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를 드려요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1부의 언젠가(아직 안 사귐)

- 밸런타인&화이트데이 소재



  “선생님, 이게 뭐예요?”

  베르나데타가 ‘이것’이라 말한 것은 벨레트가 눈앞에 들이민 작은 천 꾸러미였다. 잠깐만, 그리고 살짝만 문을 열어주면 된다는 벨레트의 말에 정말 눈 하나만 빼꼼 보일 만한 공간을 만들었더니 불쑥 그 꾸러미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답례다.”
  “답례요?”
  “얼마 전에 디저트를 줬잖아.”
  “아.”

  약간 멍청하게도 들릴 법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베르나데타는 그제야 그 꾸러미를 손에 받아들었다. 손에 미지근하게 온기가 퍼졌다. 아무래도 디저트에 디저트로 답례를 받은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그럼 이만.”
  “어? 서, 선생님!”

  자기도 모르게 홱 문을 열어젖히고 벨레트의 망토를 붙잡았다. 이미 몸이 저만치 돌아가 있던 벨레트가 고개를 돌렸다. 화끈거리는 볼은 벨레트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제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차…… 차 드실래요?”

  더듬더듬 겨우 꺼낸 말이 고작 그것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속으로 이 바보, 멍청이 따위의 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을 매도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망토 자락이 스르륵 바닥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좋아.”

  푸른 눈동자가 똑바로 마주쳐오자 가슴이 세게 뛰었다. 베르나데타는 망토를 훅 놓고 얼른 문을 열었다. 이 문을 이렇게까지 활짝 연 게 얼마 만일까. 아직 산을 다 넘어가지 못해 걸려 있던 햇빛이 문 쪽에서 자신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게 낯설었다.
  이 시간에는 초를 켜놓지 않아도 원래 방이 밝구나.
  붉게 물든 방을 망연히 바라보던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시선을 받은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후다닥 벨레트를 자리로 안내하고 다기를 꺼냈다. 어쩌다 이런 일(자신의 손으로 직접 벨레트를 방으로 들이는 일)이 벌어졌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서고에 틀어박혀 한창 책을 읽다 보니 바다 너머의 아주 머나먼 이국땅에는 특정한 날이 되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초콜릿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또 다른 책을 펼쳐 보았다. 제대로 설명이 된 책이 없어 책장 한 단을 다 비운 뒤에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카카오’라는 열매로 만든 달콤한 디저트. 굳혀서 먹기도 하고 물에 녹여서 따뜻한 차처럼 마시기도 한다. 빵이나 쿠키 등에 넣어 풍미를 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달콤한 디저트니 애정을 담는 것이리라. 베르나데타는 이국의 요리책에서 묘사하는 맛 설명을 읽으며 입맛을 다셨다. 책을 탁 덮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식사한 지도 좀 됐으니 간식이 먹고 싶어질 시간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책을 싹 정리해놓고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이 시간에는 식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주방장에게 부탁하면 주방을 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주방은 한산했고, 쉽게 주방을 빌렸다. 밀가루를 손에 쥐고 나니 책의 내용이 다시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초콜릿을 선물한다.’ 초콜릿이 아니어도 달콤한 디저트는 많았다. 자연스럽게 벨레트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자기 간식용으로 만들던 디저트가 두 배가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드세요.”

  달콤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향을 맡고 있자면 혼란스럽던 머리도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았다. 벨레트는 짤막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차를 홀짝 들이켰다. 테이블에는 벨레트가 준 꾸러미에서 꺼낸 쿠키도 예쁘게 놓여 있었다.

  “달군.”
  “아, 베리 티거든요. 헉, 이럴 수가, 디저트가 있는데 또 단맛의 차를 드리다니! 베르가 바보 같은 실수를 했어요, 어떡하지? 다, 다, 다, 다른 걸 새로 내려드릴까요?”
  “괜찮아. 그 쿠키는 달지 않아.”
  “그, 그래요?”

  달지 않다는 말이 왠지 가슴에 콕 박혔다. 흔히들 애정에는 ‘달콤하다’ 같은 수식어를 붙이니까 달콤한 디저트에 애정을 담아 선물하는 거로 생각한 탓이었다. 베르나데타는 굳어지려는 표정을 숨기고자 얼른 차를 들이켰다. 베리 티는 향긋하고, 따뜻하고, 달콤했다.

  “저번에 준 쿠키…… 아니, 그건 빵이라고 해야 맞나? 잘 먹었어.”
  “앗, 괜찮으셨어요? 혹시 입에 안 맞으실까 봐 걱정했어요. 베르 입맛에 맞춰서 만든 거라 꽤 달게 만들었거든요.”
  “달았어.”
  “헉, 단건 역시 싫으세요? 베르가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께 고역을 치르게……”
  “아니, 맛있었어.”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벨레트가 다시 베리 티를 홀짝였다.

  “답례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했는데 디저트를 받았으니 디저트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주방장에게 도움을 받았다.”
  “네? 선생님이 직접 만드셨어요?”

  고개를 끄덕인 벨레트가 손을 뻗어 쿠키를 쥐었다. 그러더니 그걸 그대로 베르나데타에게 내밀었다. 명백하게 먹어보라는 뜻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어 쿠키를 받아들었다. 벨레트도 가끔 요리를 했고, 그보다 더 가끔 베르나데타도 옆에서 거들고는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쿠키나 빵, 케이크를 굽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커다란 손으로 반죽을 치대고 하나하나 동글게 모양을 잡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괜스레 미소가 나왔다.
  쿠키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벨레트가 예고한 대로 달지는 않았지만 견과류를 넣었는지 고소했다. 한 입을 더 먹은 베르나데타는 베리 티를 내리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모자란 단맛은 베리 티가 채워주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맛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주방장은 단걸 추천했지만 안 그러길 잘했군.”
  “네? 왜요?”
  “베르나데타는 차도 단걸 좋아하잖아.”
  “윽. 베르의 취향을 다 꿰뚫어 보셨군요?”

  베르나데타의 말에 벨레트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에 잠긴 듯, 벨레트의 시선이 테이블의 빈 곳을 향했다. 베르나데타도 벨레트를 따라 무심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오독오독, 쿠키를 먹는 소리만 조용히 방을 채웠다. 그러다 갑자기 벨레트가 입을 열었다.

  “베리 티와 벌꿀 과일차를 좋아하지. 달콤한 타르트나 사가르트도 좋아하고, 고기보다는 채소와 생선 요리를 더 좋아해. 벌레잡이풀을 좋아하고 인형을 좋아해. 자수를 놓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서고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베르나데타는 쿠키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벨레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아 입만 뻐끔거리고 있자니 벨레트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마음이 편한 상대에게는 문도 열어주고.”

  벨레트가 희미하게 웃는 것도 같았다. 금세 찻잔에 얼굴이 가려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귀가 터져나갈 정도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쩔 줄을 몰라 찻잔에 코를 박은 사이, 벨레트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베르나데타가 앉은 자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쿠키 접시를 쓱 밀어놓았다.

  “차 잘 마셨어. 디저트는 베르나데타가 마저 먹도록 해. 선물한 거니까.”
  “어, 네, 네. 가,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차 마시자.”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벨레트는 성큼성큼 문밖으로 나갔다. 반동으로 잠깐 끽 소리를 내던 문이 조용해졌다. 방 안에 혼자 남은 베르나데타는 벨레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차근차근 단어를 곱씹었다.

  다음에. 또. 차 마시자. 또?

  “으아악!”

  기숙사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 * * * * * * * * * * * * * * * * * * *

 

처음 소재를 떠올린 건 밸런타인 때

화이트데이 때도 쓰고 싶었는데

진짜로... 두 달 동안 너무 바빴어서

전혀 손도 못 대다가 이제야 쓰네요 ㅋㅋㅋㅋ

포드라엔 밸런타인도 화이트데이도 없겠지만

그래도 디저트에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