라가 보였다. 니오는 키득 웃었다. 이미 키리하라는 온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었다. 꼭 쥔 주먹과 일그러진 표정, 그리고 금방 터져 나올 것처럼 키리하라의 뒤에서 일렁거리는 기운. 어차피 주변에 아무도 없을 테니 상관없었지만, 니오는 키리하라의 무식함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맨날 저런 식이면 여기 사람이 봐도 마법사인 걸 뻔히 들킬 것 같은데. 여태까지 혼자서 버틴 게 용하다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부름에 응답해 준 귀한 손님을 이딴 식으로 대접하는 건 어느 나라 예의냐.”

“처음부터 짜증나게 한 건 그 쪽이거든요?”

말 그대로 짜증을 내면서도 지적한다고 고치는 키리하라의 모습에 니오는 다시 웃고 말았다. 뭐야, 꽤 귀엽잖아. 언제나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녀석인지라 이런 모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니오는 키리하라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어보았다.

“뭡니까, 그 눈은.”

“미친놈이 아닌가 알아보는 중이지.”

“아, 지금 장난해요?”

“푸릿.”

“아, 됐으니까 빨리 돌아갈 방법이나 알려줘요.”

키리하라는 이 새로운 만남이 영 달갑지 않았다. 처음 보자마자 놀려대는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딘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리하라는 니오가 자신을 무시할 만큼 실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건 단순히 말투나 분위기 탓이 아니었다. 집안 대대로 신력을 물려받았으므로 상대방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졌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업이라면 겨우 배운 수준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이 능력은 자부할 만 했다. 다만 니오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하지는 못 했다. 아무리 신력이 있다 해도 그걸 판단하는 건 무리니까. 키리하라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실력이 어떤지 보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도 모르는데?”

키리하라는 더욱 세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도와주러 온 거 아니에요?”

“미쳤냐.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아오,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머리를 세게 긁다가 키리하라는 홱 돌아섰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오길 바랐는데 저런 이상한 인간이나 오고 말이야. 뒤쪽에서 니오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무시하자, 무시해. 저런 인간 말은 들을 필요 없어.

“궁금하지 않냐?”

갑자기 니오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려왔다. 게다가 몸이 꽁꽁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 제길. 누나가 그랬지. 낯선 곳에 가서는 경계심을 풀면 안 된다고. 손끝이라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온몸이 돌덩이 마냥 꼼짝하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욕이라도 된통 퍼부어 주고 싶었다. 몸이 풀리면 제일 먼저 저 허연 머리의 비웃는 낯짝에 주먹을 날릴 것이다.

“너희 부모님이 왜, 누구한테 죽었는지 생각도 안 해 봤어?”

이제 니오는 키리하라의 앞에 있었다. 아까 전의 능글맞게 웃던 표정은 싹 사라지고 날카롭게 빛나는 눈만 키리하라를 쏘아 보았다. 키리하라는 속이 뒤틀렸다. 그 이후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로 생긴 커다란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키리하라는 의식적으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나마 그것도 집안 잡기들을 몇 십 개나 부순 뒤의 일. 당장 살 길이 급급했던 지라 누나도 더 이상 그 문제를 논하지 않았다. 키리하라는 몇 달을 피해오던 문제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사쿠라 공방>

에치젠 료마 x 류자키 사쿠노

A5 중철 / 24p, 소설 /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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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인연>

오오토리 쵸타로 드림

A5 떡제 / 148p, 소설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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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으르렁대는 소리는 짙은 어둠 속에 흩어졌다. 방망이질치는 가슴 때문에 머리도 울렸다. 비 냄새에 피비린내가 뒤섞여 진동했다. 흙탕물이 다리에 튀었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지만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도와주세요.

머릿속을 지배하는 여린 목소리를 쫓아 달렸다.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꿀꺽 침을 삼켰다. 소리만으로는 근처에 도달한 것 같았는데 워낙 칠흑 같은 밤중의 숲이라 시야가 명확하질 않았다. 목소리는 지금이라도 끊어질 듯 가냘팠다. 가느다란 생명줄을 놓칠세라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어디에 있어?

깨갱 소리가 귀를 찔렀다. 발이 절로 빨라졌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빗물에 미끄러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더 빨리.

「안 돼!」

나무 꼭대기만큼 높은 곳에서 노란 눈이 빛났다.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에조늑대 발밑의 강아지 역시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웬만한 나무줄기 못지않게 굵은 에조늑대의 다리가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잽싸게 몸을 피해 강아지를 향해 달려갔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 강아지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발을 보면서도, 제 몸과 비슷해 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강아지를 품으로 확 끌어안았다.

「이러다 죽겠어요! 제발요!」

에조늑대의 커다란 이빨이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확 찢어진 입이 벌어졌다. 번개가 으르렁 울었다.

 

(중략)

 

유이는 튕겨져 나오듯 몸을 일으켰다. 손으로 짚은 바닥이 너무 푹신해서 더욱 기겁했다. 놀라서 뚫어져라 쳐다보니 다행히도 오오토리의 흰 털이었다. 코끝이 찡했다. 기절한 유이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일부러 개의 모습으로 있는 듯 했다. 손에 힘을 풀어 부드럽게 털을 쓸어내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익숙한 집이 보였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이는 번쩍 정신이 들어, 미끄러지듯 오오토리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마당을 밟기 무섭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쵸타로! 얼른 인간 모습으로 바꿔!”

목소리가 절로 날카로워졌다. 마당에 가득 들어찰 만큼 커다란 흰 개가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게다가 기술사가 이 장면을 보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오오토리는 유이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는 듯, 가만히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얼른! 누가 보면 어떡해!”

등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유이는 그래봐야 발 하나를 가릴 수 있을까 한 작은 몸으로 오오토리를 가리듯 뒤돌아섰다. 야마다 촌장에 더불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술사도 서 있었다. 유이는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흰 털이 그녀의 등을 간질였다.

“오오카미, 그 영물을 숲으로 돌려 보내거라.”

“쵸타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나도 안다. 하지만 곧 보름달이 뜰 거야. 지금도 안전하지 않아.”

“안전해요. 쵸타로는 절대로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뜻 모를 확신이군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기술사에게로 쏠렸다. 사내가 기술사라는 건 이미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모양이었다. 유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보름달 밑의 영물이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내가 보장해요. 내가 이 마을의 중개자예요.”

“능력이 불안정하다고 들었는데요.”

기술사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더니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확신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 애는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유이, 네가 그 애를 특별히 여기는 건 안다만…….”

나카시마 씨가 달래듯 말을 건넸다. 유이 역시 오오토리가 숲에 있는 편이 안심이 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을 공격할까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오토리를 해칠까봐서였다. 폭주한 영물이 오오토리에게 달려든대도 이제 쉽게 다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랐으니, 오히려 숲속이 더 안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의 눈앞에서 오오토리가 잘못했으니 마을에서 떠나라는 식인 것은 불공평했다.

“말했잖아요! 쵸타로는 한 번도 누군가를 공격한 적이 없어요. 해를 입힌 적도 없고요. 제가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쵸타로예요. 그런데 왜 무조건 내쫓으려고만 하세요?”

“어찌됐든 영물인데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게냐! 얼른 내보내지 못해!”

“촌장님!”

 

 

<너에게>

에치젠 료마 x 류자키 사쿠노

A5 떡제 / 38p, 소설 /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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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항상 사람으로 북적였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 혹은 마중하러 온 두세 배의 사람들로 언제나 시끄러웠다. 혼잡한 곳을 꺼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왁자지껄한 건 불편했다. 그래도 간만에 맡는 일본 특유의 공기 냄새가 에치젠을 안정시켰다.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훈련으로 피곤해서인지 계속 저기압이었다. 일본 땅을 밟았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고향의 힘이란 게 이런 건가 처음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몇 가지 제출서류를 내고, 입국 수속을 했다. 꽤 큰 비행기를 탔으니 캐리어가 나올 때까지는 다른 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랐다. 오전에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짐 찾는 시간까지 염두에 두고 조금 늦은 시간을 알려주긴 했다. 다만, 언제나 확신은 금물이었다. 테니스든 평소 인간관계든 무엇이 됐건 과도하게 확신하면 빈틈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래, 테즈카의 말대로 ‘방심 말고 가’는 게 중요했다.

이제 막 진동과 함께 켜진 스마트폰은 어떤 알림도 보여주지 않았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에치젠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에치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약속시간을 어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길치라는 게 늘 걸림돌이었다. 공항은 자주 오는 데가 아니었으니 아마 또 한참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늦을 거라면 되도록 짐이 나올 때까진 연락이 없길 바랐다. 입국할 때엔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딱 맞게, 서로가 얼굴을 볼 수 있길 기대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며 캐리어가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까만색의 커다란 캐리어, 흰색에 온갖 스티커를 붙여 알록달록한 캐리어, 파란색의 물결무늬 캐리어 등, 주인을 찾기 위해 제각기 개성을 발휘하는 짐들이 쏟아져 내렸다. 에치젠이 기다리는 짐은 하나였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커다란 짐들은 미리 부쳐, 들고 귀국한 건 옷가지 몇 벌과 며칠 전 산 선물들뿐이었다. 그래도 큰 캐리어가 하나 가득 찬 게 신기했다. 어느새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조금 어색했다.

아아. 보고 싶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중략)

 

「너는?」

『응?』

「너는 어떠냐고. 남자친구.」

『그, 그런 거 없어. 고, 고백 같은 거 받은 적도 없고…….』

「흐응. 그럼 됐어. 여자애들은 자기 친구가 남자친구 생기면 섭섭해 하기도 한다던데.」

『어, 어? 그, 그야 아무래도 친한 친구면 조금 뺏긴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러긴 하는데……. 토모쨩은 그래도 자주 연락하고 얼굴도 보고 그래서 괜찮아.』

이걸 왜 물어봤을까.

류자키가 늘어놓는 말이 제대로 잘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류자키에겐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의외였다. 류자키는 예쁘게 생겼고, 피부도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직접 만져본 거라곤 손밖에 없긴 했지만 말이다. 여자애들 손은 다 이렇게 부드러운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딱히 눈대중이 틀리지는 않은 듯 했다.

키가 크면 싫어하는 남자애들도 있다던데.

미국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였을 때에도 오사카다보다는 조금 더 컸으니 여자애들의 평균 키보다는 큰 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봐야 쑥쑥 자라난 에치젠보다야 여전히 작았다. 류자키 정도면 그렇게 큰 키는 아니었다. 그냥 딱 보기에 옷태가 잘 날 정도로 적당한 키.

 

 

☆예약 양식☆

입금자분 성함(수령자분 성함) / 책 제목+권 수 / 총 입금 금액 / 본인 확인용 네 자리 숫자

성함은 본명, 닉네임 상관없으나 입금자분 성함과 일치해야 합니다

책 제목은 전체를 다 쓰지 않으셔도 OK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ex) 리나 / 얼음꽃 1권, 너에게 1권 / 14,000원 / 1128

 

선입금 예약을 마감합니다 :D

예약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해당 계좌로 입금해주신 후, 비밀 댓글을 남겨주시면 확인 후 입금 확인 댓글을 달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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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종료 후, 남는 책이 있으면 다시 통판 공지를 올릴 예정입니다.

 

선입금 예약은 10월 22일로 넘어가는 자정까지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운동회에서 만나요 :D

 

 

당신의 손에 반지를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지원 S 이후

- 레트베르 강화 월간 다섯째 주: 반지

 

 


 “선생님한테 반지 받았다면서, 축하해!”

 

 도로테아가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베르나데타는 뭐라고 답할 시간도 없었다. 숨 막힌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나서야 도로테아는 베르나데타를 놓아주었다. 아직까지 얼떨떨한 당사자보다 축하해주는 도로테아의 얼굴이 훨씬 더 밝았다. 베르나데타는 괜히 겸연쩍어 왼손 약지에 낀 반지만 매만졌다. 벨레트가 준 그 반지였다.

 

 “그래서, 베르는 선생님한테 반지 줬어?”
 “어?”

 

 반짝반짝 빛나는 도로테아의 눈동자가 베르나데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당황해서 손을 흔들었다. 

 

 “나, 나도 줘야 해?”

 “줘야지! 선생님 손에도 반지를 끼워야 할 거 아니야. 베르는 안 보고 싶어?”

 

 그제야 뭔가 깨달음을 얻은 베르나데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벨레트에게 반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들뜨고 설레 며칠간 붕 뜬 느낌으로 살았더랬다. 베르나데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것을 본 도로테아가 덥석 손을 잡았다.

 

 “진정해, 지금부터 준비해서 주면 되지! 아마 다들 도와줄걸?”
 “다들이라니?”
 “선생님 손가락 굵기를 알아내야 하잖아. 린이나… 아니다, 귀찮다고 안 할 것 같으니까 휴한테 부탁하는 게 나으려나?”
 “휴, 휴베르트 씨한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휴는 정보를 캐내는 데는 선수잖아.”

 

 당황한 베르나데타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테아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나아가는 긴 다리가 아무래도 정말 휴베르트가 일하고 있을 집무실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베르나데타는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다.

 

 “그, 그래도 이런 일로 휴베르트 씨를 찾아가면 호, 혼나지 않을까?”
 “괜찮아, 에델도 같이 있을 테니까 에델이 괜찮다고 해줄 거야.”
 “뭐어? 에, 에델가르트 씨한테 말하면 더 크게 혼날 것 같은데!”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도로테아는 시원시원하게 걸음을 옮겼고 도로테아는 부리나케 쫓아가기 바빴다. 마침내 집무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베르나데타는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집무실에는 도로테아의 예상대로 에델가르트와 휴베르트가 모두 있었다.

 

 “도로테아, 무슨 일이야?”
 “휴, 부탁할 게 있어요.”
 “저 말입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선생님 왼손 약지 굵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이미 알고 있으면 더 좋은데.”

 

 집무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에델가르트의 손이 깃펜을 쥔 채로 그대로 멈췄고, 휴베르트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입을 딱 벌린 채 굳었다. 이제는 도망칠 순간도 놓쳤다. 꼼짝없이 이 대화의 방향은 자신에게로 흐를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선생님이 베르나데타한테 반지를 줬다는 소식은 들었어. 늦었지만 축하해.”
 “가, 감사합니다, 에델가르트 씨.”
 “그런데 왜 저를 찾으신 겁니까? 조사라는 명목으로 알아내는 건 린하르트 님이 훨씬……”
 “린은 귀찮다고 안 해줄 것 같거든요. 게다가 목적도 그냥 술술 말해버릴 것 같지 않아요? 그럼 깜짝 놀라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안 그래, 에델?”

 

 도로테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베르나데타도 기왕 반지를 줄 거라면 벨레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에델가르트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휴베르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당한 지적이군요.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휴베르트. 축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해줘.”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더는 거절의 말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것도 까먹고 베르나데타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휴베르트가 벨레트의 왼손 약지 굵기를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벨레트는 휴베르트의 요구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 같았다. 휴베르트는 어중간한 핑계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잠시 손을 달라고 하고는 줄자로 굵기를 잰 뒤 돌아왔다는 말에 도로테아마저 아연실색했지만, 벨레트는 왜 그러는지조차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점마저 참 벨레트다워서 에델가르트도, 도로테아도, 베르나데타도 허탈해졌다. 그럼 굳이 휴베르트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 도로테아가 다녀왔어도 됐을지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베르나데타는 새 반지를 맞추었다. 결혼할 상대에게 선물할 반지라는 말을 하며, 반지 모양도 신중하게 골랐다. 벨레트가 제게 준 반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반지였다. 만들어지는 데는 열흘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앙바르로 출발하기 전에 완성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베르나데타는 그 열흘이 세상에서 제일 길게 느껴졌다. 괜히 벨레트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어서(물론 그 전에도 베르나데타는 벨레트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긴 했다)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 벨레트에게 반지를 주는가 하는 점이었다. 무작정 찾아가서 반지를 들이밀 수는 없었다. 벨레트가 그랬듯이 자신도 그를 여신의 탑으로 데리고 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곧 그들은 앙바르로 모두 옮겨갈 것이었다. 아예 앙바르로 옮겨간 뒤에 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았다. 다만, 벨레트에게 하루라도 빨리 주고 싶기도 했다. 베르나데타는 하루를 꼬박 고민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 차, 차 드실래요?”

 

 베르나데타가 먼저 다과회를 청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베르나데타가 다과회를 좋아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베르나데타에게 벨레트가 먼저 다과회를 제안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이었다. 벨레트는 흔쾌히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색이 짙은 녹색으로 돌아온 뒤로, 벨레트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웃게 되었다. 가슴이 찡 울리는 것 같아 베르나데타는 괜히 가슴을 한 번 부여잡았다.

 

 “베르나데타가 먼저 다과회를 요청한 건 오랜만이군.”
 “헤헤, 그러네요. 매번 서, 선생님이 하자고 하시니까 베르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달까…….”

 

 여전히 ‘벨레트’라는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됐다.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말 같아서 괜히 망설여지고는 했다.

 두 사람은 베르나데타의 방 안에 있었다. 이제 곧 떠나게 될 자신의 두 번째 안식처였다. 베르나데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안식처라는 점에서도 그랬고, 동시에 벨레트와 함께 떠나게 될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금세 방 안은 베리차의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찼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찻잔이 놓이고, 다과가 놓였다. 오늘따라 달그락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잘 마실게.”
 “마들렌도 드세요. 맛있어요.”

 

 차를 홀짝 들이켜면서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반지를 꺼내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창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뜬금없이 반지를 꺼내기도 그랬다. 적절한 순간이라는 게 과연 찾아오기는 하는 것인지 하는 두려움이 문득 엄습했다.


 “베르나데타?”
 “헉, 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쩐지 벨레트의 표정이 좀 어두운 것처럼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화들짝 놀라 무심코 손을 뻗어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다른 생각은 맞지만, 선생님 생각이긴 한데……”
 “무슨 뜻이지?”

 

 완벽한 계획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엉망진창인 상황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창피해진 베르나데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그게……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언제 드려야 할지 고민하느라……”

 

 벨레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표정이 귀여워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베르나데타는 당황해서 자꾸만 여러 군데로 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심호흡했다. 베르나데타는 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뒀던 반지 함을 조심스레 꺼냈다.

 

 “벨레트 씨가 반지를 주셨으니까 저도 반지를 주고 싶었어요.”

 

 처음 입에 담아본 것도 아니건만, 어찌나 떨리던지 목소리가 같이 떨릴 정도였다. 찻잔과 그릇만 놓여 있던 탁자 위로 자그마한 함이 올라왔다. 이젠 손까지 덜덜 떨렸다. 베르나데타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함을 열었다.

 놀라서 눈만 깜빡이던 벨레트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수줍어 보이기도 해서 베르나데타의 가슴이 또 시끄럽게 뛰었다. 자기가 입을 열면 말소리 대신 쿵쿵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꺼낸 베르나데타가 말했다.

 

 “끼, 끼, 끼워드릴게요.”

 

 얼마 전의 밤처럼, 베르나데타도 벨레트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인 벨레트가 왼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이 새삼스레 무척 커 보였다. 너무 떠는 바람에 삐끗하기도 했지만, 베르나데타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반지는 이제 벨레트의 왼손 약지 위에 있었다. 휴베르트의 감사한 도움 덕에 반지는 꼭 맞았다.

 

 “고마워.”
 “헤, 헤헤…… 너무 좋네요.”

 

 솔직한 감상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신만 증표를 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젠 그 또한 평생의 반려가 될 것이라는 증표를 손에 끼고 있었다. 벨레트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런 기분이군.”
 “네?”
 “베르나데타가 자주 그랬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이제야 이해했어.”

 

 가뜩이나 쿵쾅거리며 뛰던 가슴이 더 시끄러워졌다. 벨레트의 말대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덩달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벨레트의 가슴 또한 저로 인해 뛴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눈물마저 솟을 지경이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벨레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사랑해요, 벨레트 씨.”
 “응. 나도 사랑해, 베르나데타.”

 

 그의 말에 망설임은 없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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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받고 좋아하는 벨레트가 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심장도 다시 뛰니까 이젠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게 뭔지 알겠죠!

 

사실 자유 주제로도 뭔가 하나 더 쓰고 싶었는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관계로 ㅠㅠㅠ

일단 레트베르 강화 월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또 좋은 소재가 생각나면 열심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화 월간 주최해주신 테후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함께 멋진 글, 그림 올려주신 모든 분들 감사했어요

즐거운 한 달이었습니다 :D

 

레트베르 결혼해라!

 

 

 

약속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2부의 언젠가

- 레트베르 강화 월간 넷째 주: 약속

 

 

 후두둑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쁜 숨소리가 섞였다. 등에 닿은 커다란 바위의 냉기가 그대로 몸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마구 쏟아지는 비 때문에 체온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베르나데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머리를 흔들었다. 앞머리를 타고 내리던 빗방울을 털어내고,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비로 생긴 안개 때문에 시야도 명확히 확보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진작 전투가 마무리되었어야 할 시간이지만 베르나데타의 부대는 여전히 고전 중이었다. 처음에는 작전대로 상황이 흘러갔고, 베르나데타의 부대가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한두 방울 비가 떨어지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궁수들은 위기에 빠졌다. 베르나데타는 급히 병사들을 퇴각시켰다. 빗소리에 상대의 소리도 묻혀서 섣불리 접근할 수 없었다.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병사들을 소규모로 조금씩 숨겨뒀다. 이제 병사들은 손에 활이 아니라 예비로 챙겼던 단검을 들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숨을 가다듬었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팔을 잡아당겨 목에 칼을 꽂는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것을 머릿속에 그렸다. 베르나데타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죽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자신 또한 살아남아야 했다.
 바위 옆에서 훅 튀어나온 팔이 같은 군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베르나데타는 기민하게 몸을 움직였다. 연습했던 대로, 머릿속에 그렸던 대로 홱 상대를 잡아당겨 목에 칼을 꽂았다. 상대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지는 것이 보였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베르나데타는 칼을 쑥 뽑았다. 피가 마구 쏟아져 나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굴에 튄 피는 금세 비에 씻겨 내려갔다. 

 

 이겨서 웃기로 했으니까. 이 손이 피에 젖더라도 울지 않을 거야.

 

 이때부터는 어떻게 전투를 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빗속에서는 상대의 군복을 구분하는 것이 고작이었던지라 다른 아군 병사들이 어떻게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까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눈앞의 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꾸 아군을 찾고자 시선을 돌리게 됐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군 병사가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할 것 같아 홱 뒤로 잡아당기며 대신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다. 흐려진 시야 탓에 아군 병사 오른편으로 또 다른 적병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훅 들어온 검이 궂은 날씨 속에서도 서슬 퍼렇게 빛났다. 대처할 시간이 부족했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팔과 목, 어느 쪽이든 뚫릴 것이 분명했기에 고통을 참고자 눈을 질끈 감았다.
 시끄러운 빗소리를 뚫고도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통증은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번쩍 눈을 떴다. 회색빛 망토가 눈앞에 나부끼고 있었다. 제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니 접근전을 할 때는 눈앞의 적에 집중하도록. 아군을 도우려다가 함께 죽을 수도 있어.”

 

 벨레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천제의 검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쭉 늘어나 주변의 적을 베어 넘겼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빗물을 닦아낸 베르나데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아군 병사가 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이때부터 다시 아군이 우위를 차지했다. 벨레트의 등장에 겁을 먹은 적병이 지휘 통제에서 벗어나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벨레트의 부대가 합류하면서 병력이 두 배가 되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궂은 날씨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기에, 적병이 후퇴하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전투를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쫓아가서 모두 해치우기엔 아군의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모두 거점으로 복귀한다.”

 

 벨레트의 그 말이 반가운 듯, 빗소리에 잠시 병사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였다. 다친 병사들도 꽤 있었지만, 이런 폭우에 부상자가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와 주셔서 감사해요.”
 “혼자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베르나데타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언젠가 대화를 나누다 그런 소리를 했던 기억은 있었다. 벨레트가 농담처럼 모르는 마을에 혼자 가보란 이야기를 해서 빽 소리를 치다가 그러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늘 마음대로 되는 법이 아니기에, 이번처럼 베르나데타의 부대가 따로 전투를 수행해야 할 때도 있었다. 벨레트의 부대도 이번에 다른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도 전투가 끝나자마자 원군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날씨가 나빠지지 않았으면 아마 내가 오지 않았어도 잘 끝냈겠지만.”

 “베, 베르를 믿으시는 거예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볼이 홧홧한 게 부끄러워서인지, 비에 젖은 몸에서 열이 오르고 있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베르나데타의 망설이는 듯한 질문에 벨레트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살아남기로 약속했잖아.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어.”
 “선생님!”

 

 결국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졌다. 가뜩이나 시야가 흐린데 눈물 때문에 더더욱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앞으로도 그 약속, 지켜 주셔야 해요! 주, 죽지 않기로 한 것도요!”
 “물론이다.”

 

 벨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벨레트가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에 젖어 얼굴에 착 달라붙은 옥빛 머리카락은 여전히 빛나는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코를 훌쩍이며 생각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당신을 사랑한다 고백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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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A에 나오는 약속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혼자 보내지 않기로 한 약속 외에도

살아남자는 약속도 이미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 세계관은 레트베르가 이어지는 세계관이니까(?)

어느 루트든 레트베르가 이어진다면 고백하기 전에

둘 다 살아남자는 약속부터 했을 것 같아요

이런 고비를 넘기면서 두 사람에겐 전우애 겸 사랑이 싹트는 거겠죠....

결혼해라 얼른

 

 

 

 

부모의 그림자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엔딩 후 결혼을 앞둔 두 사람

- 레트베르 강화 월간 셋째 주: 부모

 

 앙바르가 아닌 곳으로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더더욱이 가르그 마크는 오랜만이라 괜히 가슴이 설렜다. 한때 학생으로, 교사로 몸담았던 곳이었다. 베르나데타에게는 집 외에 처음 생긴 도피처였고, 벨레트에게는 용병단 외에 처음 소속감을 느낀 공간이었다.

 포드라 통일 이후 교단 세력이 쇠퇴하면서 가르그 마크에는 수도사가 대부분 사라지고, 대신 관리하는 군사들이 많이 남았다. 이 시설을 어둠에서 꿈틀대는 자들이 유용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군사가 꽤 오래 상주했다. 린하르트는 웬일로 관리직에 자원했는데, 관리를 핑계로 연구를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히려는 속셈이었다. 지금은 린하르트도 에델가르트가 새로 만든 연구소로 옮겨 가, 이름만 들어본 장군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한때는 매일매일 있던 곳인데 이렇게 가니까 괜히 긴장되네요.”

 “응, 나도 그래.”

 

 그 말에 베르나데타는 슬며시 벨레트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저와 똑같이 쿵쿵, 빠르게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페르디아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벨레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그랬다. 사실 베르나데타는 그 이전에 벨레트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걸 미처 몰랐다. 벨레트에게서 듣고도 농담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랬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심장박동을 느끼고 있노라면, 그 이전에는 벨레트를 끌어안았을 때도 박동을 느끼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그래서 좀처럼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벨레트 씨, 심장이 엄청 빨리 뛰네요.”

 “결혼할 사람을 소개하는 거니까.”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벨레트가 베르나데타의 손을 쥐었다. 따뜻한 체온이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것 같았다.

 벨레트의 말대로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주변 동료들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직접 결혼을 보고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그게 비록 현재 여기에는 없는 상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가르그 마크는 예전만큼 활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병사들도 기운이 넘쳤다. 그런 가르그 마크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곳, 묘지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제랄트, 그동안 못 와서 미안해.”

 

 꽃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벨레트가 인사했다. 어머니의 곁에 같이 자리 잡은 아버지의 묘비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베르나데타는 슬며시 벨레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베르나데타의 손에는 벨레트가 준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제랄트가 준 반지를 베르나데타에게 줬어. 베르나데타와 결혼하려고 해.”

 “아, 안녕하세요, 제랄트 씨. 마, 마, 많이 부족하지만 벨레트 씨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요. 지켜봐 주세요.”

 

 마치 제랄트가 앞에 있는 것처럼 베르나데타는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벌써 한참 오래된 언젠가, 묘지에 서서 울고 있는 벨레트를 보고 꽃을 놓으러 갔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각자 다른 곳에서 울었지만, 이제는 나란히 서서 웃을 수 있었다. 좋은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벨레트 씨, 이제 행복하게 살아요!”

 “응, 행복하게 살자.”

 

 그 다정한 미소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문득 생각난 듯, 벨레트가 웃는 낯 그대로 묘비를 향해 섰다.

 

 “제랄트에겐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지…… 마지막에 눈물을 처음 봤다고 했던 말, 기억해. 이젠 많이 웃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베르나데타도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많이 웃을 거라고 한 마당에 덜컥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기쁨과 감동의 눈물이라 할지라도 그랬다. 베르나데타는 코를 찡긋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베, 베르가 많이 웃게 할게요! 그러니까 제랄트 씨도…… 하늘에서 푹 쉬세요.”

 

 베르나데타는 제랄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벨레트와 함께 대수도원에 나타나 기거하던 기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제랄트가 벨레트의 아버지임은 알았지만 학생인 베르나데타와는 딱히 엮일 일이 없었다. 종종 식당에서 벨레트나 알로이스와 식사를 하던 모습은 기억이 났다. 이런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그를 기억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제랄트가 살아 있었더라면 벨레트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무슨 말을 해줄까?

 평소 같으면 부정적으로 생각이 빠지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제 옆에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 덕분인 것 같았다. 아마도, 제랄트는 두 사람을 축복했을 것이다.

 

*

 

 하지만 발리령에 들어서는 순간, 드물게 긍정적이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다. 어린 시절에 뼛속 깊이 새겨진 처참한 시간들은 베르나데타의 발목을 잡았다. 마치 실체를 가진 어두운 기억이 한없이 깊은 늪이 되어 베르나데타의 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었다.

 발리령을 떠나 앙바르에서 활약한 지도 거의 6년이 넘었다. 아니, 사관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더하면 7년 만의 귀향이었다. 마차로 지나가는 거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서 공포감이 더했다. 저택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거칠어졌다. 가로수가 늘어선 저 길을 지나면, 그 너머의 은빛 대문을 지나면, 작은 분수가 있는 정원을 지나면, 인데하 문장이 그려진 현관을 지나면, 그 사람을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든 피했던 순간이 차근차근 현실로 다가왔다.

 

 “베르나데타.”

 

 꼭 쥔 손의 온기가 그나마 베르나데타의 위안이었다.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벨레트의 손을 꽉 붙들고, 베르나데타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런다고 거친 숨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제 편이 있다는 사실은 깨닫게 했다.

 

 “도착했습니다.”

 “힉!”

 

 마부의 말에 파드득 어깨가 튀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자 익숙한 저택의 문이 보였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 마차를 출발시켜서 앙바르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라리 에델가르트의 옆에서 휴베르트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직무를 수행하는 게 백번은 더 나았다. 좀처럼 내리질 않자 집사가 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베르나데타, 내가 함께 있잖아.”

 

 벨레트가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그대로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입이 딱 붙은 것 같기도 했다. 입을 열 때마다 호되게 자신을 매도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주춤주춤 몸을 옮겼다.

 바닥이 빙빙 도는 것처럼 보였다. 더듬더듬 발로 바닥을 짚어서 겨우 몸을 세웠다. 저택 문이 열리는 게 꼭 지옥문이 열리는 것 같아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이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벨레트가 똑같이 꼭 마주 잡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어서 오거라.”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들리자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숨을 크게 뱉으면서 벨레트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베르나데타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결혼할 사이이자 ‘패왕의 날개’라는 별명까지 가진 전쟁 영웅 벨레트와 함께였다. 게다가 베르나데타는 단순히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원래도 호리호리하고 마른 편이던 발리 백작은 그동안 더 핼쑥해진 모양이었다. 눈이 퀭한 것이 자택 감금 동안 어지간히 마음고생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의 아버지여도 베르나데타에겐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그 퀭한 눈이 여전히 제게 ‘쓸모없는 것’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혼자 온 게 아니구나.”

 “벨레트 아이스너다.”

 

 베르나데타보다 먼저 벨레트가 앞서 인사했다. 가벼운 인사에 발리 백작이 혀를 쯧 찼다. 아마도 성으로 그의 출신을 가늠하고 무시하는 것이리라 싶었다.

 

 “내가 발리 백작이다. 그대는 누구인데 이 가문의 여식과 함께 온 것이지?”

 “베르나데타와 결혼할 사이다만.”

 “뭐야?”

 

 발리 백작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사나운 눈빛으로 그가 벨레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다시 한번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나데타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란 사람은 그렇게 혀를 차고 난 뒤에는 꼭 끔찍한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네가 직접 말해봐라. 이 작자랑 결혼한다고? 평민 아니냐? 부모는 누구지? 어떤 집안 출신이냐? 지참금은 얼마나 있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란 작자가 내뱉는 단어들이 귀를 통해 들려 왔지만, 머리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불현듯, 베르나데타는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던 감정이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 안을 휘젓는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그만 하세요!”

 

 베르나데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발리 백작의 입이 딱 멈췄다. 베르나데타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베르나데타 본인이었다. 사관학교에 오기 전까지 베르나데타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입 밖으로 냈던 소리는 ‘죄송해요’라는 말과 말조차 되지 못한 비명뿐이었다. 양쪽 모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금 더 일찍 정신을 차린 것은 벨레트가 가볍게 어깨를 토닥인 베르나데타 쪽이었다.

 

 “베, 벨레트 씨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베, 베, 베르에게 소, 소중한 사람이에요.”

 

 막상 말을 시작하니 그래도 문장이 만들어졌다. 분노가 작용한 탓인지 목소리가 계속 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 아버지는 그럴 자격이 없어요.”

 “너…… 지금 뭐라고……”

 “베, 베르한테 뭐라고 하는 건 괘, 괜찮아요. 아, 아니, 괜찮지는 않지만 아무튼, 벨레트 씨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제 발리 백작은 아예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경악에 물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베르나데타는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한 번에 많은 말을 쏟아내려니 머리가 핑핑 돌았다. 다시금 벨레트가 베르나데타의 어깨를 토닥였다. 문득 벨레트가 걱정되어 돌아보니 벨레트는 평소와 똑같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다만 베르나데타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미소 지어 주었다. 베르나데타는 이 사람과 함께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겨,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허, 허락하든 말든 저는 벨레트 씨와 결혼할 거예요. 이젠 아버지가 저를 맘대로 휘두를 순 없어요.”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베르나데타가 발리령에 온 것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도, 결혼한다고 보고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황명이 있기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었다. 벨레트와 눈을 마주치자 벨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나데타는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벨레트의 손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발리 백작과의 거리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베르나데타 폰 발리, 에델가르트 폰 흐레스벨그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그레고어 폰 발리에게 고한다.”

 

 발리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뜩이나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주변에 서 있던 사용인들마저 모두 숨을 죽이는 것이 느껴졌다.

 

 “현 시간부로 발리 백작의 지위는 베르나데타 폰 발리가 계승하며, 그레고어 폰 발리의 전권을 베르나데타 폰 발리가 위임받는다.”

 “뭐, 뭐라고……?”

 “또한, 그레고어 폰 발리를 남방 교회의 사제로 임명하니 즉시 앙바르로 올 것을 명한다.”

 

 긴말을 마치자 한숨이 훅 터져 나왔다. 긴장한 탓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황제 폐하의 명은 실수 없이 잘 옮긴 것 같았다. 벨레트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베르나데타에게 끄덕여 보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을 모르던 전 발리 백작이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받들겠습니다.”

 

 그제야 숨쉬기가 조금 편했다. 이제 아버지는 더는 베르나데타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고, 영영 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무릎이 풀썩 꺾였다. 벨레트가 얼른 그녀를 붙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베, 벨레트 씨. 베르는……”

 “응. 고생했어.”

 

 그 어떤 말보다도 큰 위로였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를 꽉 끌어안았다.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는 손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고, 베르나데타는 또다시 생각했다.

 

*

 

 베르나데타를 먼저 마차에 들여보내 놓고, 벨레트는 다시 발리 가의 저택 문을 넘었다. 체통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그레고어가 발소리를 들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인의 상심한 마음에 괘념치 않고 돌아다니는 극악무도한 자가――”

 

 번쩍 고개를 치켜든 그레고어가 벨레트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극악무도한 자라는 호칭에도 벨레트는 별 느낌이 없었다. ‘잿빛 악마’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찮은 평민 놈이 감히 내 딸을……”

 “베르나데타를 학대했다고 들었는데.”

 

 힉, 숨을 집어먹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벨레트는 그 소리가 썩 낯설지 않아서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겁이 많고 편집증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 딸을 학대해서 똑같이 겁 많고 편집증적인 아이로 만들었다. 불쾌하게 가슴이 뛰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벨레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 학대라니! 그 애를 좋은 곳에 시집보내려고 내가 얼마나……”

 “의자에 묶어두고 버릇이 들 때까지 훈계하는 게 정상이라는 건가?”

 “내가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그레고어의 말에 벨레트는 잠시 고민했다. 아이의 육아 방식에 제삼자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딱히 아동 교육에 관한 올바른 방침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벨레트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당장 옆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최소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벨레트가 굳이 베르나데타가 없는 자리에서 그레고어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베르나데타를 많이 좋아해. 그래서 베르나데타가 어린 시절에 아픈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슬퍼.”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레고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마 저의 무표정에 겁을 먹은 것이라고 벨레트는 짐작했다. 심장이 뛰고 감정을 알아가는 와중에도 이 무표정은 쉽게 바뀌지를 않았다.

 

 “당신이 있으면 앞으로 베르나데타의 행복에 그림자가 드리우겠지. 당신이 정말 딸을 위해 그랬다면,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남방 교회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 거야.”

 

 벨레트는 순수하게 정말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지만, 그레고어의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말로 완성되지 못한 신음만 몇 번 흘리던 그레고어가 마침내 왁, 하고 비명을 지르며 쏜살같이 계단을 올라갔다. 벨레트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저택에서 나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이 참 맑았다. 이런 날이면 제랄트는 어린 저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가고는 했다. 말없이 수면을 들여다보다 낚싯대를 홱 잡아채면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얻게 되는 것이 꽤 마음에 들어 자주 쫓아다녔다. 벨레트는 오늘은 베르나데타도 낚시에 함께 가자고 제안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차 안에서 반려가 될 이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겼다. 벨레트는 이에 미소로 화답하며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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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셋째 주 투고입니다

테니스(뮤) 원정과 일이 겹쳐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 주는 좀 정리가 돼서

밀린 것도 쓰자!!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발리 백작을 용서할 수 없는 편이다 보니

목을 따버리는 엔딩도 좋아하긴 합니다만

(만약 휴베르 타임라인이라면 무조건 휴가 목 땄을 것임)

벨레트는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다가

벨레트는 아이 양육... 이랄까 교육에 관해 잘 모를 것 같달까요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워가는 중이니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죄인지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은 더 오래 지난 후일 거라 생각해요

 

아무튼 그레어고 폰 발리와 새 발리 백작은 영원히 분리되었고

새 발리 백작은 패왕의 날개를 남편으로 맞아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노래와 시집의 상관관계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베르나데타가 안 나오지만 레트베르입니다

- 레트베르 강화 월간 둘째 주: 지원 C

- グーグル翻訳を使っている方へ:「시집」が「詩集」に翻訳されないか心配ですけど、「시집」は「お嫁に行く(시집가다)」の「お嫁」の方に近いですので、もし「詩集」が出てきたら、「お嫁」だと考えて読んでください。

 

 

 학생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고요했다. 책을 덮는 소리가 탁, 조용한 공간을 울렸다. 마지막 수업을 마쳤으니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시간에 벨레트가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보통 식사 시간이 끝나갈 때쯤 느긋하게 나타나는 다른 교사들과는 달리, 벨레트는 식사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식당에 있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함께 먹자고 하는 때도 있었고, 벨레트가 함께 먹자 제안하는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벨레트는 여전히 혼자 교실에 있었다.

 그 이유는 오늘 낮에 있던 일에 있었다. 정확히는 마지막에 남겨진 말에 원인이 있었다. 벨레트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의문을 해결하지 못해서 그런지 묘하게 가슴이 답답했다. 이런 경험이 별로 없는지라 벨레트는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다.

 

 「무얼 그리 고민하느냐?」

 

 머릿속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놀라곤 했지만 이젠 소티스와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익숙했다. 벨레트가 소리 내어 대답했다.

 

 “낮에 들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낮에? 베르나데타라는 아이와 했던 대화 말이냐?」

 “응.”

 

 소티스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만 들릴 뿐인데 그 얼굴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렇게 어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고민할 때면 소티스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기에 개의치 않았던 부분들이 사관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뒤로는 자주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상식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와는 별개로, 벨레트는 아무튼 남들과 썩 매끄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은 아님을 빠르게 인정했다.

 

 「그 대화에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구석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지 원.」

 “시집을 못 간다고 하던데, 아드라스테아에는 결혼할 사람 외에는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관례라도 있는 건가?”

 「그럴 리가――」

 “그런 관례는 없어, 선생님.”

 

 한숨과 함께 소티스의 설명이 이어지려는 찰나,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문 앞에 에델가르트가 서 있었다. 한참 전에 교실을 빠져나간 반장이 다시 와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무슨 일이지?”

 “내가 묻고 싶은데. 식당에 선생님이 안 보여서 와 봤어.”

 

 그제야 식사 시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깨달음과 함께 허기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무심코 손을 배 쪽으로 가져다 대자 머릿속에서 소티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방금 했던 그 얘기는 뭐야?”

 “낮에 베르나데타를 만났는데…… 아.”

 

 무심코 에델가르트에게 대답하려던 벨레트가 입을 다물었다. 노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부끄럽고 싫다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는데, 다른 사람에게까지 떠벌리는 건 좋지 않았다. 어중간한 데서 말을 끊었는데도 에델가르트는 되묻지 않았다.

 

 “대충 이해했어. 안 그래도 식당에서 베르나데타가 선생님이 안 온 게 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난리를 쳤거든.”

 

 아무래도 식당에 벨레트가 없다는 사실이 학생들을 크게 동요시킨 모양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오후 수업 중에도 벨레트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으니 지금쯤 어떤 상황인지 뻔히 예상이 갔다. 베르나데타를 진정시켜서 다른 모두의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식당에 얼른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시집가는 건 아무 관계가 없는 건가?”

 

 벨레트가 성큼 발을 떼며 에델가르트에게 물었다. 여전히 교실 문가에 서 있던 에델가르트가 한 걸음 물러나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 아마 그 정도로 부끄럽다는 뜻으로 말했겠지.”


 따라 걷는 에델가르트를 향해 벨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벨레트는 노래와 시집의 상관관계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라는 문장을 완성했다. 베르나데타는 평소에도 곧잘 부끄러움을 표출하며 도망치고는 했는데, ‘시집도 못 간다’라는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럼 내가 책임지면 되는 건가?”

 “뭐?”

 

 당혹감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벨레트가 돌아보자 에델가르트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벨레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관례가 없다 한들 베르나데타는 그 정도로 부끄럽게 느꼈다는 뜻이니까, 내가 베르나데타와 결혼하면 해결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네 녀석은 비유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소티스가 비아냥거렸다. 비유가 무엇인지 정도는 벨레트도 알았다. 하지만 소티스에게 불만 섞인 대꾸를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옆에, 아니, 한 발짝 뒤에 에델가르트가 서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에델가르트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진심이다만.”

 「오호라, 비유인 걸 알면서도 그러겠다는 뜻이냐? 너도 얕볼 수가 없구나.」

 

 벨레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티스의 말에 대해서는 방에 돌아간 뒤에 천천히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여전히 에델가르트는 당황한 낯이었다. 벨레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끙, 앓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부탁이니까 선생님, 식당에서 그 말은 하지 말아줘. 또 엄청난 비명을 듣게 될 테니까.”

 “그런가?”

 “그래. 정말 진심이라면 그 말은 우리가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에 해주길 부탁해.”

 

 약간은 체념한 듯 느껴지는 말투였다. 베르나데타를 만나자마자 바로 그렇게 얘기하려 했던 벨레트는 에델가르트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것을 납득했다. 벨레트도 다른 이들의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에델가르트를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에델가르트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가자. 식사는 해야지.”

 

 에델가르트의 말이 맞았다. 벨레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시라도 빨리 베르나데타가 침착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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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타가 없지만 아무튼 레트베르입니다

쓰다 보니 안 건데 저는 레트베르 사이에 에델을 끼워넣는 걸 좋아하네요....

에델 미안해

하지만 이것도 내 사랑이야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엔딩 후

- 레트베르 강화 월간 첫째 주: 꽃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은은하게 퍼지는 저녁이었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와중에도 바람이 선선하지 않은 걸 보니 여름이 한껏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문득 더듬어 보니, 한가하게 꽃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사관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새삼 솟아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하늘을 향해 인사했다.


 이 꽃은 따다가 차로 우려 마시고, 이건 책 사이에 종이와 함께 끼워서 책갈피로 만들면 오래 쓸 수 있겠다. 그리고 또 이 꽃은……

 

 연신 떠오르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차로 마실 꽃 몇 송이와 책갈피로 만들 한 송이를 꺾어다 바구니에 넣고, 베르나데타는 몸을 일으켰다. 슬슬 들어가서 저녁 식사 전까지 영주로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래야 식사 시간에는 마음 놓고 벨레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었다.

 

 즐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문득 눈에 들어온 화단이 있었다. 하얀 꽃송이와 노란 꽃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 꽃은 줄기째로 엮어서 화관을 만들어도 예쁘겠다.

 베르나데타는 머릿속에 떠올린 이의 머리 위에 가상의 화관을 얹어 보았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손을 뻗어 꽃송이들을 더 꺾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왠지 마음이 급해져 부리나케 저택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 영주로서 업무를 하겠다는 조금 전의 다짐은 이미 새까맣게 잊어버린 뒤였다. 베르나데타는 짐을 받아주겠다, 목욕하시겠냐 등 하녀들의 말에 대충 거절의 의사를 밝히며 계단을 올랐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지라 하녀들도 크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방해 없이 금방 방에 들어간 베르나데타는 바구니를 뒤집어 꽃들을 바닥에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바닥에 털썩 앉았다. 하녀들은 기겁하겠지만 베르나데타는 흙바닥이나 저택의 방바닥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꽃들을 어떻게 엮어서 예쁘게 만들까 하는 점이었다.


 “이걸 여기다 이렇게…… 아니다, 색이 영……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은가? 앗, 하지만…… 으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얼마나 거기에 매달려 있었을까. 막 화관을 완성한 참에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둥지둥 들어오라고 답하니 문이 열리며 하녀 하나가 들어왔다.

 

 “영주님, 부군께 전투가 길어질 것 같아 오늘 못 오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새벽을 넘겨 바로 제도에 가서 보고를 마친 후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시는데, 전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헉, 그렇구나…… 그럼 내일도 못 올 수도…… 그, 그럼 내가 제도에 간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하녀가 방에서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베르나데타는 실망감을 가라앉히고자 숨을 가다듬었다. 저녁이면 벨레트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벨레트의 잘못은 아니었다. 포드라가 통일된 지 1년이 더 넘었으나 어둠에서 꿈틀대는 자들은 이렇게 꼭 평화롭게 틀어박히는 행복을 방해하고는 했다.

 

 “역시 같이 갈 걸 그랬나. 보고 싶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며 집에서 기다려도 된다는 벨레트의 말에 얌전히 저택에 머무르기로 했던 것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손에 들고 있던 화관을 조심스레 책상 위에 얹어두었다. 아침 일찍 제도로 출발하려면 미리 채비하고 일찍 자야 했다.

 

*


 제도에 나타난 베르나데타 때문에 제일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에델가르트였다. 벨레트 없이는 혼자 먼 길을 나서는 법이 없던 터라, 국정 보고를 받을 때도 항상 베르나데타 옆에 벨레트가 함께였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며 휴베르트가 낮게 웃음을 터뜨릴 만도 했다.

 

 “벨레트 씨는 아직 안 왔나요?”
 “전령이 새벽같이 먼저 와서 전투가 잘 끝났다고 보고했으니까 선생님도 곧 도착하지 않을까?”

 

 아침 일찍 출발한 보람이 있어, 아직 점심시간을 넘기기 전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에델가르트의 허락을 받아 궁성 입구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성문을 지키던 위병이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으나 베르나데타는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벨레트를 한시라도 더 빨리 볼 수 있다면 뭐든 견딜 수 있었다. 작은 가방에는 전날 만든 화관이 들어 있었다.

 기다린 지 십여 분이 지났을까. 멀리서 한 부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제일 앞서 다가오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밝은 옥색이어서 머리 색이 금방 눈에 띄었지만, 페르디아에서 있었던 그 마지막 전투 이후로 벨레트의 머리 색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짙은 청록색으로 돌아왔다. 머리 색이 어떻든 벨레트임에 변함은 없었지만 멀리서 한눈에 판별할 수 없게 된 점은 좀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아무리 작아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벨레트 씨!”

 

 들릴 만한 거리가 아니었으나 벅차오르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잠시 후, 벨레트로 보이는 이가 말을 몰아 빠르게 성문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 맨눈으로 명백하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베르나데타는 반가운 이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이내 말이 멈추고 벨레트가 내렸다. 미소 지은 벨레트가 마찬가지로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베르나데타는 쪼르르 달려가 그 품에 몸을 던졌다.

 

 “벨레트 씨! 보고 싶었어요!”
 “베르나데타, 일부러 제도까지 마중 나온 건가?”
 “그거야 어제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늦는다고 하니까…… 보고 싶잖아요!”

 

 자신을 꼭 안아 등을 토닥여주는 손이 좋았다. 벨레트의 옷에서 흙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인 묘한 냄새가 났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웠다. 벨레트는 어떤 어려운 전투를 겪어도 늘 제게 돌아와 주었다. 그 생각을 하면 이런 냄새도 벨레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앗, 벨레트 씨, 선물이 있어요!”
 “선물?”

 

 베르나데타는 얼른 가방을 열었다. 다행히 화관은 가방 안에서 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화관을 꺼내 들자 벨레트가 자연스레 허리를 낮춰 고개를 숙였다. 배시시 웃으며 베르나데타는 그 청록색 머리 위에 화관을 얹어주었다. 초록색 줄기가 머리 색에 어우러져 꼭 하얗고 노란 꽃송이들이 머리에 피어난 것 같았다.

 

 “잘 어울려요!”
 “그래?”

 

 벨레트가 후후 웃었다. 머리 색을 되찾은 이후로 벨레트는 감정 표현이 조금씩 늘어났다. 부드럽게 미소 지을 줄만 알던 그가 소리 내서 후후 웃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연스레 마주 웃게 되었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럼 폐하께 보고하러 가요!”

 

*

 

 “저기, 선생님?”
 “왜 그러지?”
 “그 화관은…… 왜 쓰고 있는 거야?”

 

 에델가르트는 알현실에 있던 모두(두 사람을 제외하고)가 궁금해할 질문을 했다. 근위병들이 하나같이 에델가르트가 그 질문을 해줘서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 보고를 마친 벨레트는 똑같이 업무 보고를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선물로 받았는데 바로 벗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큭큭, 귀하는 독특한 부분에서 예의를 차리시는군요.”
 “그런가?”
 “그, 그치만 벨레트 씨한테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쵸, 에델가르트 씨?”

 

 벨레트를 거들려던 베르나데타는 제 말에 에델가르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는 걸 보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인 만큼, 죄송하다고 비명을 지르며 벨레트의 뒤로 숨는 일은 꾹 참았다.

 

 “딱히 어울리지 않아서 물어본 건 아니야. 그냥 이 상황에 화관을 쓰고 온 게 낯설어서 그런 거지.”
 “보고 시의 예의에 어긋난다면 벗었다가 나가서 다시 쓰겠다.”
 “아니야, 괜찮아, 쓰고 있어. 베르나데타가 우는 게 더 곤란해.”

 

 에델가르트가 황급히 벨레트를 말렸다. 휴베르트는 옆에서 여전히 큭큭 웃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제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보고할 건 더 없지?”
 “그래.”
 “알았어, 물러가도 좋아. 깨가 쏟아지는 신혼인데 얼른 들어가는 게 좋겠지.”
 “감사합니다, 폐하!”

 

 베르나데타가 먼저 나서서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벨레트도 에델가르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자연스레 맞잡는 손과 에델가르트가 한 ‘신혼’이라는 말이 가슴을 간지럽게 했다. 화관이 잘 어울리는 남편과 함께, 베르나데타는 소중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것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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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베르 강화 월간의 첫째 주!

일단 목표는 주마다 하나씩 다 써보는 것인데 가능할지....?

테니스 원고도 하고 있는 중이라 힘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트베르 얼른 결혼해

 

 

 

 

어쩌나 side B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현대 AU

- 세븐틴 <어쩌나>를 듣다가 꽂혀서 씁니다

 

 

 똑딱똑딱. 시곗바늘은 자꾸만 가는데 베르나데타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짧은 시곗바늘은 어렴풋이 빛나는 1을 앞둔 상태였다. 약속 시각은 오전 10시. 이런 약속을 잡은 것이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가슴이 설렜다. 방 안에 키우고 있는 많은 식물 중 하나가 뿌리를 내리다 못해 자기 가슴에도 뻗어내려 간질이는 것 같았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으면 내일 만날 이의 얼굴이 스르르 떠올랐다. 그 얼굴을 보면 또 심장이 벌렁거렸고, 반동으로 또 눈을 떴다.

 “으으, 못 자겠어…….”

 약속 장소까지는 전철로 대략 30분. 역까지는 걸어서 7분. 점심은 12시에 먹기로 했으니 아침을 대강 먹으려면 15분에서 20분. 입을 옷은 미리 정해두었으니 옷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패스하고,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넉넉하게 40분에서 50분으로 잡자. 씻고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은 대강 20분. 그럼 이동 시간은 넉넉히 50분,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반. 늦어도 7시 반에는 깨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 잠들어도 6시간을(놀랍게도 순식간에 30분이 더 지나버렸다) 간신히 잘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 잘생겼지……?”

 무심코 툭 내뱉은 소리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생겼고, 길을 걷다 보면 연예기획사 매니저라는 사람들이 슬쩍 명함을 내밀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워낙 표정이 없고 무뚝뚝하다 보니 내민 명함을 슬그머니 도로 물리는 때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외모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슬쩍 미소를 지으면 그게 또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서……

 “헉, 이게 아니지! 자야 해! 잠을 자야! 내일 만날 수 있어!”

 하마터면 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외모 예찬을 늘어놓을 뻔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외모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생긴 외모는 그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고, 좋아하는 사람이 잘생긴 것은 좋은 일이지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기에, 베르나데타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미청년의 얼굴을 애써 머릿속에서 몰아냈다.

 “양이 한 마리…… 양이 두 마리…… 으으, 양이…… 세 마리인데……”

 울타리를 뛰어넘은 양은 세 마리였는데, 미청년은 도통 울타리를 넘을 생각이 없었다. 네 마리째의 양이 어중간하게 울타리에 걸리자 엉덩이를 밀어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내비치는 다정함이 또 그렇게 좋았다. 저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 짓던 베르나데타는 머리를 빠르게 흔들었다.

 “으아앙, 어떡해~! 자꾸 머릿속에 나오면 잠을 못 잔다고요~!”

 제 머릿속을 지배한 이에게 닿을 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쯤 그는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을까? 꿈나라에 있어서 자꾸 제 머릿속을 방문하는 것일까? 꿈속에서도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일 테니 기쁘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좋아한다면, 저처럼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라면, 꿈나라에 가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며 자기를 떠올려야 맞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형태는 누구나 다른 법이라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잠조차 이루지 못할 만큼 계속 떠오르는 것이 사랑이었기에 문득 걱정이 들었다. 아니, 간질간질한 사랑에 취해 잊고 있었으나 베르나데타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데는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아니야, 자자! 자면 돼! 자고 나면 만날 거잖아?”

 이렇게 보면 사랑이 사람을 바꾸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지구 내핵까지는 파고들어야 끝나던 삽질을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끝낸 것은 내일 만날 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지난번에 만났다 헤어지기 전, 보기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고 했던 것이다. 당황해서 빽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그가 보기 드물게(평생 볼 보기 드문 모습을 그날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급하게 베르나데타의 말을 막으며 입을 열었더랬다. ‘몇 주째 휴일에 나와달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이번 주 휴일에도 보고 싶다.’ 마찬가지로 보기 드물게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이랬으니, 베르나데타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사랑스러운 그 사람을 끌어안아 버린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에헤헤…… 귀여웠지……”

 고슴도치 인형을 그이 대신 꼭 끌어안으며 몸을 꼬물거렸다.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배시시 미소가 흘러나와서 표정이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반짝이는 숫자 2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시곗바늘이 이제 2를 막 지나친 참이었다. 베르나데타는 기함했다.

 “왜 벌써 2시지? 자, 자야 해!”

 

*

 

 어두운 거실에 TV만 어슴푸레 밝았다. 제랄트는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을 영화와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사실 밝은 대낮에 봐도 되지만 모두 자는 이 시간에 혼자서 즐기는 건 또 맛이 달랐다. 하지만 이런 자유는 찰칵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제랄트는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는 잘 깨지 않는 녀석이 일어났다는 것은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뜻이었다.

 “왜 안 자고 있냐?”
 “못 자겠어.”

 눈이 퀭한 벨레트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제랄트가 영화를 본 지도 벌써 1시간은 족히 되었으니 아마 새벽 1시는 넘었을 것이다. 벨레트가 잔다며 들어간 게 한참 전이었다. 머리를 대면 5분 내로 잠드는 제 아들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 걱정거리라도 있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일 나간다며.”
 “응. 10시에 약속이 있어.”

 외출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녀석은 아니었으나, 밥은 남들보다 배로 먹으니 식사 시간을 길게 잡는다 치면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약속 장소가 어딘지는 몰라도 움직이는 시간도 무시할 순 없으니 대충 8시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계산했을 때,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따뜻한 우유라도 마셔라.”
 “응.”

 제랄트의 말대로 순순히 벨레트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TV 화면이 영문 모를 장면을 비추고 있어, 제랄트는 리모컨을 눌러 영화를 앞으로 되감았다. 달칵, 전자레인지의 문이 닫히고 삑삑 버튼 소리가 났다. 곧 윙, 하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갔다. 식탁에 앉은 아들내미의 표정이 영 멍해 보여서 마음에 걸렸다. 영화를 일시 정지로 맞춰두고 제랄트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왜 잠이 안 오는데?”
 “웃는 게 귀여워서.”
 “뭐?”

 이건 아까 갑자기 보게 된 장면보다 훨씬 더 어리둥절한 말이었다. 제랄트는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나 의심했다. 귀가 먹었든지 정신이 흐려졌든지 둘 중 하나는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벨레트의 표정은 더욱 낯설었으므로, 제랄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상한 건 아들이었다.

 “누가?”
 “베르나데타.”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아들놈 때문에 답답했던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기에 제랄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무고개 하듯이 이놈의 대답으로 상황을 짜 맞추는 데 이제 도가 텄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내일 만날 상대일 거로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웃는 게 계속 생각나. 가슴이 간질간질해.”
 “얼씨구.”

 삑, 삑, 전자레인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벨레트가 전자레인지를 열어 머그잔을 꺼냈다. 그러더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다 댔다. 뜨겁지도 않은지 홀짝홀짝 잘도 마시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제랄트는 벨레트가 머그잔을 식탁에 내려놓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그애 좋아하냐?”
 “응?”

 안 그래도 멍한 표정이 한층 더 멍해진 것 같았다. 놀라서 제랄트를 쳐다보던 벨레트는 이내 생각에 잠겼는지 시선을 식탁으로 떨어뜨렸다. 저 둔하고 무뚝뚝한 아들 녀석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날이 다 오다니, 제랄트는 자기가 나이를 먹긴 먹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아니, 아들이 어느새 커서 사랑을 한다는 사실에 그랬다는 게 더 정확했다.

 “응. 그런가 봐.”
 “얼씨구.”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지적을 받을 때까지 제 감정도 깨닫지 못한 놈이 다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둔한 녀석과 데이트를 해주는 착한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제랄트는 여전히 멍한 벨레트의 어깨를 툭툭 토닥여주었다.

 “얼른 자라. 잠 못 자서 데이트 망치지 말고.”
 “응.”

 소파로 돌아온 제랄트는 리모컨을 눌렀다. 이제야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에서 쏴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금세 우유를 다 마신 모양이었다. 물소리가 곧 끊기더니 벨레트가 나와서 ‘잘 자.’하고 인사했다. 제랄트는 대충 손을 흔들어 벨레트를 들여보냈다. 표정을 봐서는 벨레트가 제대로 잘 것 같지 않았다. 제랄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영화를 껐다. 암흑이 찾아온 거실에서 벗어나 제랄트도 방으로 들어갔다.

 

*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 벨레트와 베르나데타도 서 있었다. 둘 다 썩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어쩐지 눈이 좀 퀭한 게 잠이 부족한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어떻게든 화장으로 가리려고 애쓴 티가 났지만, 벨레트 쪽은 그렇지도 않았다.

 “베, 벨레트 씨, 괜찮으세요?”
 “잠을 좀 못 자서 그럴 뿐이다. 그러는 베르나데타는?”
 “앗, 저, 저도 잠을 좀 못 자서…… 에헤헤. 카, 카페인부터 보충할까요, 그럼?”

 베르나데타가 뒤돌아 가려는데 덥석 손이 잡혔다. 대번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보니, 벨레트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붉었다.

 “할 말이 있어.”
 “네? 뭐, 뭐, 뭔데요?”

 베르나데타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 속에 북이 들었는지, 쿵쾅거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벨레트가 잡은 손에는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화끈거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좋아해.”
 “네?”
 “자려고 누웠는데 네가 귀엽게 웃는 게 계속 생각났어. 잠을 못 자고 일어났더니 아버지가 그러더라. 좋아하는 거냐고.”

 벨레트가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일은 보통 없었다. 심지어 그 말이 내포한 의미를 받아들이느라 머릿속이 포화 상태였다. ‘귀엽게’ 웃는 게 생각났다니, 베르나데타는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귀엽게 봤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잠을 못 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등장한 것도 의문이었고, 왜 거기서 ‘좋아하냐’는 질문이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아버지의 말로 벨레트가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는 말 같았다. 차근차근 되짚어 이 모든 것을 이해한 베르나데타는 이제 얼굴이 홍당무 같았다.

 “근데 그게 맞았어. 좋아해. 좋아해서 자꾸 생각이 나. 잠도 못 잘 만큼 생각나고 자꾸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쾅쾅 뛰는 심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꾹 닫고 있던 입을 간신히 열었다.

 “저, 저도 그래요! 좋아해요. 너무 좋아서 눈만 감으면 자꾸 떠오르고, 잘생겼다, 멋지다, 그런 생각만 계속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벨레트 씨가 없으면 안 되겠어요.”

 베르나데타는 더 참을 수 없었다. 흘러넘치는 감정에 따라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벨레트가 잡고 있던 손을 자연스레 풀어서 베르나데타의 등에 살포시 얹었다.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마저 사랑스러워서, 베르나데타는 더 세게 벨레트를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벨레트 씨. 우리 사귀어요!”
 “응. 나도 좋아해, 베르나데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게 바로 이것일까. 베르나데타는 여태 겪어본 적 없는 행복에 젖어 들며 배시시 웃었다. 이 달콤한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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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데

세븐틴의 <어쩌나>가 나왔거든요

가사가 참 귀엽고 말랑말랑한 게 좋은데

아니 갑자기 꽂혀서 헉 이거 레트베르로 쓰고 싶어!!!!

그래서 썼습니다

 

 

 

함께 들으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친구가 캐럿으로

저는 대충 큐빅 정도는 될까?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버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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