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생일 합작

 

함께 해주신 분들의 합작은 이쪽에

https://fujihappybirthday.wixsite.com/loveyou/

 

 

 

 

  “슈스케, 내일 저녁 먹고 온댔나?”

  “, 그럴 거야.”

  “다 컸다~ 이제 생일날 친구들이랑 밥 먹네.”

 

  풋 웃는 누나에게 후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나의 말대로 크진 않았을지라도, 어느 정도 크긴 했을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3. 마지막 기말시험까지 마친 3학년들에게 남은 행사는 졸업식뿐이었다.

  올해는 좀 더 특별했다. 기말시험이 끝난 다음 날, 그러니까 내일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29일이자 후지의 생일이었다. 이런 경사스러운 기념일을 친구들이 지나갈 리 없었다. 시험 일정이 안 겹친다면서 제일 기뻐한 키쿠마루를 시작으로,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면서 생일 파티 계획이 생겼다. 여기에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모시로와 카이도까지 합류하면서 언제나의 그 멤버들이 모이게 되었다. 무뚝뚝한 몇 마디를 추가해줄 후배 한 명이 모자란 건 아쉬웠지만, 후지로서는 매우 기뻤다.

 

  “밤에는 아버지랑 유타도 온댔으니까 너무 늦지 말고.”

  “알았어.”

 

  잘 자라는 인사를 덧붙이고, 후지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가슴이 술렁였다. 해마다 맞는 생일이었지만(비록 28일에 치르긴 했지만, 어쨌든 생일은 해마다 축하받았다) 졸업을 앞둬서 그런지 싱숭생숭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3년 동안 테니스부에서는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인 올해는 전국 우승이라는 커다란 성과도 이룰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후지는 팀메이트와 마찬가지로 승리를 바라게 되었다. 함께 이기고 싶었고, 바통을 뒷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결심도 이 팀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제게 일어난 이 사소하고도 큰 변화를 알기에, 후지는 졸업이 아쉬웠다.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는 정도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함께 팀이 되어 같은 골인 지점을 향해 걷는 일은 없을 것이다.

  후지는 한숨을 크게 뱉어냈다. 무엇이든 한정된 시간이기에 더욱 소중한 법이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현재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 후지 슈스케는 후회를 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런 걸 남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졸업식까지는 약 보름이 남아 있었다. 내일 있을 생일 파티도 그사이에 만들게 될 소중한 추억이었다. 머리가 상쾌해진 후지는 그대로 침대에 올랐다.

 

*

 

  이러려고 부 활동 쉰다고 했구나.

  3학년의 활동은 여름의 전국대회를 기점으로 사실상 끝났다. 아직 테즈카가 부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긴 했지만, 현재의 세이가쿠 테니스부를 이끄는 사람은 카이도였다. 늘 하던 연습을 쉰다기에 아예 놀러 나가기라도 하려나 보다 생각했던 후지는, 테니스장 입구에서 펄럭이는 현수막을 보고 멈춰서고 말았다. ‘세이슌 학원 후지 슈스케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아주 정직한 현수막은 아무래도 직접 글씨를 쓴 모양인지 글자마다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아마도 키쿠마루, 그 옆에 정자체로 글자마저 올바른 게 오오이시, 투박하고 커다란 글씨는 카와무라…… 시원시원하게 큼지막한 글자는 모모시로일 테고, 급하게 쓰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쓴 흔적이 보이는 글자는 이누이 같았다. 글씨 교본 책에 나올 것처럼 아주 정갈한 카이도의 글씨에 이어, 마지막 글자는 선생님의 칠판 글씨 같아 보이니 테즈카의 글씨가 분명했다. 글씨체도 참 성격을 따라가는 모양이었다.

 

  “생일 축하해, 후지!”

 

  제 옆에서 함께 걷던 키쿠마루가 큰소리로 외치는 것과 동시에 테니스장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여길 파티장으로 쓰려고 쉰 거야?”

  “, ……. 선배들이 생일 축하 파티는 기왕이면 여기서 하고 싶다고 하셔서.”

 

  묻지 않고도 후지는 그 의견을 제일 처음 낸 사람이 키쿠마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씨익 웃으며 후지를 재촉하는 표정에 이미 답이 있었다. 테니스장으로 들어서자 코트 한가운데 서 있는 오오이시가 보였다. 케이크를 든 그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생일 축하해, 후지.”

  “고마워. 준비를 많이 했나 보네.”

  “하하, 졸업 전에 챙길 수 있는 마지막 생일이잖아. 다들 엄청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

 

  테니스장 여기저기를 장식한 풍선은 카와무라의 작품인 듯했다. 후지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카와무라는 후지에게 등을 보인 채 무언가에 열중한 상태였다.

 

  “후지, 오늘은 널 위해 신작 이누이즙을 준비했는데.”

  “그거 기대되는걸.”

 

  주변인들의 표정이 모두 굳었지만 후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실제로 그는 청초처럼 신 계열이 아니라면 이누이즙에는 강했다. 이누이가 신작을 만들 때마다 무슨 맛이 날지 기대도 되었다. 순수하게, 후지는 이누이즙이라는 선물이 기뻤다.

 

  “후지의 평소 습관이나 음식 취향을 고려했을 때, 더 필요한 영양소는……

  “, 생일날까지 그런 어려운 얘기 하지 말자고요! 맛있는 것도 잔뜩 준비해놨는데!”

 

  모모시로의 제지에도 이누이는 계속 말을 이을 기세였지만, 키쿠마루가 번쩍 손을 들어 이누이의 입을 막았다. 떼어내려는 이누이와 절대 손을 떼지 않는 키쿠마루, 그리고 마찬가지로 딱 붙어서 키쿠마루를 돕고 있는 모모시로에 손에 든 케이크 때문에 어쩌질 못하고 말로 두 사람을 말리는 오오이시까지, 익숙한 풍경에 후지는 풋 웃음이 터졌다.

 

  “됐다! , 후지!”

  “타카상, 뭘 하느라 그렇게 집중했어?”

  “, 이거! 거의 다 했는데 마지막에 터뜨리는 바람에 다시 만드느라……

 

  카와무라가 내민 것은 풍선이었다. 정확히는 척 봐도 미니 선인장 화분처럼 생긴 풍선아트였다. 풍선아트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아들고 후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 이건 예상 밖이네.”

  “풍선을 사러 갔더니 마침 옆에 선인장 만들어놓은 게 전시되어 있었거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을 카와무라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투박한 손이지만 초밥을 쥐는 손인 만큼 섬세하게 풍선을 다루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부실로 슬슬 들어가죠. 부장이…… 테즈카 선배가 기다립니다.”

 

  입에 붙지 않은 호칭 때문인지 카이도의 표정이 미묘했다. 그제야 겨우 실랑이를 멈춘 세 사람도 그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는 약 보름 뒤에 이별하게 될 부실의 앞에 섰다. 늘 아무렇지 않게 열었던 문이 새삼 특별했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돌렸다.

  부실은 깨끗했다. 풍선 몇 개가 창문을 장식했고, 그 밑에 밖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로 손을 직접 쓴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음료수와 과자, 파이 등 다양한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부실을 비추는 오후 햇살 속에 테즈카가 서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후지.”

  “고마워, 테즈카. 그건 뭐야?”

 

  둘둘 말아서 리본까지 묶어놓은 종이가 후지의 시선을 끌었다. 테즈카는 그 종이를 후지에게 내밀었다. 왠지, 그는 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원들이 롤링 페이퍼를 작성했다. 류자키 선생님께도 한 마디를 부탁드렸고.”

  “그건 어마어마한 선물인데.”

  “에이, 진짜 선물은 따로 준비했죠! 저는 먹을 거!”

 

  싱글벙글 웃는 모모시로를 시작으로 선물 증정 타임이 시작되었다. 모모시로는 동네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빵집의 파이를 들고 왔고, 테즈카는 고심해서 고른 게 눈에 선한 선인장용 분갈이 흙을 선물했다. 카이도는 어떻게 알았는지(아마 이누이가 정보의 출처겠지만) 앤티크 식기를 내밀었고, 카와무라는 취향일지 모르겠다면서 재즈 음반을 주었다. 이누이는 얼마 전 새로 나왔다는 선인장 관련 책과 함께 이누이즙(“선배, 그건 선물이 아니잖아요!”)을 선물했다. 오오이시와 키쿠마루에게는 카메라를 받았다. 가격 때문에 고민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담하다가 같은 선물을 준비하려던 걸 알고 함께 돈을 모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생일이잖아! 하루 정도는 그래도 된다냥!”

  “그래, 후지. 생일이잖아.”

  “케이크에 불 켜는 것도 잊으면 안 되지.”

 

  오오이시가 색색의 초를 케이크에 꽂았다. 후지는 그 초를 보면서, 16살의 첫날을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후지 슈스케는 지금 더없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자 분위기가 완벽해졌다.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부실의 불을 껐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부실은 여전히 밝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신호라도 준 것처럼 동시에 해피 버스데이 노래가 시작되었고, 그 마무리에 맞추어 후지도 촛불을 불었다. 이미 들었던 축하 인사를 또 들으면서 후지는 웃었다.

 

  “그럼 여기서 서프라이즈 선물을 공개해야겠군.”

  “서프라이즈?”

 

  이누이의 말에야 겨우 부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달칵거리는 소리가 난 뒤, 이누이가 옆으로 비켜섰다.

 

  「이거 어색한데. , , 후지 선배, 생일 축하해요. 선배들이 이런 걸 찍으라고 해서…… , 웃지 말라고요. 다음에 가면 나랑 꼭 승부 내기에요. 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에 그만 안 둘 테니까. ……아무튼 생일 축하해요.

 

  누군가에게 촬영을 부탁한 모양인지 에치젠의 말 뒤로 웃는 소리가 함께 녹화되어 있었다. 여전히 테니스 생각밖에 없는 건방진 후배의 모습에 후지는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자마자 에치젠이랑 시합하려면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는걸.”

  “! 그럼 이거 먹고 테니스 칠까냥?”

  “하하, 다들 테니스 생각밖에 없구나.”

  “그러지 말고 타카상도 같이 하면 어때? 후지랑 간만에 더블스 상대를 해주면 좋겠는데.”

  “오오, 찬성입니다, 찬성이에요! 그럼 카이도, 넌 나랑 붙자!”

  “.”

  “그럼 내 대전 상대는 테즈카가 되는군.”

  “아직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만.”

 

  평소와 똑같은 흐름이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간밤에 느낀 아쉬움이나 술렁거림은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년이 흐르든, 몇 십 년이 흐르든 이 사람들과는 늘 이런 대화를 나눌 것 같았다.

 

  “후후, 좋아. 일단 케이크부터 먹고.”

  “좋아, 그럼 먹을 준비부터 해볼까?”

 

  오오이시의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두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세이슌 중학교에서 보내는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년에 한 번뿐인 생일을 축하하며.

 

내게 테니프리의 시작이었던 사람이자

내 꼬맹이의 영원한 연인.

 

후지 슈스케, 생일 축하해 :)

 

 






141128 :: 키쿠마루 에이지 생일 축하해!

 

* 연예인 패러렐 주의 (테니뮤 패러렐에 가깝습니다...)
* 테니뮤 세컨드 시즌이 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무대는 참으로 조용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는 이렇게 적막했던가 하는 생각이 키쿠마루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평소에 공연하던 곳보다 더 커서 그런 게 아닐까.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서 천천히 사방을 멀리 둘러보았다. 이 무대에서부터 저 끝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자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누군가 보면 참 쓸데없는 걸 고민한다고 여길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키쿠마루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저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무대 위에 선 우리가 어떤 크기 정도로 보였을까?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을 쭉 뻗으면 닿을 것처럼, 파랗게 관객석을 수놓은 팬라이트의 불빛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상은 한참을 뛰어올라가야 하는 거리가 공연 중간에는 전혀 멀지 않았다. 신나게 웃었고 즐거웠고 더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 쓸쓸했다. 이젠 이 무대에 설 일은 없겠구나. 쓸쓸했고, 그보다 조금 더 이상했다.

 

 「잘 부탁해!」

 

  에이지라고 부르면 돼, 하고 웃었을 때 자신을 향해 똑같이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어 준 건 오오이시였다. 얘가 앞으로 내 파트너구나. 누구나 처음엔 다 긴장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키쿠마루 에이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긴장보다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무대에 더 들떴다. 다만 테즈카 앞에서는 잠깐 긴장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모시로가 어찌나 자지러지면서 웃어댔는지 잊을 수가 없었다. 키쿠마루는 무대를 위한 훈련 기간 동안 유난히 모모시로가 힘들어했던 이유에 분명 테즈카의 복수가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게 어느새 몇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몇 년을 똑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했다. 그다지 긴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 마지막을 맞이했다. 아직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대 하나가 끝났으니 며칠 휴일을 가진 다음에, 다시 연습장에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뛰고, 새 안무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며칠 뒤에는 분명히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게 뻔했다. 으악, 지각이야! 하고. 하지만 곧 연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앉은 채겠지. 며칠 뒤를 떠올리니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키쿠마루는 홱홱 고개를 저었다.

 

 “에이지, 여기서 뭐 해?”
 “그냥 보는 중.”

 

 키쿠마루는 자신의 옆 자리를 팡팡 쳤다.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오이시가 다가와 앉았다. 커다랗고 빈 무대 위에 두 사람이 있었다.

 

 “별로 끝난다는 실감이 안 난다냥.”
 “나도 그래.”
 “이 멤버가 다 같이 모여서 또 연습하기는 아마 어렵겠지?”

 

 대답하는 대신 오오이시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당연하게 해 왔던 모든 게 바뀌게 될 것이다. 키쿠마루는 그게 어딘지 자꾸 자신의 마음을 간질여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항상 인사는 “내일 봐!”거나 “다음 연습 때 봐!”였는데. 물론 다른 무대에서 다시 보게 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모두가 다 같이 다른 무대에서 만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이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고 나서주던 사람들. 다시 코끝이 찡했다. 웃으면서 끝내자고 말한 건 무대 위에 있던 자신들이었다. 최대한 웃었다. 물론 정말 다른 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모든 무대가 끝나고 난 지금 느끼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행복한데 섭섭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복잡하고도 미묘해 보이는 그 표정을 오오이시는 놓치지 않았다.

 

 “복잡한 기분이지?”
 “오오이시도 그러냥?”
 “응. 무척.”

 

 키쿠마루는 앉은 자세에서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아직 빼놓지 않은 파란색 손목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지. 정말 고마워.”
 “응?”
 “넌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어.”
 “뭐, 뭐다냥, 갑자기!”

 

 왠지 부끄러워져서 손사래를 쳤지만 키쿠마루도 내심 기뻤다. 다행이다.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키쿠마루의 표정을 보더니 오오이시는 또 피식 웃었다. 오오이시의 시선도 관객석을 향했다. 아까와는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만이 내려앉은 관객석을 보는 눈이 어딘지 반짝거려 보였다.

 

 “마지막까지 최고를 보여줬으니까 우린. 아쉬움 같은 거 남기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걸로 괜찮을 거야.”
 “우와, 오오이시 지금 엄청 오글거려.”
 “아, 그런가.”

 

 머쓱하게 오오이시가 머리를 긁적였다. 키득키득 웃었지만 키쿠마루도 그 말에 동의했다. 진짜 이게 정말 최후, 마지막의 마지막이니까 남은 걸 전부 다 쏟아 부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온 힘을 다했다. 좀 더 잘 할 걸, 그런 종류의 감정은 남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끝났다.

 

 “그래도 진짜 열심히 했어.”
 “절대로 못 잊을 거야, 관객석.”
 “그치? 엄청 파래서, 막 여기서부터 저어기까지 다 파래서 진짜 신기했어.”
 “엄청 예뻤지.”
 “응응! 감동이었다냥. 쪼금 울 뻔 했어.”
 “노래 부르다가도 울 뻔 했으면서.”
 “아냐!”

 

 키쿠마루는 잔뜩 볼을 부풀렸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도 절대 울지 말아야지, 웃는 얼굴로 끝내야지,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걸로 진짜 마지막이야!”하고 말할 때에 울컥 솟아오르던 감정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그건 그냥 평범한 대사가 아니었다. 정말로 오오이시와 부르는 마지막 듀엣곡이었으니까. 펑펑 울어버리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 순간엔 아찔했다. 어라, 울면 안 되는데.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더랬다.

 

 “뭔가 우리 연습장 몇 시까지 맞지? 이런 얘기 안 하겠구나 싶어서 이상하다냥.”

 

 오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쿠마루가 그 뒤에 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젠 이렇게 만날 볼 수는 없겠지. 정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하지만 오오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오오이시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가자.”
 “응?”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니까.”

 

 키쿠마루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다. 주인공? 무슨 주인공을 말하는 거야? 주인공은 내가 아닌데. 멍하니 오오이시를 쳐다보던 키쿠마루의 표정이 점점 환해졌다. 아, 내 생일 얘기하는 거구나. 내 생일 파티 하자는 거구나. 그렇지, 참. 이 무대가 끝난다고 해서 영영 못 만날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니잖아. 바보 같은 고민을 했단 생각에 웃음이 났다.

 

 “당연하지!”
 “무대는 끝났지만 우린 계속 만날 거니까.”
 “당연한 소릴!”

 

 키쿠마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기지개를 피고 허리도 한 번 쭉 폈다. 그리고는 오오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오이시가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무대 위에 섰다.

 

 “생일 축하해, 에이지.”
 “고맙다냥!”
 “그럼 이제 내려갈까.”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냥!”

 

 

(2014. 11. 28.)

 

 

 






루키즈의 어느 날

 

 “하아아아."

 

 길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그는 모자의 캡을 살짝 잡아당겼다. 햇빛이 강했다. 이런 땡볕에 서있게 하다니. 오기만 해 봐, 진짜 가만 안 놔둘 거야.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는 오사카가 아닌가. 정말 끔찍할 정도의 더위였다.
 그 녀석을 못 알아볼 리가 없을텐데. 그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어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빨간 머리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흐응, 타임 오버. 그는 음료수라도 뽑을 생각으로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멍청이, 길 잃은 거 아냐? 여태까지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방금까지 심통이 나 있던 그는 금세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덜커덩, 캔 음료가 부딪치는 소리에 그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익숙한 포도맛 폰타. 고리를 젖혀 캔을 따고 나면 탄산이 올라오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한 모금으로 일단 목을 축이고서 그는 다시 자판기를 바라보았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동전을 더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 몇 개를 더 꺼내었다. 잠시 후, 폰타 하나를 더 손에 쥐고 그는 벤치로 돌아갔다.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정말 가야지.

 

 “코시마에!”

 

 아, 왔다.
 막 한 모금을 더 들이킨 찰나였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그 사고뭉치의 모습은 점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발음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시끄러워. 게다가 부끄러워, 저 녀석.
 여전한 호피 사랑은 말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토우야마 킨타로를 보면서 에치젠 료마는 저 바보,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오는 모습에 그는 자신에게 달려들 것까지 예상하고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킨타로는 그 속도 그대로 점프까지 해서 료마의 목에 매달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 한가득 터질 것 같은 미소를 머금은 킨타로는 료마를 세게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코시마에~ 오랜만이데이!”
 “너 늦은 거 알고는 있는 거야?”
 “아, 미안하데이. 내 뛰쳐오다가 쪼끔 헤맸다!”

 

 역시나. 매달려서 떨어질 줄 모르는 킨타로를 밀어내면서 료마는 뒤로 잔뜩 젖히고 있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킨타로도 그제야 그의 목을 놓아주고는 똑바로 섰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짓던 킨타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킨타로는 고개를 쭉 빼고 료마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번 찬찬히 훑었다가 다시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어레?”
 “왜 그래?”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킨타로와 눈을 마주친 료마는 순간 움찔했다. 어라? 킨타로가 알아차린 사실을 료마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킨타로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 위치 그대로 앞으로 내뻗었다. 료마는 그 손이 닿기 전에 휙 고개를 뒤로 빼내었다.

 

 “코시마에, 니 은제 이래 작아졌나?”
 “윽, 바보야, 작아졌을 리가 없잖아. 니가 큰 거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엄연한 키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분명 료마가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키가 비슷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킨타로가 컸다. 윽, 소리를 내뱉으며 료마가 살짝 뒷걸음질쳤다. 거짓말. 정말 저 녀석이 더 크단 말이야? 말로는 꺼낼 수 없는 그 묘한 분함이 료마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는 고개를 팩 돌리고 마시던 폰타를 쭉 들이켰다. 탄산이 목을 톡톡 쏘아댔지만 꾹꾹 참고 넘겼다. 그 모습에 목이 말랐는지 킨타로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료마의 한 손에 들린 폰타에 머물렀다.

 

 “아, 코시마에, 그거 내 줄끼가?”
 “아니.”

 

 매몰차게 대답한 료마는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캔도 마저 땄다. 왠지 열받아. 왜 저녀석만 더 컸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가 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도 1cm는 더 커서 돌아온 셈이니까. 하지만 킨타로는 적어도 5cm는 더 큰 것 같았다. 먹기도 잘 먹는데 왜 나는 안 크지?

 

 “뭐꼬, 두 개 들고 있었음서. 욕심쟁이래이.”
 “흐응, 늦은 녀석한테는 줄 거 없거든.”
 “우우~ 알았데이! 내 늦었으니까는 타코야끼 사주께!”

 

 료마의 등을 떠밀며 킨타로가 발을 떼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발을 떼면서 료마는 홀짝홀짝 폰타를 들이켰다. 그가 슬쩍 곁눈질로 킨타로를 훑어보았다.

 

 “근데 너, 얼마나 큰 거야?”
 “내도 잘 모른데이. 쩌언에 신체검사 했을 때는 백칠십……칠? 이라 카던데?”
 “하?”

 

 그가 미국에 가기 전의 키는 170cm에 조금 못 미쳤다. 그럼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이란 말인가? 또 한 번 열받아, 라고 생각하면서 료마는 또 벌컥벌컥 폰타를 들이켰다.

 

 “뭘 먹고 그렇게 크는 거야.”
 “내는 뭐든지 잘 먹는다! 편식은 안 좋대이!”
 “누가 그걸 모르냐.”

 

 료마는 여전히 툴툴거리고 있었지만, 킨타로는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간만에 만나는 친구가 그리도 반가운 모양이었다. 따로 말도 하지 않았건만 마치 약속한 것처럼 테니스백을 메고 온 료마를 보며 역시 통한다고, 킨타로는 느끼고 있었다. 사선으로 오게 맨 가방 끈을 양손으로 꼭 쥐면서 킨타로가 료마를 쳐다보았다.

 

 “이따 테니스 치러 갈 끼제?”
 “내가 이기겠지만.”
 “그건 해봐야 아는기래이!”

 

 

(2012. 06. 04.)

 

 

 

루스님이 주신 키워드

<후지, 사진, 노란색 꽃다발, 겨울에서 봄>

 

 

 

 “이제 곧 봄이구나.”

 

 창가에 기대어 있던 그가 무심결에 뱉어내었다. 방 한 쪽에 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던 유타가 슥 그를 돌아보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형의 모습은 유타에게 익숙했다. 뭐, 봄이 올 때가 되긴 했지. 유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만화책을 덮었다. 슥 그의 시선이 형에게서 벗어나 벽에 걸린 달력으로 향했다. 봄이 가까워져 간다는 것은 형의 생일이 가까워져 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형, 그 전에 형 생일이 먼저 아냐?”

 “난 유타가 모르는 줄 알았지.”

 

 생글 웃으면서 돌아보는 후지를 보며 유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유타가 투덜거리자 후지는 다시 쿡쿡거렸다. 언제나 귀엽다니까, 유타는. 사실 후지는 그를 괴롭히거나 놀릴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표현되는 것은 그저 그의 성격 탓이었다. 그렇게 웃는 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거 있어?”

 “글쎄. 카메라 렌즈?”

 “형…….”

 “농담이야.”

 

 또 한 번 쿡, 하고 가볍게 후지가 웃었다. 카메라라면 이미 쓰던 게 손에 익은 상태였다. 렌즈라도 새로 살까 싶었지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동생에게 요구할 것은 아니었다. 누나라면 사주지 않을까, 하고 잠시 고민하는 그였지만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새로 책이 나온 기념으로 누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보다 유타, 나갔다 오지 않을래?”

 “응? 갑자기 왜?”

 “나가자.”

 

 더 말없이 그는 창가에서 벗어나 카메라부터 집어 들었다. 슬슬 해가 저물어 가는데 아직 괜찮으려나. 뒤에서 유타가 투덜거리는 게 들렸지만 후지는 피식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형, 뭐하려고?”

 “유미코 누나한테 뭔가 선물이 될 만한 걸 주고 싶어서.”

 “아, 맞다, 꽃다발은 줘야 할 텐데.”

 

 유타가 주머니를 뒤적이는 동안 후지는 어느새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 있었다. 카메라를 손에 쥔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저물어가는 해 때문에 공원은 붉은 빛이었다.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 빛 사이로 후지가 서 있는 모습이 유타의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림에 나올 것 같은 장면이었다. 붉게 채색된 배경에다가 살짝 은빛이 도는 공원, 그리고 그 가운데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남자. 풍경화의 배경이 되기에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타, 이리 와봐.”

 

 한참 카메라를 들여 보고 있는 것 같던 후지가 손짓으로 유타를 불렀다. 유타가 쫓아갈 때까지도 후지는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후지가 보고 있던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그의 발 바로 앞쪽의 화단이었다. 때를 착각해서 조금 일찍 나온 것일까, 화단에는 노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예쁘지?”

 “헤, 이거 용케 발견했네. 이거 찍으려고?”

 “잘 찍으면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노을도 졌고.”

 

 카메라에 집중하는 후지를 보며 유타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보면 이런 걸 열심히 하고 있는 형도 대단하다니까.

 

 “그보다 형, 꽃다발은 어떻게 하지?”

 “나 지갑 있어.”

 “언제 챙겼어?”


 피식, 하고 웃으면서 후지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몇 번을 반복하던 그가 한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을 머리 뒤로 하고 서 있던 유타가 후지를 슥 돌아보았다.

 

 “맘에 들게 나왔어?”

 “응. 꽃다발도 그럼 맞춰서 노란색으로 사가지고 갈까?”

 “뭐 괜찮지 않아?”

 “그럼 가자.”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후지의 얼굴에 올랐다. 유타도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주었다. 공원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뒤로 해가 아예 넘어가고 있었다.

 

 

(2012. 01. 07.)

 

 

 

로유님이 주신 키워드

<니오 일루젼과 싱크로한 오오이시한테 징징대는 에이지>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닐 텐데. 이층 침대는 이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베게 위로 살짝 삐져나온 붉은 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에이지, 벌써 자?”

 

 자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붉은 색 머리카락이 쏙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 난감한 듯 오오이시가 머리를 긁적였다. 큰일이군. 혁명군단이 1군과 시합을 한 이야기는 이미 U-17 합숙소 내에 쫙 퍼져 있었다. 오오이시도 그 혁명군단 안에 속해 있었다. 키쿠마루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에이지.”

 “잘 거야.”

 “낮에 시합 말인데…….”

 

 이불을 팩 베개까지 덮어버리는 신경질적인 움직임을 보며 오오이시는 살짝 한숨 쉬었다. 싱크로를 가능하게 할 만큼 니오의 일루젼은 굉장했다.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은 오오이시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니오는 키쿠마루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쳐다봐도 키쿠마루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럼 다음에 얘기하자.”

 

 키쿠마루의 침대에서 시선을 떼고 오오이시가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반쯤 굽혔을 때, 위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가 고개를 들자 키쿠마루가 이층 침대에서 살짝 허리를 굽힌 채로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시 무릎을 펴 품에 베개를 끌어안고 볼을 잔뜩 부풀린 키쿠마루의 얼굴을 마주했다. 잔뜩 뚱한 표정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기세였다.

 

 “니오의 일루젼은 굉장했어.”

 “안다냥.”

 “나도 싱크로를 할 수 있었던 것에선 정말 놀랐으니까.”

 

 키쿠마루가 부풀리고 있던 볼을 풀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역시나 이것 때문이었구나.

 

 “에이지.”

 “나도 안다냥. 일루젼해도 내가 더 오오이시랑 호흡 잘 맞는 것도 알고, 아크로바틱도 내가 더 잘 하는 거 알아.”

 

 하하, 난감하게 오오이시는 그저 웃었다. 그는 키쿠마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알아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그걸 겉으로 다 드러내고 마는 자기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내 파트너는 에이지니까.”

 

 키쿠마루가 품에 안은 베개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시선이 베개와 오오이시를 계속 오고갔다. 조금 갈등하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가 마침내 오오이시를 똑바로 쳐다봤다.

 

 “다음번에는 진짜 세이가쿠 골든페어의 힘을 보여주자냥.”

 “물론이지.”

 

 오오이시가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다. 키쿠마루도 베개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주먹을 맞대었다. 씨익, 평소의 미소를 지으면서 웃어주는 키쿠마루에게 오오이시도 웃어주었다.

 

 

 

 

(2012.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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