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 휴베르트 x 베르나데타 (휴베르)
- 2부의 언젠가
- 휴베르 위크 2번째 날: 밤
어쩐지 따뜻하다.
그런 감각에 익숙하지 않은 휴베르트 폰 베스트라는 묘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 따스함이 어디서부터 오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손인 것 같았다. 사실 그의 손은 찬 편이다. 장갑을 낀 덕에 약간은 보온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물론, 그런 이유로 착용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느끼는 따뜻함은 제 것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 손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휴베르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거의 반사 작용과도 같아서, 몸도 튕겨 올라왔다. 덕분에 제 손을 잡고 있었을 상대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휴, 휴베르트 씨!”
“베르나데타 님, 왜 여기… 그보다 전투는 어떻게 됐습니까?”
질문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중간에 깨달은 휴베르트가 말을 고쳤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상황이었고, 누워 있던 곳은 치료 막사 안이었다. 소란스럽지도 않고, 힐러와 의사들은 차분했다. 현재 그곳에 차분하지 않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베르나데타 폰 발리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썼는지 얼굴이 거뭇거뭇해, 또르르 흘러내린 눈물이 볼 위로 그대로 길을 그렸다. 코를 훌쩍이며 다시 다가온 그가 휴베르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요, 휴베르트 씨.”
“베르나데타 님. 전투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을 텐데요.”
“이겼어요.”
안도의 한숨이 무심코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작전은 성공한 것 같았다. 세세하게 뜯어보면, 휴베르트가 담당하기로 했던 구역의 작전은 실패한 셈이지만, 전투에서 이겼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전혀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휴베르트의 손을 적셨다.
“귀하께선 왜 우시는 겁니까?”
“어, 어떻게 안 울어요! 이 상황에!”
“이 상황이라 하심은……”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베르나데타는 보통 휴베르트를 보면 울거나, 무서워하거나, 가끔 웃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입술을 꾹 깨문 베르나데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덕에 휴베르트는 드물게 당황했다.
“쓰러졌잖아요! 휴베르트 씨가! 피를 얼마나 흘린 줄 아세요? 베르는 휴베르트 씨가 그 자리에서 주, 죽는 줄만 알았다고요!”
“죄송합니다.”
“베르는 그렇게 냉정하지 못하다고요! 그, 그대로 휴베르트 씨가 죽으면 어떡하나 너무, 너무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가서 끌어안고 싶었는데……”
와앙, 크게 울음이 터졌다. 와중에도 베르나데타가 휴베르트의 손을 놓지 않은 탓에,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어중간한 거리 때문에 어떤 위로의 행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휴베르트는 조용히 그 울음을 듣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렸지요.”
휴베르트도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친구들의 안위에 상당히(휴베르트의 측면에서 보자면 과할 정도로) 신경을 썼고, 그게 전투에도 이어지는 편이었다. 주변에서 다치는 사람이 발생하면, 그 상대를 걱정하느라 바로 그 자리에 원군으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전쟁이란 사소한 틈으로도 승패가 갈리는 법이었다. 따라서, 휴베르트는 이번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베르나데타에게 자신이 혹시 다치거나 쓰러지더라도 절대 자리를 떠나지 말고 부대를 끝까지 지휘할 것을 요구했더랬다. 그의 부대가 휴베르트의 부대 바로 옆에서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베르나데타를 자신의 옆 부대로 배치한 것은 휴베르트의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주군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해치우는 휴베르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베르나데타 역시 돌발 상황으로 기존 작전에서 이탈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다. 기세가 오른 부대원들이 퇴각하는 적을 쫓아 너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을 때였다. 저 또한 달려드는 적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느라 제지가 약간 늦었을 뿐이었는데, 그 피해는 참혹했다. 땅속에 무언가를 장치해 놨는지 선두에 있던 병사가 어느 지점을 밟는 순간, 그 주변의 모두가 허공으로 붕 날아갔다. 방어 마법을 쓰기엔 너무 빠른 속도로 그 여파가 다가왔다. 마지막에 쓴 마법이 거대한 방어막을 펼치는 마법이었는지, 아니면 음울한 보랏빛 오라를 끌어낸 공격 마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저는 귀하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믿음은 틀리지 않았지요. 베르나데타 님은 훌륭하게 자리를 지켜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이 전투에서 이기셨겠지요.”
“아니에요.”
“네?”
“훌륭하게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고요.”
베르나데타는 훌쩍거릴 뿐, 더 설명하지 않았다. 휴베르트로선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의 전황을 다시 머릿속에 그렸다. 어떻게 생각해도 기존 작전대로 이행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만약 베르나데타의 부대가 쓰러진 휴베르트를 호위하기 위해 자리를 이탈했다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겨서 증원 부대에 밀려 전황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제발요, 휴베르트 씨.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잖아요. 휴베르트 씨는 쉬셔야 해요.”
“아뇨, 중요합니다. 베르나데타 님도 제가 대답을 듣기 전까진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계실 텐데요.”
온몸이 욱신거리는 걸 봤을 때 쉬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했지만, 솔직히 호기심이 더 동했다. 자신의 전술을 뛰어넘을 만큼의 무언가를 해냈다면,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서도 알고 싶었다. 더군다나 그 베르나데타였다. 방에 틀어박히기를 누구보다도 원하고 사랑하는 그가 가끔 보여주는 비범함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베, 베르가 자리를 안 지켰다고 화가 나신 거군요! 알아요, 휴베르트 씨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거긴 한데, 그치만, 그, 그래도 이겼잖아요! 휴베르트 씨도 여기 무사히 왔고……”
“화나지 않았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들려는 듯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휴베르트는 이미 이런 상태의 베르나데타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휴베르트는 그를 향해 웃거나, 혹은 피하거나 하는 어떤 종류의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베르나데타가 잡은 손을 꽉 맞잡았을 뿐이었다.
“휴베르트 씨 부대에 퇴각을 명령하고 베, 베르네 부대도 전진하지 못하게 했어요. 땅속에 뭔가 장치가 된 것 같아서 그걸 다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불화살을 매기고 마법사분들께 바람 마법을 써달라고 했어요. 맞바람이 불면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을 테고, 그럼 땅속 장치만 딱 없애기 쉬울 것 같아서……”
처음부터 화공을 하지 않았던 것은 적군이 있는 쪽에서 아군을 향해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강풍 수준은 아니었지만 불을 지르면 아군이 피해를 볼 확률이 높았다. 상대 쪽의 화공에 대비하느라 마법사 부대에서 대규모 방어진을 친 것이기도 했다.
“오호라, 괜찮은 방법이군요. 그래서요?”
“그 뒤엔 너무 정신없이 흘러가서…… 회복 부대를 투입하고, 화살도 미친 듯이 쐈고요, 또 베르도 한 번에 여러 명을 공격해야 했으니까…… 앗, 저, 절대 실수하지 않았어요!”
“변명하실 것 없습니다.”
“그, 그치만…… 휴베르트 씨가 걱정돼서 안 갈 수가 없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휴베르트 씨 부대를 합쳐서 인원을 재정비하고 반으로 나눠서 원래 작전대로 각각 진행했어요. 베르는 휴베르트 씨 옆에서 후방 지원을 하고요.”
베르나데타가 하도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한 탓에, 귀를 기울이느라 몸이 다 앞으로 기울었을 정도였다. 훌륭한 판단이었다.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는 부탁은 결국, 지키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부대가 통째로 원호를 위해 원래의 작전 구역을 이탈하는 일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정신을 잃은 자신을 대신해 지휘를 잡았으니, 동시에 두 개 부대를 지휘한 셈이었다.
“베르나데타 님, 왜 제가 화가 났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아주 훌륭하게 대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치만 베르는 자리를 이탈했는걸요! 구하러 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만……”
휘둥그레진 베르나데타의 두 눈에 제가 비쳐 보였다. 이런 경험은 영 낯설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둔 적이 없었다. 휴베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빈손을 뻗어 베르나데타의 볼을 쓸었다. 거뭇거뭇한 자국이 손가락에 밀려 사라졌다.
“부대가 통째로 이탈하면 이미 쓰러진 자뿐만이 아니라 베르나데타 님과 그 부대도 함께 위험해집니다. 굳이 양쪽 부대가 모두 전멸할 필요는 없지요.”
베르나데타가 그 손을 끌어다 쥐었다. 이젠 양손이 다 붙잡힌 휴베르트는 얌전히 그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휴베르트의 양손을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꼭 쥐었다.
“베, 베르는 휴베르트 씨가 마…… 만약에라도 그 순간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차가운 땅바닥에서 홀로 쓸쓸하게 떠나게 놔두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누구라도 그렇지만, 휴베르트 씨라면 더더욱이요.”
그친 줄 알았던 눈물이 또 뚝 떨어졌다. 다시 볼을 닦아줄 손이 없었던 휴베르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소리에 흠칫, 베르나데타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는 그다웠다.
“바보 같은 말씀 마시지요. 제가 떠난다고 베르나데타 님까지 죽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르에겐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에요.”
“가치요?”
“정말로 그게 마지막이라면…… 베르의 품에서 숨을 거두길 바랐어요. 마지막 온기는 베르가 다 끌어안고 싶었어요. 그 순간만이라도 베르가 안식을 줄 수 있길 바랐어요. 하지만, 하지만 진짜로, 진짜 속마음은…… 휴베르트 씨가 내 온기를 느끼고 돌아오길 바랐어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런 순간에 속했다. 가만 보면 그런 상황은 늘 베르나데타와 대화하다가 생겼다. 휴베르트는 참으로 난감한 상대에게 마음을 허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놔두면 휴베르트 씨가 가버릴 것 같았단 말이에요.”
“그거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말씀이시군요.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맘 편히 눈 감아도 되는 상황이 아니지요.”
“그치만……”
“그리고 베르나데타 님 또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요.”
자기도 모르게 큭큭 웃음이 나려고 했다. 제 믿음을 보기 좋게 깨뜨려주고, 그보다 더한 신뢰로 갚아주는 그가 있어 세상이 조금은 즐거운 것 같았다. 참지 못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휴베르트는 두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반대로, 자신이 베르나데타의 두 손을 꼭 쥐었다.
“귀하께선 이런 저까지도 챙기시니,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당분간은 제가 곁에서 돌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하 또한 폐하께 아주 귀중한 존재이니까요.”
“휴, 휴베르트 씨!”
어디서 저렇게 많은 양의 눈물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라고, 늘 생각했다. 베르나데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수수께끼를 앞으로 얼마나 더 알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예 휴베르트의 다리에 엎어져 울고 있는 베르나데타를 보며, 휴베르트는 큭큭 웃었다.
“뭐, 온기를 느끼고 돌아온 건 틀리지 않은 것 같군요.”
“네?”
“혼잣말입니다.”
휴베르트가 코를 훌쩍이는 베르나데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늘 휴베르트의 가슴 주머니를 장식하고 있던, 베르나데타가 꽃 자수를 놓은 그 손수건이었다. 정신을 차린 뒤로 처음으로, 베르나데타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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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베르 위크가 하는 중이라길래
급하게 써봤습니다
소재가 신뢰였는데
신뢰가 나오긴 한 건지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휴베르 너무 귀엽지 않나요?
그 휴베르트가 그 베르나데타에게 코 꿰이는 게!
아주 귀엽고 좋습니다
다들 휴베르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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