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도 선물이 필요해

 

- 펠릭스 x 베르나데타 (펠베르)

- 배경만 현대로 바꾼 현대 AU

- 도로테아의 계략에 빠져서 산타가 되는 베르나데타가

  산타 펠릭스랑 알콩달콩하는 이야기

 

 

 

 

  “끝……났다!”

 

  베르나데타가 벌떡 일어나며 만세를 불렀다. 몇 주째 공을 들이던 작업이 드디어 끝났다. 마네킹에 입혀둔 옷이 두 벌, 손에 들린 옷이 한 벌이었다.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이틀. 이 정도면 훌륭한 마감이었다. 자신이 대견해져 뿌듯하게 미소 짓기 무섭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 누구세요!”

  “나야, 베르.”

 

  이 마감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쪼르르 달려가 문을 열었다. 머리를 틀어 올린 도로테아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완성됐어?”

  “으, 응. 조금 전에 막…….”

  “내가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추지.”

 

  윙크까지 하면서 도로테아가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말릴 틈도 없었다. 베르나데타가 그녀의 등에 대고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도로테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닥에는 천 자투리는 물론이고, 바늘이며 실이며 가위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었다. 후다닥 도로테아를 쫓아 들어온 베르나데타는 주섬주섬 한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신경 쓰지 마, 마감하느라 바빠서 그런 건데 뭐. 근데 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뻐? 진짜 잘 만들었다.”

  “헤헤, 그, 그래? 다행이다, 걱정했거든.”

 

  도로테아의 눈이 옷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베르나데타는 배시시 흘러나오는 미소를 들키기 싫어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손에 들려 있는 옷을 마네킹에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베르, 그거 설마……”

  “아, 응. 이게 방금 막 완성한 건데, 에델가르트 씨한테 맞을지……”

 

  베르나데타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도로테아가 저렇게 미소 지을 때면 분명히 안 좋은 일(베르나데타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이 생겼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생글생글 미소 짓는 낯에 대고 뭐라고 할 성격은 되지 못했기에, 베르나데타는 애꿎은 바닥을 노려보았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무슨 말이 나올지 불안했지만, 그 말을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감이 더 싫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에델가르트 씨가… 입는 거 맞……지?”

  “으응~? 난 에델이 입는단 소리는 안 했는데~?”

  “그, 그치만 베르 사이즈에 맞추라고…… 그럼 우리 반에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에델가르트 씨밖에…….”

  “에이~ 정말 딱 맞게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왜~”

 

  부들부들 떨던 베르나데타가 마침내 도로테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건 베르가 입을 거야.”

  “왜 그렇게 되는 거야아아아아아아!”

 

*

 

  애초에 크리스마스 파티의 회의 같은 걸 한다고 했을 때부터 재빠르게 도망쳐서 기숙사에 틀어박혔어야 했다. 하지만 베르나데타는 부드럽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제지하는 에델가르트에게 약했고, 어딜 가냐며 팔을 붙잡아 꼭 끌어안는 도로테아에게도 약했으며,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기대감을 드러내는 페트라에게도 마찬가지로 약했다. 결국, 도로테아와 페트라 사이에 앉아 얌전히 에델가르트의 말을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휴베르트가 나눠준 종이에는 크리스마스 파티 일정이 적혀 있었다. 12월 25일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소는 학교 대강당. 다 함께 저녁을 먹고 가볍게 선물을 교환하는 행사. 반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함께 참가. 그런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베르나데타의 시선이 꽂힌 것은 안내문의 가장 아래쪽에 적힌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보면 알겠지만, 학교의 전통대로 각 반에서 한 명씩 산타 역할을 맡게 될 거야.”

 

  재미있는 전통이라며 미소를 짓는 페트라를 옆에 두고 그런 전통은 필요 없다고 차마 소리지를 수는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물며 그 산타가 자기가 아니기만을 빌었다.

 

  “그리고 문제라면 문제인데…… 기존에 선배들이 사용하던 산타 옷은 너무 해져서 더는 입을 수 없을 것 같아. 올해는 새 옷을 구비해야 할 것 같은데……”

  “저요, 저요~ 의견 내도 돼?”

 

  도로테아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괜히 소스라치게 놀란 베르나데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베르가 옷 잘 만들잖아! 베르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때?”

  “뭐?! 내가?!”

 

  교실이 어수선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베르나데타에게 쏠린 탓에, 당장이라도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얼굴이 후끈거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잘 만든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도로테아의 말대로 옷을 만들 줄은 알았다.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인형의 옷을 직접 만들다 보니 취미가 되었고, 어느새 점점 규모가 커져 사람 옷까지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의 수준이었다.

 

  “다른 반도 옷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라 구매하려고 했는데.”

  “에이~ 우리만의 추억을 만드는 건데, 새 옷 하나씩 장만하면 좋잖아! 물론 재료비 포함해서 제작비도 주는 조건으로! 어차피 예산도 있겠다, 어때?”

  “그건 솔깃한걸. 베르나데타만 좋다면, 나도 찬성하고 싶어. 좋은 추억이 될 거야.”

 

  페르디난트까지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비를 주는 조건이라는 소리에 잠시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하지만 베르나데타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에서 만드는 옷이었다. 정식으로 복식 디자인을 배워 볼까 고민 중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뚝딱 완벽한 옷을 만들어내진 못하는 법이었다.

 

  “그, 그래도 누가 입고 활동할 만한 옷을 만들지는 못하는걸.”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산타 복장이잖아? 시즌 지나면 어차피 못 입어.”

  “그, 그치만 인터넷만 조금 뒤져도 잘 만들어진 산타 옷이……”

  “맨날 똑같은 산타 복장에는 아무 매력이 없잖아. 약간 어레인지 해보자! 나도 도와줄게!”

 

  이건 반칙이었다. 뭐가 반칙이냐면, 이미 연극 무대에도 올라간 경험이 있어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도로테아가 눈을 반짝이면서 베르나데타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그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까지 짓는 것이 그랬다. 심지어 그러고 있는 사람이 이 학교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라면 더욱 반칙이었다. 베르나데타의 머리에서 김이 솟고 있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던 몸이 페트라의 어깨에 툭 닿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길이 없었다.

 

  “찬성입니다. 베르나데타, 만드는 옷, 기대합니다.”

  “페트라까지~!”

 

  울상을 지어봐도 이젠 정말 답이 없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베르나데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도로테아가 만세를 불렀고, 페트라가 손뼉을 쳤다. 이 소란 속에서도 고요히 졸고 있는 린하르트가 부러웠다.

 

  “그럼 옷은 베르나데타에게 맡기는 거로 일단 추진할게. 다른 반에도 얘기해야 하고, 선생님 허락도 받아야 할 테지만.”

  “저, 저, 저저저저, 저기요!”

 

  가뜩이나 달아오른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모두의 이목을 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말을 해야 했다. 베르나데타도 딜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산타 역할만큼은 피해야 했다.

 

  “오, 옷을 만드는 대신 산타 역할에선 빼주시면 안 될까요?”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베르! 조건은 모두 똑같아야지!”

  “옷을 만드는 점에서 이미 똑같지 않은데!”

 

  도로테아는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베르나데타는 필사적인 눈빛을 에델가르트에게 쏘아 보냈다. 에델가르트의 표정이 미묘했다. 안쓰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한심하게 보는 것일지 모를 얼굴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침을 꿀떡 삼켰다.

 

  “그 점도 반영해서 고민하도록 할게.”

 

  이걸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해도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반영’한다고 했으니 나름대로는 성공일지 몰랐다. 베르나데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을 꼭 끌어안고 있던 도로테아가 문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생긋 미소를 지으며 베르나데타를 쳐다보았다. 등줄기를 따라 오스스 소름이 돋았지만, 미소는 지어 보였다.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정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회의는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어쩐지 불안한 마무리였다.

 

*

 

  “베르는 아니랬으면서! 아니랬으면서!”

  “난 아니라고는 안 했는걸! 너무 부끄러워할 테니까 비밀이라고만 했지.”

 

  도로테아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산타 옷의 주인공들이 정해졌단 소식을 전한 것은 도로테아였다. 물론 정확하게 알려준 것은 펠릭스와 힐다뿐이었다. 막상 자기 반에서는 누가 입을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기에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도로테아의 말대로 고분고분 자기 사이즈의 옷을 만들었다. 에델가르트가 베르나데타보다 키가 크긴 했지만, 기장만 조금 손보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옷 기장도 에델가르트 씨에 맞춰놨단 말이야!”

  “처음 기장 재고 나서 다시 안 재봤지?”

 

  생긋 웃는 도로테아에 비해 베르나데타의 얼굴이 파랬다. 후다닥 옷을 펼쳐 제 팔에 가져다 댄 베르나데타가 울상을 지었다. 처음에 의도한 기장보다 짧았지만, 베르나데타에게는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딱 맞는 사이즈였다. 하필 이 옷의 초반 원단 작업을 도로테아에게 맡긴 것부터가 실수였다.

 

  “이, 이건 사기야!”

  “그치만 베르, 잘 들어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펠릭스가 산타 옷을 입는다고! 베르가 만든 옷을 말이야!”

  “그, 그건…… 좀 기쁘지만.”

  “베르가 산타를 같이 하면, 그 산타 옷을 입은 펠릭스랑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거잖아?”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딱 달라붙어 있어. 혹시 누가 알아? 이때다 하고 펠릭스가 고백……”

  “꺄악! 하지 마, 하지 마, 도로테아!”

 

  팔을 마구 휘저어 도로테아를 말렸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뛰어댔다.

  엄밀히 말하자면 펠릭스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 산타 복장을 하고 만나야 한다는 점이 걸렸다. 게다가 그 옆에 같이 서 있을 사람은 다름 아닌 힐다였다. 성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힐다 옆에서, 더벅머리를 한 자신이 같이 서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펠릭스 씨에 힐다 씨가 산타인데 베르가 그 사이에 있는 건 너무……”

  “베르, 자신감을 가져! 펠릭스가 좋아하는 건 베르잖아!”

  “으으, 그건, 그건 너무 낙관적인 평가고……”

  “펠릭스가 산타를 하기로 한 건 베르가 우리 반 산타라서 그런 건데.”

 

  한숨을 푹 내쉬며 도로테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베르나데타의 고개가 불쑥 위로 올라왔다. 붉게 물든 얼굴이 도로테아와 마주쳤다.

 

  “뭐, 뭐, 뭐?”

  “펠릭스도 산타를 안 한다고 막 화를 냈는데, 베르가 산타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선 마음이 바뀌었다나? 잉그리트가 그랬어, 달갑게 오케이한 건 아니지만 분명히 그 얘기를 들은 다음에 어쩔 수 없으니까 하겠다 그랬다고.”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홱 뒤돌아선 베르나데타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펠릭스 씨가? 그랬다고? 정말로? 베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걸까? 아냐, 그치만 그냥 다른 이유일 수도 있잖아. 펠릭스 씨는 친구들한테 좀 약한 경향도 있으니까 실뱅 씨나 잉그리트 씨가 계속 부탁하면 거절을 못 했을 수도…… 헉, 역시 그런 거겠지?

 

  “베~르~? 듣고 있어?”

  “어, 어, 응?”

  “펠릭스가 산타 복장을 기대하고 있대. 물론, 베르가 입은 걸.”

 

  도로테아의 미소까지 얹어져 금상첨화였다. 그 말은 베르나데타를 결국 KO 시켰다. 부들부들 떨던 베르나데타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테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짝 손뼉까지 친 그녀가 베르나데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

 

*

 

  “무슨 일이야?”

  “베르가 못 나오겠대.”

 

  마침내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7시까지는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연회장에 모여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산타인 베르나데타는 기숙사 방 안에 있었다.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인지, 이제 문 앞에는 도로테아와 에델가르트까지 두 명이 서 있었다.

 

  “베르나데타.”

  “힉, 에델가르트 씨?”

  “시간이 얼마 없어. 이러다간 늦을 거야.”

  “그, 그, 그치만, 이런, 이런 꼴로 나갈 수는 없어요오오!”

 

  도로테아의 한숨이 깊었다. 도로테아가 펠릭스의 이름을 꺼내는 바람에 설득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펠릭스 때문에 마찬가지로 나가기가 싫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펠릭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만든 멋진(어쩌면 귀여운) 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과 그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부끄러운(어쩌면 귀여운)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였다.

 

  “베르나데타, 이미 정해진 사항이잖아. 따르지 않으면 흑수리반으로서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져. 부탁이니까 나와줘.”

 

  에델가르트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늘 그렇듯, 친구들에게는 참으로 약했다. 에델가르트 씨가 이러는 건 반칙이라고, 부루퉁하니 중얼거리며 결국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서도 차마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서 있었다. 모자의 끄트머리에 달린 동그란 술이 이마를 톡 쳤다. 빨간 장갑을 낀 손으로 마지막 보루라도 되는 양, 문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고개를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다시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아지는 순간, 탁, 문을 붙잡은 에델가르트가 조용히 말했다.

 

  “가자.”

  “으으으, 네에…….”

 

  베르나데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문을 열었다. 이제 7시까지는 3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도로테아와 에델가르트가 양옆을 지키듯 나란히 섰다. 베르나데타는 차마 놓고 올 수 없었던 고슴도치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공개 처형을 당하는 게 이런 기분일 거라 우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연회장 가는 길이 새삼 너무도 가까웠다. 평상시엔 너무 멀어서 힘들다고 불평을 하고는 했는데, 오늘따라 몇 걸음 만에 도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연회장의 커다란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 안은 파티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테이블 한가득 올라온 음식과 가장 안쪽에 우뚝 서 있는 트리, 벽을 수놓은 장식까지 크리스마스를 즐길 준비가 완벽했다. 단 하나, 산타를 제외하면 말이다.

 

  “어이, 늦었잖아.”

  “펠릭스, 좀 더 상냥하게 대해줘~”

 

  베르나데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산타 동지들이 그녀를 마중 나온 모양이었다.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찬가지로 산타 옷을 입은 펠릭스와 힐다가 서 있었다. 그 순간, 베르나데타는 지금까지의 모든 감정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펠릭스도, 힐다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물론 간단한 치수를 받아서 제작하긴 했지만, 마네킹에 입혀놓은 것과 당사자가 입는 것은 퍽 느낌이 달랐다. 베르나데타의 눈이 반짝였다.

 

  “엄청나게 잘 어울려요! 두 분 모두! 세상에,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요. 힐다 씨, 너무 귀여워요. 아아, 이걸 보려고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고생을…… 아, 물론 펠릭스 씨도 정말 멋있어요. 역시 장식을 달길 잘했다, 헤헤. 이거야말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거로군요!”

  “와~ 고마워! 이렇게 예쁜 옷 만들어준 것도 고맙고! 베르나데타도 잘 어울려!”

 

  배시시 웃던 베르나데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본인이 산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베, 베르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요, 원래는 에델가르트 씨가 입을 줄 알고 욕심을 좀 부려서 만든 건데, 이걸 왜 베르가 입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잘 어울리기만 하는데 왜.”

 

  펠릭스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 베르나데타를 더욱 사색으로 만들었다. 어머나 소리가 도로테아에게서 나온 것인지, 힐다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날아갔다. 히이익,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려는데, 펠릭스가 탁 손을 붙잡았다.

 

  “히이익, 페, 페, 페, 펠릭스 씨?!”

  “어딜 도망가. 이런 옷을 입혔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라고.”

  “채, 책임, 책임이라뇨?!”

  “선물 주러 레츠 고~!”

 

  힐다가 신나게 외치면서 베르나데타의 비어 있는 팔에 팔짱을 꼈다. 졸지에 손과 팔이 봉인된 베르나데타가 울먹이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도로테아는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에델가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울고 싶은 건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자신의 손을 꽉 잡은 펠릭스의 손은 기뻤지만,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수치심이 상쇄될 만큼은 아니었다. 힐다 역시 만들어준 옷을 기뻐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그렇게 예쁜 모습인 힐다에 비해 자신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머릿속에서 감정들끼리 어마어마한 전투를 벌여댔지만, 발은 착실하게 두 사람에게 맞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선생님, 산타 왔어요~”

  “기다렸어. 각자 자기 반에 선물을 나눠주도록 해.”

  “반별로 개수를 맞춰 놨으니까 아무거나 가져가.”

 

  크리스마스 때문에 신난 것은 벨레스와 벨레트도 매한가지인 모양이었다. 산타 모자를 쓴 벨레스와 루돌프 코를 끼우고 있는 벨레트 앞에 선물 꾸러미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무거울 것 같은데~ 선생님이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선물을 나눠주는 건 산타의 몫이지, 루돌프의 몫이 아니다.”

  “왜요, 루돌프도 산타랑 같은 편인데. 뭐, 농담이에요. 이 정돈 거뜬하죠.”

 

  농담 따먹기라도 하듯, 벨레트에게 장난을 치던 힐다가 제일 먼저 꾸러미를 들고 룰루랄라 돌아섰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펠릭스, 베르나데타 잘 도와줘야 해!”

 

  윙크까지 찡긋하는 걸 보니, 어쩐지 도로테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정신을 차린 베르나데타가 허둥지둥 힐다에게 인사를 했다. 급격히 작은 방 안이 조용해졌다. 어색한 공기 때문에 선뜻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산타 옷을 베르나데타가 만들었다고 들었어. 고생이 많았네.”

  “앗, 아녜요, 그, 재료비도 주셨고 수고비도 받았거든요. 게다가 힐다 씨도, 펠릭스 씨도 너무 잘 어울리니까 만든 사람으로선 엄청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베르나데타도 귀여워.”

 

  갑자기 튀어나온 벨레스의 칭찬에 베르나데타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만 벙긋거리는데, 벨레스의 시선이 펠릭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렇지, 펠릭스?”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홱 고개를 돌린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벨레스나 베르나데타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꾸러미 두 개를 전부 들어 올렸다.

 

  “가자.”

  “앗, 펠릭스 씨, 같이 가요! 서, 선생님,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

 

  베르나데타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벨레트가 손을 흔들었다. 이어서 벨레스의 손 인사까지 본 베르나데타가 후다닥 뒤를 돌아 달렸다. 펠릭스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탓에 벌써 꽤 거리가 있었다.

 

  “펠릭스 씨, 그, 그건 베르 주세요.”

  “인형을 들고 꾸러미를 어떻게 들게.”

  “드, 들 수 있어요! 그 정도는!”

 

  하지만 펠릭스는 결국 연회장에 도착해 흑수리반이 모여 있는 테이블 앞에 도착할 때까지 꾸러미를 넘겨주지 않았다.

 

*

 

  크리스마스 파티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선물을 나눠줄 때마다, 진짜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는 것처럼 눈을 빛내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도 행복했다. 금사슴반 테이블에서 힐다가 이렇게 예쁜 옷을 입었을 때 사진을 많이 남겨야 한다며 온갖 사람을 옆에 끼고 열심히 핸드폰을 누르는 모습도 기뻤다. 펠릭스의 인기도 그에 못지않았는데, 펠릭스의 반대로 각자 셀카를 남기는 건 실패해 청사자반의 단체 사진만 간신히 찍은 모양이었다.

  물론 생각보다 힘들기도 했다. 도로테아가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며 연신 찰칵거리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벨레트의 루돌프 코를 빌려온 카스파르가 산타와 루돌프는 세트라며 베르나데타를 번쩍 들어 올린 채로 연회장을 한바탕 질주하기도 했다. 덕분에 베르나데타의 비명이 요란했지만, 그 누구도(펠릭스는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걸 말리지는 않았다. 교직원들도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파티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분위기가 잔잔해졌다. 진즉 물러나기를 원했던 이들 몇몇은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고, 그 와중에 몇몇은 짝을 지어 운동장 쪽으로 나가는 것도 같았다. 운동장도, 정원도, 온실도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어딜 가나 좋은 데이트 장소가 될 것이었다.

 

  “어이, 베르나데타.”

  “힉, 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던 베르나데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릭스가 옆에 서 있었다.

 

  “더는 여기서 못 버텨. 나가자.”

  “그, 그, 그래요!”

 

  펠릭스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따라 나오리라 생각했는지, 펠릭스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베르나데타도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회장 자체는 먹는 데 집중한 몇 명을 빼고는 저마다 담소를 나누는 데 집중한지라, 두 사람을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페, 펠릭스 씨, 어, 어디 가세요? 기숙사는 저쪽……”

  “끝까지 책임지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책임인데요오오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어쩐지 대답을 듣는 것도 부끄러워져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말없이 펠릭스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전에 머릿속으로 멋진 데이트 장소가 될 것이라 그렸던 곳들을 하나씩 지나쳤다. 환하게 가로등을 비춰놓은 운동장도,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다과회 장소라는 정원도, 베르나데타도 한숨 돌리러 자주 가는 온실도 지나쳤다. 갈 곳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펠릭스는 멈추지 않았다. 연말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장갑에 넥워머까지 한 탓인지 코끝만 조금 시렸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어쩐지 가슴도 같이 간질거려 재채기가 날 것 같았다.

 

  “펠릭스 씨, 어디까지……”

  “눈이 오는군.”

  “네?”

 

  펠릭스가 멈춰 섰고, 베르나데타도 따라 멈췄다. 펠릭스가 한 손을 허공으로 내밀고 있었다. 마침 그의 손 위로 눈송이가 하나 톡 내려앉았다. 베르나데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진짜예요! 눈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예요!”

 

  베르나데타는 번쩍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송이가 하나둘, 조금씩 내려왔다. 펑펑 내리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배시시 미소가 나왔다. 눈이 오는 것은 좋았다. 딱히 밖에 나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취미는 없었지만, 눈이 오고 나면 온 세상이 고요함에 잠겨 들어가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베르나데타.”

  “네?”

  “선물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덕분에 눈을 깜빡이며 펠릭스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달빛 때문에 펠릭스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그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산타도 선물은 받아야 할 거 아냐.”

  “저, 저 주시는 거예요?”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는데?”

 

  가슴이 간질거렸다. 어쩐지 함박웃음을 지어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자신의 귀를 의심했기 때문에, 베르나데타는 되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짜 베르가 받아도 되나요?”

  “너 주려고 골랐다고.”

  “저, 정말요?”

  “쳇, 싫으면……”

  “안 싫어요! 기뻐요!”

 

  도로 물러나려는 펠릭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의 손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선물 상자가 금방 손에 들어왔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웠다.

 

  “지, 지금 풀어봐도 되나요?”

  “맘대로 해.”

 

  상자를 여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달칵, 소리를 내며 상자가 열렸다. 작은 펜던트였다.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젠가의 점심시간에, 도로테아와 들여다보던 잡지에 실린 그 펜던트였다. 색이 마음에 들어 귀엽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페, 펠릭스 씨, 이걸 어떻게…… 아니, 어, 이걸, 어, 왜…….”

 

  머릿속이 하얬다. 기쁘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갖고 싶었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로 주었다. 가슴이 벅차올라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눈치를 채라고.”

  “뭐, 뭘요?”

 

  여태까지 눈을 맞추지 않았던 펠릭스가 돌연 눈을 마주쳐 왔다. 대번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똑바로 다가오는 시선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좋아해, 널.”

 

  세상이 조용했다.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면서 세상의 작은 소음들을 집어삼키는 모양이었다. 바람 소리만 고요히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펠릭스 씨!”

  “뭐, 뭐야, 왜 울어?”

  “저도, 베르도 좋아해요!”

 

  당황한 펠릭스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미 터져버린 눈물이 주룩주룩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예상치 못한 고백에 눈물만이 아니라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난다더니, 그 말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아, 알았으니까 울지 마. 그만 울라고.”

 

  펠릭스는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뭔가를 찾는 듯, 옷을 뒤적였지만 원하는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코를 훌쩍이다가 그대로 펠릭스의 품으로 홱 뛰어들었다. 펠릭스가 양팔을 벌린 채로 얼어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베르나데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펠릭스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좋아해요, 펠릭스 씨. 너무 좋아서 눈물이 안 멈춰요.”

 

  훌쩍이는 와중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 어정쩡하니 공중에 떠 있던 펠릭스의 팔이 베르나데타의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운지,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팔에 꼭 힘을 주면서 눈물을 삭였다.

 

  “고마워요, 펠릭스 씨. 선물도, 고백해준 것도요.”

 

  갑자기 터진 눈물처럼, 자꾸만 떠오르는 미소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여러 방면에서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렇습니다.

파엠히가 크리스마스 산타 일러를 주었고

이것은 펠베르를 쓰라는 계시라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알콩달콩보다 모두가 베르를

귀여워하는(괴롭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네요.

가나 쌤이 베르를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모두 베르를 사랑해주세요(뜬금

 

 

사실 펠베르는 사귀기 전부터 되게

주변 친구들한테 쟤네 서로 좋아하지 않냐고 유명할 것 같아요.

베르는 워낙 티가 나고

펠릭스도.... 뭐 그렇죠 워낙 티가 나겠죠

모를 리가 없겠죠

그래서 도로테아는 이 기회에 하고 등을 떠밀어주는 거죠

물론 에델한테 산타 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겠지만...

풍설 세계의 가르그 마크는 1년이지만

뭐.... 현대 AU니까 고등학교처럼 3년 정도 합시다.

내년엔 에델이 입는 것으로 하면 되겠죠(?

 

펠베르 사귀어라... 예쁘게 사랑하렴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감기 조심하시고 코로나 조심하시고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