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 side B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현대 AU

- 세븐틴 <어쩌나>를 듣다가 꽂혀서 씁니다

 

 

 똑딱똑딱. 시곗바늘은 자꾸만 가는데 베르나데타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짧은 시곗바늘은 어렴풋이 빛나는 1을 앞둔 상태였다. 약속 시각은 오전 10시. 이런 약속을 잡은 것이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가슴이 설렜다. 방 안에 키우고 있는 많은 식물 중 하나가 뿌리를 내리다 못해 자기 가슴에도 뻗어내려 간질이는 것 같았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으면 내일 만날 이의 얼굴이 스르르 떠올랐다. 그 얼굴을 보면 또 심장이 벌렁거렸고, 반동으로 또 눈을 떴다.

 “으으, 못 자겠어…….”

 약속 장소까지는 전철로 대략 30분. 역까지는 걸어서 7분. 점심은 12시에 먹기로 했으니 아침을 대강 먹으려면 15분에서 20분. 입을 옷은 미리 정해두었으니 옷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패스하고,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넉넉하게 40분에서 50분으로 잡자. 씻고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은 대강 20분. 그럼 이동 시간은 넉넉히 50분,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반. 늦어도 7시 반에는 깨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 잠들어도 6시간을(놀랍게도 순식간에 30분이 더 지나버렸다) 간신히 잘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 잘생겼지……?”

 무심코 툭 내뱉은 소리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생겼고, 길을 걷다 보면 연예기획사 매니저라는 사람들이 슬쩍 명함을 내밀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워낙 표정이 없고 무뚝뚝하다 보니 내민 명함을 슬그머니 도로 물리는 때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외모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어쩌다 슬쩍 미소를 지으면 그게 또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서……

 “헉, 이게 아니지! 자야 해! 잠을 자야! 내일 만날 수 있어!”

 하마터면 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외모 예찬을 늘어놓을 뻔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외모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생긴 외모는 그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고, 좋아하는 사람이 잘생긴 것은 좋은 일이지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기에, 베르나데타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미청년의 얼굴을 애써 머릿속에서 몰아냈다.

 “양이 한 마리…… 양이 두 마리…… 으으, 양이…… 세 마리인데……”

 울타리를 뛰어넘은 양은 세 마리였는데, 미청년은 도통 울타리를 넘을 생각이 없었다. 네 마리째의 양이 어중간하게 울타리에 걸리자 엉덩이를 밀어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내비치는 다정함이 또 그렇게 좋았다. 저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 짓던 베르나데타는 머리를 빠르게 흔들었다.

 “으아앙, 어떡해~! 자꾸 머릿속에 나오면 잠을 못 잔다고요~!”

 제 머릿속을 지배한 이에게 닿을 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쯤 그는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을까? 꿈나라에 있어서 자꾸 제 머릿속을 방문하는 것일까? 꿈속에서도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일 테니 기쁘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좋아한다면, 저처럼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라면, 꿈나라에 가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며 자기를 떠올려야 맞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형태는 누구나 다른 법이라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잠조차 이루지 못할 만큼 계속 떠오르는 것이 사랑이었기에 문득 걱정이 들었다. 아니, 간질간질한 사랑에 취해 잊고 있었으나 베르나데타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데는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아니야, 자자! 자면 돼! 자고 나면 만날 거잖아?”

 이렇게 보면 사랑이 사람을 바꾸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지구 내핵까지는 파고들어야 끝나던 삽질을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끝낸 것은 내일 만날 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지난번에 만났다 헤어지기 전, 보기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고 했던 것이다. 당황해서 빽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그가 보기 드물게(평생 볼 보기 드문 모습을 그날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급하게 베르나데타의 말을 막으며 입을 열었더랬다. ‘몇 주째 휴일에 나와달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이번 주 휴일에도 보고 싶다.’ 마찬가지로 보기 드물게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이랬으니, 베르나데타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사랑스러운 그 사람을 끌어안아 버린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에헤헤…… 귀여웠지……”

 고슴도치 인형을 그이 대신 꼭 끌어안으며 몸을 꼬물거렸다.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배시시 미소가 흘러나와서 표정이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반짝이는 숫자 2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시곗바늘이 이제 2를 막 지나친 참이었다. 베르나데타는 기함했다.

 “왜 벌써 2시지? 자, 자야 해!”

 

*

 

 어두운 거실에 TV만 어슴푸레 밝았다. 제랄트는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을 영화와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사실 밝은 대낮에 봐도 되지만 모두 자는 이 시간에 혼자서 즐기는 건 또 맛이 달랐다. 하지만 이런 자유는 찰칵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제랄트는 소파에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는 잘 깨지 않는 녀석이 일어났다는 것은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뜻이었다.

 “왜 안 자고 있냐?”
 “못 자겠어.”

 눈이 퀭한 벨레트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제랄트가 영화를 본 지도 벌써 1시간은 족히 되었으니 아마 새벽 1시는 넘었을 것이다. 벨레트가 잔다며 들어간 게 한참 전이었다. 머리를 대면 5분 내로 잠드는 제 아들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 걱정거리라도 있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일 나간다며.”
 “응. 10시에 약속이 있어.”

 외출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녀석은 아니었으나, 밥은 남들보다 배로 먹으니 식사 시간을 길게 잡는다 치면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약속 장소가 어딘지는 몰라도 움직이는 시간도 무시할 순 없으니 대충 8시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계산했을 때,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따뜻한 우유라도 마셔라.”
 “응.”

 제랄트의 말대로 순순히 벨레트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TV 화면이 영문 모를 장면을 비추고 있어, 제랄트는 리모컨을 눌러 영화를 앞으로 되감았다. 달칵, 전자레인지의 문이 닫히고 삑삑 버튼 소리가 났다. 곧 윙, 하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갔다. 식탁에 앉은 아들내미의 표정이 영 멍해 보여서 마음에 걸렸다. 영화를 일시 정지로 맞춰두고 제랄트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왜 잠이 안 오는데?”
 “웃는 게 귀여워서.”
 “뭐?”

 이건 아까 갑자기 보게 된 장면보다 훨씬 더 어리둥절한 말이었다. 제랄트는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나 의심했다. 귀가 먹었든지 정신이 흐려졌든지 둘 중 하나는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벨레트의 표정은 더욱 낯설었으므로, 제랄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상한 건 아들이었다.

 “누가?”
 “베르나데타.”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아들놈 때문에 답답했던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기에 제랄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무고개 하듯이 이놈의 대답으로 상황을 짜 맞추는 데 이제 도가 텄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내일 만날 상대일 거로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웃는 게 계속 생각나. 가슴이 간질간질해.”
 “얼씨구.”

 삑, 삑, 전자레인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벨레트가 전자레인지를 열어 머그잔을 꺼냈다. 그러더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컵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다 댔다. 뜨겁지도 않은지 홀짝홀짝 잘도 마시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제랄트는 벨레트가 머그잔을 식탁에 내려놓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그애 좋아하냐?”
 “응?”

 안 그래도 멍한 표정이 한층 더 멍해진 것 같았다. 놀라서 제랄트를 쳐다보던 벨레트는 이내 생각에 잠겼는지 시선을 식탁으로 떨어뜨렸다. 저 둔하고 무뚝뚝한 아들 녀석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날이 다 오다니, 제랄트는 자기가 나이를 먹긴 먹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아니, 아들이 어느새 커서 사랑을 한다는 사실에 그랬다는 게 더 정확했다.

 “응. 그런가 봐.”
 “얼씨구.”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지적을 받을 때까지 제 감정도 깨닫지 못한 놈이 다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둔한 녀석과 데이트를 해주는 착한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제랄트는 여전히 멍한 벨레트의 어깨를 툭툭 토닥여주었다.

 “얼른 자라. 잠 못 자서 데이트 망치지 말고.”
 “응.”

 소파로 돌아온 제랄트는 리모컨을 눌렀다. 이제야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에서 쏴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금세 우유를 다 마신 모양이었다. 물소리가 곧 끊기더니 벨레트가 나와서 ‘잘 자.’하고 인사했다. 제랄트는 대충 손을 흔들어 벨레트를 들여보냈다. 표정을 봐서는 벨레트가 제대로 잘 것 같지 않았다. 제랄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영화를 껐다. 암흑이 찾아온 거실에서 벗어나 제랄트도 방으로 들어갔다.

 

*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 벨레트와 베르나데타도 서 있었다. 둘 다 썩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어쩐지 눈이 좀 퀭한 게 잠이 부족한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어떻게든 화장으로 가리려고 애쓴 티가 났지만, 벨레트 쪽은 그렇지도 않았다.

 “베, 벨레트 씨, 괜찮으세요?”
 “잠을 좀 못 자서 그럴 뿐이다. 그러는 베르나데타는?”
 “앗, 저, 저도 잠을 좀 못 자서…… 에헤헤. 카, 카페인부터 보충할까요, 그럼?”

 베르나데타가 뒤돌아 가려는데 덥석 손이 잡혔다. 대번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보니, 벨레트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붉었다.

 “할 말이 있어.”
 “네? 뭐, 뭐, 뭔데요?”

 베르나데타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 속에 북이 들었는지, 쿵쾅거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벨레트가 잡은 손에는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화끈거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좋아해.”
 “네?”
 “자려고 누웠는데 네가 귀엽게 웃는 게 계속 생각났어. 잠을 못 자고 일어났더니 아버지가 그러더라. 좋아하는 거냐고.”

 벨레트가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일은 보통 없었다. 심지어 그 말이 내포한 의미를 받아들이느라 머릿속이 포화 상태였다. ‘귀엽게’ 웃는 게 생각났다니, 베르나데타는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귀엽게 봤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잠을 못 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등장한 것도 의문이었고, 왜 거기서 ‘좋아하냐’는 질문이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아버지의 말로 벨레트가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는 말 같았다. 차근차근 되짚어 이 모든 것을 이해한 베르나데타는 이제 얼굴이 홍당무 같았다.

 “근데 그게 맞았어. 좋아해. 좋아해서 자꾸 생각이 나. 잠도 못 잘 만큼 생각나고 자꾸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쾅쾅 뛰는 심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꾹 닫고 있던 입을 간신히 열었다.

 “저, 저도 그래요! 좋아해요. 너무 좋아서 눈만 감으면 자꾸 떠오르고, 잘생겼다, 멋지다, 그런 생각만 계속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벨레트 씨가 없으면 안 되겠어요.”

 베르나데타는 더 참을 수 없었다. 흘러넘치는 감정에 따라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벨레트가 잡고 있던 손을 자연스레 풀어서 베르나데타의 등에 살포시 얹었다.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마저 사랑스러워서, 베르나데타는 더 세게 벨레트를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벨레트 씨. 우리 사귀어요!”
 “응. 나도 좋아해, 베르나데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게 바로 이것일까. 베르나데타는 여태 겪어본 적 없는 행복에 젖어 들며 배시시 웃었다. 이 달콤한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아니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데

세븐틴의 <어쩌나>가 나왔거든요

가사가 참 귀엽고 말랑말랑한 게 좋은데

아니 갑자기 꽂혀서 헉 이거 레트베르로 쓰고 싶어!!!!

그래서 썼습니다

 

 

 

함께 들으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친구가 캐럿으로

저는 대충 큐빅 정도는 될까?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버디예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