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그림자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엔딩 후 결혼을 앞둔 두 사람

- 레트베르 강화 월간 셋째 주: 부모

 

 앙바르가 아닌 곳으로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더더욱이 가르그 마크는 오랜만이라 괜히 가슴이 설렜다. 한때 학생으로, 교사로 몸담았던 곳이었다. 베르나데타에게는 집 외에 처음 생긴 도피처였고, 벨레트에게는 용병단 외에 처음 소속감을 느낀 공간이었다.

 포드라 통일 이후 교단 세력이 쇠퇴하면서 가르그 마크에는 수도사가 대부분 사라지고, 대신 관리하는 군사들이 많이 남았다. 이 시설을 어둠에서 꿈틀대는 자들이 유용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군사가 꽤 오래 상주했다. 린하르트는 웬일로 관리직에 자원했는데, 관리를 핑계로 연구를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히려는 속셈이었다. 지금은 린하르트도 에델가르트가 새로 만든 연구소로 옮겨 가, 이름만 들어본 장군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한때는 매일매일 있던 곳인데 이렇게 가니까 괜히 긴장되네요.”

 “응, 나도 그래.”

 

 그 말에 베르나데타는 슬며시 벨레트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저와 똑같이 쿵쿵, 빠르게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페르디아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벨레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그랬다. 사실 베르나데타는 그 이전에 벨레트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걸 미처 몰랐다. 벨레트에게서 듣고도 농담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랬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심장박동을 느끼고 있노라면, 그 이전에는 벨레트를 끌어안았을 때도 박동을 느끼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그래서 좀처럼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벨레트 씨, 심장이 엄청 빨리 뛰네요.”

 “결혼할 사람을 소개하는 거니까.”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벨레트가 베르나데타의 손을 쥐었다. 따뜻한 체온이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것 같았다.

 벨레트의 말대로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주변 동료들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직접 결혼을 보고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그게 비록 현재 여기에는 없는 상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가르그 마크는 예전만큼 활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병사들도 기운이 넘쳤다. 그런 가르그 마크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곳, 묘지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제랄트, 그동안 못 와서 미안해.”

 

 꽃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벨레트가 인사했다. 어머니의 곁에 같이 자리 잡은 아버지의 묘비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베르나데타는 슬며시 벨레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베르나데타의 손에는 벨레트가 준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제랄트가 준 반지를 베르나데타에게 줬어. 베르나데타와 결혼하려고 해.”

 “아, 안녕하세요, 제랄트 씨. 마, 마, 많이 부족하지만 벨레트 씨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요. 지켜봐 주세요.”

 

 마치 제랄트가 앞에 있는 것처럼 베르나데타는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벌써 한참 오래된 언젠가, 묘지에 서서 울고 있는 벨레트를 보고 꽃을 놓으러 갔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각자 다른 곳에서 울었지만, 이제는 나란히 서서 웃을 수 있었다. 좋은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벨레트 씨, 이제 행복하게 살아요!”

 “응, 행복하게 살자.”

 

 그 다정한 미소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문득 생각난 듯, 벨레트가 웃는 낯 그대로 묘비를 향해 섰다.

 

 “제랄트에겐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지…… 마지막에 눈물을 처음 봤다고 했던 말, 기억해. 이젠 많이 웃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베르나데타도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많이 웃을 거라고 한 마당에 덜컥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기쁨과 감동의 눈물이라 할지라도 그랬다. 베르나데타는 코를 찡긋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베, 베르가 많이 웃게 할게요! 그러니까 제랄트 씨도…… 하늘에서 푹 쉬세요.”

 

 베르나데타는 제랄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벨레트와 함께 대수도원에 나타나 기거하던 기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제랄트가 벨레트의 아버지임은 알았지만 학생인 베르나데타와는 딱히 엮일 일이 없었다. 종종 식당에서 벨레트나 알로이스와 식사를 하던 모습은 기억이 났다. 이런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그를 기억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제랄트가 살아 있었더라면 벨레트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무슨 말을 해줄까?

 평소 같으면 부정적으로 생각이 빠지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제 옆에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 덕분인 것 같았다. 아마도, 제랄트는 두 사람을 축복했을 것이다.

 

*

 

 하지만 발리령에 들어서는 순간, 드물게 긍정적이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다. 어린 시절에 뼛속 깊이 새겨진 처참한 시간들은 베르나데타의 발목을 잡았다. 마치 실체를 가진 어두운 기억이 한없이 깊은 늪이 되어 베르나데타의 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이었다.

 발리령을 떠나 앙바르에서 활약한 지도 거의 6년이 넘었다. 아니, 사관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더하면 7년 만의 귀향이었다. 마차로 지나가는 거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서 공포감이 더했다. 저택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거칠어졌다. 가로수가 늘어선 저 길을 지나면, 그 너머의 은빛 대문을 지나면, 작은 분수가 있는 정원을 지나면, 인데하 문장이 그려진 현관을 지나면, 그 사람을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든 피했던 순간이 차근차근 현실로 다가왔다.

 

 “베르나데타.”

 

 꼭 쥔 손의 온기가 그나마 베르나데타의 위안이었다.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벨레트의 손을 꽉 붙들고, 베르나데타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런다고 거친 숨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제 편이 있다는 사실은 깨닫게 했다.

 

 “도착했습니다.”

 “힉!”

 

 마부의 말에 파드득 어깨가 튀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자 익숙한 저택의 문이 보였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 마차를 출발시켜서 앙바르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라리 에델가르트의 옆에서 휴베르트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직무를 수행하는 게 백번은 더 나았다. 좀처럼 내리질 않자 집사가 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베르나데타, 내가 함께 있잖아.”

 

 벨레트가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그대로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입이 딱 붙은 것 같기도 했다. 입을 열 때마다 호되게 자신을 매도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주춤주춤 몸을 옮겼다.

 바닥이 빙빙 도는 것처럼 보였다. 더듬더듬 발로 바닥을 짚어서 겨우 몸을 세웠다. 저택 문이 열리는 게 꼭 지옥문이 열리는 것 같아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이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벨레트가 똑같이 꼭 마주 잡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어서 오거라.”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들리자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숨을 크게 뱉으면서 벨레트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베르나데타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결혼할 사이이자 ‘패왕의 날개’라는 별명까지 가진 전쟁 영웅 벨레트와 함께였다. 게다가 베르나데타는 단순히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원래도 호리호리하고 마른 편이던 발리 백작은 그동안 더 핼쑥해진 모양이었다. 눈이 퀭한 것이 자택 감금 동안 어지간히 마음고생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의 아버지여도 베르나데타에겐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그 퀭한 눈이 여전히 제게 ‘쓸모없는 것’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혼자 온 게 아니구나.”

 “벨레트 아이스너다.”

 

 베르나데타보다 먼저 벨레트가 앞서 인사했다. 가벼운 인사에 발리 백작이 혀를 쯧 찼다. 아마도 성으로 그의 출신을 가늠하고 무시하는 것이리라 싶었다.

 

 “내가 발리 백작이다. 그대는 누구인데 이 가문의 여식과 함께 온 것이지?”

 “베르나데타와 결혼할 사이다만.”

 “뭐야?”

 

 발리 백작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사나운 눈빛으로 그가 벨레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다시 한번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나데타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란 사람은 그렇게 혀를 차고 난 뒤에는 꼭 끔찍한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네가 직접 말해봐라. 이 작자랑 결혼한다고? 평민 아니냐? 부모는 누구지? 어떤 집안 출신이냐? 지참금은 얼마나 있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란 작자가 내뱉는 단어들이 귀를 통해 들려 왔지만, 머리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불현듯, 베르나데타는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던 감정이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 안을 휘젓는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그만 하세요!”

 

 베르나데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발리 백작의 입이 딱 멈췄다. 베르나데타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베르나데타 본인이었다. 사관학교에 오기 전까지 베르나데타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입 밖으로 냈던 소리는 ‘죄송해요’라는 말과 말조차 되지 못한 비명뿐이었다. 양쪽 모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금 더 일찍 정신을 차린 것은 벨레트가 가볍게 어깨를 토닥인 베르나데타 쪽이었다.

 

 “베, 벨레트 씨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베, 베, 베르에게 소, 소중한 사람이에요.”

 

 막상 말을 시작하니 그래도 문장이 만들어졌다. 분노가 작용한 탓인지 목소리가 계속 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 아버지는 그럴 자격이 없어요.”

 “너…… 지금 뭐라고……”

 “베, 베르한테 뭐라고 하는 건 괘, 괜찮아요. 아, 아니, 괜찮지는 않지만 아무튼, 벨레트 씨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제 발리 백작은 아예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경악에 물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베르나데타는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한 번에 많은 말을 쏟아내려니 머리가 핑핑 돌았다. 다시금 벨레트가 베르나데타의 어깨를 토닥였다. 문득 벨레트가 걱정되어 돌아보니 벨레트는 평소와 똑같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다만 베르나데타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미소 지어 주었다. 베르나데타는 이 사람과 함께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겨,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허, 허락하든 말든 저는 벨레트 씨와 결혼할 거예요. 이젠 아버지가 저를 맘대로 휘두를 순 없어요.”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베르나데타가 발리령에 온 것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도, 결혼한다고 보고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황명이 있기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었다. 벨레트와 눈을 마주치자 벨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나데타는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벨레트의 손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발리 백작과의 거리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베르나데타 폰 발리, 에델가르트 폰 흐레스벨그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그레고어 폰 발리에게 고한다.”

 

 발리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뜩이나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주변에 서 있던 사용인들마저 모두 숨을 죽이는 것이 느껴졌다.

 

 “현 시간부로 발리 백작의 지위는 베르나데타 폰 발리가 계승하며, 그레고어 폰 발리의 전권을 베르나데타 폰 발리가 위임받는다.”

 “뭐, 뭐라고……?”

 “또한, 그레고어 폰 발리를 남방 교회의 사제로 임명하니 즉시 앙바르로 올 것을 명한다.”

 

 긴말을 마치자 한숨이 훅 터져 나왔다. 긴장한 탓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황제 폐하의 명은 실수 없이 잘 옮긴 것 같았다. 벨레트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베르나데타에게 끄덕여 보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을 모르던 전 발리 백작이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받들겠습니다.”

 

 그제야 숨쉬기가 조금 편했다. 이제 아버지는 더는 베르나데타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고, 영영 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무릎이 풀썩 꺾였다. 벨레트가 얼른 그녀를 붙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베, 벨레트 씨. 베르는……”

 “응. 고생했어.”

 

 그 어떤 말보다도 큰 위로였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를 꽉 끌어안았다.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는 손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고, 베르나데타는 또다시 생각했다.

 

*

 

 베르나데타를 먼저 마차에 들여보내 놓고, 벨레트는 다시 발리 가의 저택 문을 넘었다. 체통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그레고어가 발소리를 들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인의 상심한 마음에 괘념치 않고 돌아다니는 극악무도한 자가――”

 

 번쩍 고개를 치켜든 그레고어가 벨레트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극악무도한 자라는 호칭에도 벨레트는 별 느낌이 없었다. ‘잿빛 악마’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찮은 평민 놈이 감히 내 딸을……”

 “베르나데타를 학대했다고 들었는데.”

 

 힉, 숨을 집어먹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벨레트는 그 소리가 썩 낯설지 않아서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겁이 많고 편집증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 딸을 학대해서 똑같이 겁 많고 편집증적인 아이로 만들었다. 불쾌하게 가슴이 뛰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벨레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 학대라니! 그 애를 좋은 곳에 시집보내려고 내가 얼마나……”

 “의자에 묶어두고 버릇이 들 때까지 훈계하는 게 정상이라는 건가?”

 “내가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그레고어의 말에 벨레트는 잠시 고민했다. 아이의 육아 방식에 제삼자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딱히 아동 교육에 관한 올바른 방침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벨레트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당장 옆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최소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벨레트가 굳이 베르나데타가 없는 자리에서 그레고어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베르나데타를 많이 좋아해. 그래서 베르나데타가 어린 시절에 아픈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슬퍼.”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레고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마 저의 무표정에 겁을 먹은 것이라고 벨레트는 짐작했다. 심장이 뛰고 감정을 알아가는 와중에도 이 무표정은 쉽게 바뀌지를 않았다.

 

 “당신이 있으면 앞으로 베르나데타의 행복에 그림자가 드리우겠지. 당신이 정말 딸을 위해 그랬다면,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남방 교회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 거야.”

 

 벨레트는 순수하게 정말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지만, 그레고어의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말로 완성되지 못한 신음만 몇 번 흘리던 그레고어가 마침내 왁, 하고 비명을 지르며 쏜살같이 계단을 올라갔다. 벨레트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저택에서 나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이 참 맑았다. 이런 날이면 제랄트는 어린 저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가고는 했다. 말없이 수면을 들여다보다 낚싯대를 홱 잡아채면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얻게 되는 것이 꽤 마음에 들어 자주 쫓아다녔다. 벨레트는 오늘은 베르나데타도 낚시에 함께 가자고 제안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차 안에서 반려가 될 이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반겼다. 벨레트는 이에 미소로 화답하며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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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셋째 주 투고입니다

테니스(뮤) 원정과 일이 겹쳐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 주는 좀 정리가 돼서

밀린 것도 쓰자!!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발리 백작을 용서할 수 없는 편이다 보니

목을 따버리는 엔딩도 좋아하긴 합니다만

(만약 휴베르 타임라인이라면 무조건 휴가 목 땄을 것임)

벨레트는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다가

벨레트는 아이 양육... 이랄까 교육에 관해 잘 모를 것 같달까요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워가는 중이니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한 죄인지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은 더 오래 지난 후일 거라 생각해요

 

아무튼 그레어고 폰 발리와 새 발리 백작은 영원히 분리되었고

새 발리 백작은 패왕의 날개를 남편으로 맞아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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