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합작 <사계절> 中 가을
야규 히로시 x 바바 토와
* 합작이 취소되어 이쪽으로 올립니다
9월 중순이 되어서도 햇볕은 뜨거웠다. 예전이라면 이미 가을이 시작되고도 남았을 시기였겠지만, 요즘은 늦여름과 초가을에 어중간하게 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선글라스를 챙겨올 걸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릴 정도로 바람은 시원했다.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단풍이 든다는 홋카이도는 풍경만으로는 이미 완전한 가을에 접어든 상태였다.
“단풍 진짜 예쁘게 들었다. 봐요, 야규상.”
“도쿄는 아직인데, 홋카이도는 정말 한창이군요.”
편한 면바지에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야규는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항상 딱딱하게 굳은 표정 대신 자리 잡은 엷은 미소는 한결 상쾌한 느낌을 더했다. 그 가지런하던 머리카락이 안경 위로 살짝 흩날렸다. 토와는 찰랑대는 앞머리와 동그란 안경, 그리고 그 밑의 날카로운 눈이 좋았다.
“좀 더 걸을까요?”
돌아보는 눈빛에 가슴이 뛰었다. 토와를 초대하듯 자연스럽게 야규는 왼손을 내밀었다. 이런 날 정도는 괜찮겠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토와는 야규의 손을 꼭 맞잡았다. 가을 햇빛 아래에서 걷기 딱 좋은 온도가 손끝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두 사람의 가을 단풍 여행은 정말 우연히 이루어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단풍이 아름다운 거리를 비추었을 때, ‘도쿄엔 단풍 언제 들까요?’라고 무심코 말했던 게 시작이었다. 워낙 바빴던 탓에 제 때 여름휴가를 쓰지 못한 야규는 그 휴가를 이용해 단풍 여행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토와는 9월에 무슨 단풍이냐며 웃었지만, 홋카이도로 전출 간 선배에게 받았다며 단풍 사진을 들이밀었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덕분에 토와는 이미 써버린 여름휴가 대신 금요일에 월차를 냈다. 짧게라도 다녀오자는 야규의 말에 넘어간 탓이었다.
“기왕이면 야규상 생일에 맞춰서 단풍여행 갔음 좋았을 걸.”
“그 때 제가 쉴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잖습니까.”
“그래도.”
볼을 잔뜩 부풀렸더니 야규가 낮게 쿡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볼에 바람은 빼지 않았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자니 왠지 조금 얄미웠다. 훅 바람을 빼낸 토와는 입술을 삐죽였다.
“왜 웃어요.”
“바바양이 귀여워서요.”
누가? 대답하는 대신, 토와는 고개를 홱 틀어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시 쿡 웃은 야규가 옆에서 따라 걷는 게 느껴졌다. 야규의 생일은 10월 19일. 한창 가을이니 단풍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와 다름없었다. 사실 영화를 보던 그 날, 야규가 ‘시월쯤엔 한창이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을 때부터, 그럼 야규상 생일엔 단풍을 보러 가자고 할 마음을 먹은 토와였다. 그런데 야규한테 선수를 뺏긴 데다, 그녀의 바람보다 날짜는 훨씬 일렀다. 야규와 함께 하는 여행이 싫지는 않았지만, 역시 날짜에 미련은 좀 남았다.
뜨거운 볼을 식혀주려는 듯 바람이 불었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무는 꼭 색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듯 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한두 장의 단풍잎은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다 산책로에 도장을 찍듯 내려앉았다. 햇볕은 따뜻했고 하늘은 높았다.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산책로를 물들이며 두 사람도 함께 물들였다.
“그래도 역시 보니까 좋다.”
“오길 잘했군요.”
“응, 진짜로.”
그 말이 기뻤다. 사소한 한 마디였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헤헤 웃음이 났다. 손등으로 볼을 꾹꾹 누르며 바닥을 보고 걷는 사이, 야규가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한 발 앞으로 나간 토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와.”
그대로 시선을 따라 올라가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란 하늘에 단풍잎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나무를 통째로 뒤집어 맑은 물속에 빠뜨린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떨어진 단풍잎은 새처럼 팔랑이며 하늘을 수놓았다. 이 장관에 저절로 입이 열리며 탄식이 나왔다. 정말 예쁘다.
갑자기 다가오는 체온에 고개를 내렸다. 야규가 가까웠다. 너무 심장이 뛰어서 눈을 마주치는 게 곤란할 정도로, 코끝의 숨 때문에 간지러울 정도로, 그리고 입술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토와는 눈을 꼭 감았다. 가을 냄새가 잔뜩 묻어나는 작고도 큰 스킨십은 은은한 듯 짙었다.
“정말 예쁘군요.”
귓가에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는 귀를 타고 내려와 가슴을 계속 간질였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은 아마도 단풍잎과 같을 거라 생각하며, 토와는 야규의 허리를 확 끌어안았다. 역시 이 사람이 너무 좋아.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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