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엔딩 후

- 레트베르 강화 월간 첫째 주: 꽃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은은하게 퍼지는 저녁이었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와중에도 바람이 선선하지 않은 걸 보니 여름이 한껏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문득 더듬어 보니, 한가하게 꽃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사관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 같았다. 베르나데타는 새삼 솟아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하늘을 향해 인사했다.


 이 꽃은 따다가 차로 우려 마시고, 이건 책 사이에 종이와 함께 끼워서 책갈피로 만들면 오래 쓸 수 있겠다. 그리고 또 이 꽃은……

 

 연신 떠오르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차로 마실 꽃 몇 송이와 책갈피로 만들 한 송이를 꺾어다 바구니에 넣고, 베르나데타는 몸을 일으켰다. 슬슬 들어가서 저녁 식사 전까지 영주로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래야 식사 시간에는 마음 놓고 벨레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었다.

 

 즐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문득 눈에 들어온 화단이 있었다. 하얀 꽃송이와 노란 꽃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 꽃은 줄기째로 엮어서 화관을 만들어도 예쁘겠다.

 베르나데타는 머릿속에 떠올린 이의 머리 위에 가상의 화관을 얹어 보았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손을 뻗어 꽃송이들을 더 꺾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왠지 마음이 급해져 부리나케 저택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 영주로서 업무를 하겠다는 조금 전의 다짐은 이미 새까맣게 잊어버린 뒤였다. 베르나데타는 짐을 받아주겠다, 목욕하시겠냐 등 하녀들의 말에 대충 거절의 의사를 밝히며 계단을 올랐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지라 하녀들도 크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방해 없이 금방 방에 들어간 베르나데타는 바구니를 뒤집어 꽃들을 바닥에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바닥에 털썩 앉았다. 하녀들은 기겁하겠지만 베르나데타는 흙바닥이나 저택의 방바닥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꽃들을 어떻게 엮어서 예쁘게 만들까 하는 점이었다.


 “이걸 여기다 이렇게…… 아니다, 색이 영……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은가? 앗, 하지만…… 으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얼마나 거기에 매달려 있었을까. 막 화관을 완성한 참에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둥지둥 들어오라고 답하니 문이 열리며 하녀 하나가 들어왔다.

 

 “영주님, 부군께 전투가 길어질 것 같아 오늘 못 오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새벽을 넘겨 바로 제도에 가서 보고를 마친 후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시는데, 전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헉, 그렇구나…… 그럼 내일도 못 올 수도…… 그, 그럼 내가 제도에 간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하녀가 방에서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베르나데타는 실망감을 가라앉히고자 숨을 가다듬었다. 저녁이면 벨레트를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벨레트의 잘못은 아니었다. 포드라가 통일된 지 1년이 더 넘었으나 어둠에서 꿈틀대는 자들은 이렇게 꼭 평화롭게 틀어박히는 행복을 방해하고는 했다.

 

 “역시 같이 갈 걸 그랬나. 보고 싶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며 집에서 기다려도 된다는 벨레트의 말에 얌전히 저택에 머무르기로 했던 것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손에 들고 있던 화관을 조심스레 책상 위에 얹어두었다. 아침 일찍 제도로 출발하려면 미리 채비하고 일찍 자야 했다.

 

*


 제도에 나타난 베르나데타 때문에 제일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에델가르트였다. 벨레트 없이는 혼자 먼 길을 나서는 법이 없던 터라, 국정 보고를 받을 때도 항상 베르나데타 옆에 벨레트가 함께였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며 휴베르트가 낮게 웃음을 터뜨릴 만도 했다.

 

 “벨레트 씨는 아직 안 왔나요?”
 “전령이 새벽같이 먼저 와서 전투가 잘 끝났다고 보고했으니까 선생님도 곧 도착하지 않을까?”

 

 아침 일찍 출발한 보람이 있어, 아직 점심시간을 넘기기 전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에델가르트의 허락을 받아 궁성 입구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성문을 지키던 위병이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으나 베르나데타는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벨레트를 한시라도 더 빨리 볼 수 있다면 뭐든 견딜 수 있었다. 작은 가방에는 전날 만든 화관이 들어 있었다.

 기다린 지 십여 분이 지났을까. 멀리서 한 부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제일 앞서 다가오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밝은 옥색이어서 머리 색이 금방 눈에 띄었지만, 페르디아에서 있었던 그 마지막 전투 이후로 벨레트의 머리 색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짙은 청록색으로 돌아왔다. 머리 색이 어떻든 벨레트임에 변함은 없었지만 멀리서 한눈에 판별할 수 없게 된 점은 좀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아무리 작아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벨레트 씨!”

 

 들릴 만한 거리가 아니었으나 벅차오르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잠시 후, 벨레트로 보이는 이가 말을 몰아 빠르게 성문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 맨눈으로 명백하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베르나데타는 반가운 이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이내 말이 멈추고 벨레트가 내렸다. 미소 지은 벨레트가 마찬가지로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베르나데타는 쪼르르 달려가 그 품에 몸을 던졌다.

 

 “벨레트 씨! 보고 싶었어요!”
 “베르나데타, 일부러 제도까지 마중 나온 건가?”
 “그거야 어제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늦는다고 하니까…… 보고 싶잖아요!”

 

 자신을 꼭 안아 등을 토닥여주는 손이 좋았다. 벨레트의 옷에서 흙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인 묘한 냄새가 났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웠다. 벨레트는 어떤 어려운 전투를 겪어도 늘 제게 돌아와 주었다. 그 생각을 하면 이런 냄새도 벨레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앗, 벨레트 씨, 선물이 있어요!”
 “선물?”

 

 베르나데타는 얼른 가방을 열었다. 다행히 화관은 가방 안에서 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화관을 꺼내 들자 벨레트가 자연스레 허리를 낮춰 고개를 숙였다. 배시시 웃으며 베르나데타는 그 청록색 머리 위에 화관을 얹어주었다. 초록색 줄기가 머리 색에 어우러져 꼭 하얗고 노란 꽃송이들이 머리에 피어난 것 같았다.

 

 “잘 어울려요!”
 “그래?”

 

 벨레트가 후후 웃었다. 머리 색을 되찾은 이후로 벨레트는 감정 표현이 조금씩 늘어났다. 부드럽게 미소 지을 줄만 알던 그가 소리 내서 후후 웃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연스레 마주 웃게 되었다.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럼 폐하께 보고하러 가요!”

 

*

 

 “저기, 선생님?”
 “왜 그러지?”
 “그 화관은…… 왜 쓰고 있는 거야?”

 

 에델가르트는 알현실에 있던 모두(두 사람을 제외하고)가 궁금해할 질문을 했다. 근위병들이 하나같이 에델가르트가 그 질문을 해줘서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 보고를 마친 벨레트는 똑같이 업무 보고를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선물로 받았는데 바로 벗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큭큭, 귀하는 독특한 부분에서 예의를 차리시는군요.”
 “그런가?”
 “그, 그치만 벨레트 씨한테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쵸, 에델가르트 씨?”

 

 벨레트를 거들려던 베르나데타는 제 말에 에델가르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는 걸 보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인 만큼, 죄송하다고 비명을 지르며 벨레트의 뒤로 숨는 일은 꾹 참았다.

 

 “딱히 어울리지 않아서 물어본 건 아니야. 그냥 이 상황에 화관을 쓰고 온 게 낯설어서 그런 거지.”
 “보고 시의 예의에 어긋난다면 벗었다가 나가서 다시 쓰겠다.”
 “아니야, 괜찮아, 쓰고 있어. 베르나데타가 우는 게 더 곤란해.”

 

 에델가르트가 황급히 벨레트를 말렸다. 휴베르트는 옆에서 여전히 큭큭 웃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제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보고할 건 더 없지?”
 “그래.”
 “알았어, 물러가도 좋아. 깨가 쏟아지는 신혼인데 얼른 들어가는 게 좋겠지.”
 “감사합니다, 폐하!”

 

 베르나데타가 먼저 나서서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벨레트도 에델가르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자연스레 맞잡는 손과 에델가르트가 한 ‘신혼’이라는 말이 가슴을 간지럽게 했다. 화관이 잘 어울리는 남편과 함께, 베르나데타는 소중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것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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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베르 강화 월간의 첫째 주!

일단 목표는 주마다 하나씩 다 써보는 것인데 가능할지....?

테니스 원고도 하고 있는 중이라 힘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트베르 얼른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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