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창가

                            유키무라 세이이치 드림

 

 

  빗줄기가 후드득 창문을 때렸다. 정말이지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였다. 속으로 기상청을 몇 번이고 욕하며, 히요리는 창가에 서 있었다. 어깨 위로 걸친 큰 카디건과 손에 쥔 머그잔 덕에 한기는 가셨지만 짜증은 났다. 창 틈새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찬 공기와 비 냄새가 싫었다. 딱히 비 오는 날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피크닉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꽃놀이는 사정이 달랐다.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면서 나란히 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데이트는 좋아했다. 그래서 일부러 옷도 편안하게(하지만 예쁘게) 입었다. 기대하던 날이라 머리를 세팅하는 데에도 힘을 많이 들였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서 만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쳐 들고 기다려 봐도 비는 영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꽃놀이는 다음에 하는 게 낫겠다며 유키무라가 먼저 히요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지금. 히요리는 유키무라의 집에 있었고, 유키무라의 카디건을 걸친 상태로 유키무라가 타준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집에서 느긋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물론 좋은 데이트였다. 다만, 몇 주 전부터 계획해 놓은 일정이 통째로 어그러지면 도저히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로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손가락으로 애꿎은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붙잡고 빙빙 돌렸다. 우산 하나로 폭우를 뚫고 오는 동안 착 가라앉은 머리가 거슬렸다.

 

  “히요리.”

 

  유키무라는 한쪽 어깨가 다 젖어버린 셔츠 대신 얇은 니트를 입고 있었다. 수건으로 물기만 대충 닦아냈는지 남색 머리카락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역시 한 손에 히요리가 든 것과 똑같은 머그잔을 쥐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더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추운데 왜 창가에 서 있어.”

 

  히요리가 다가오는 유키무라를 향해 손을 내밀자 자연스레 그 손을 맞잡아왔다. 히요리의 손이 찬 공기에 서늘해진 탓인지 유키무라의 손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냥.”

  “해가 쨍쨍해서 따뜻한 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히요리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유키무라는 항상 남의 속을 알면서도 아닌 척 말을 건넸다. 손바닥 위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들어 짜증 나고 재수도 없었지만(진심이다) 히요리는 그런 유키무라를 좋아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차를 홀짝이던 유키무라가 히요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시선을 마주쳐왔다. 히요리는 홱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짜증 나.”

  “그러네. 꽃놀이하고 싶었는데.”

 

  너한테 한 소리기도 하거든?

  알면서도 무시한 게 분명했지만 굳이 그 부분을 다시 짚지는 않았다.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게 맞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 머리도 엄청 예쁘게 했는데.”
  “응. 엄청 예뻤는데 아깝다.”
  “뭐야, 지금은 안 예쁘다고?”

 

  평소였으면 알면 됐다며 풋 웃어버릴 말이었지만 짜증으로 일렁이는 가슴을 잠재우기엔 모자랐다. 뾰로통한 표정에도 유키무라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유키무라가 먼저 입을 뗐다.

 

  “넌 늘 예뻐. 하지만 정성 들여서 세팅한 머리는 더 예뻤지. 겨우 오 분만 보기는 아까울 만큼.”
  “너 진짜 독심술 할 수 있지?”
  “설마.”

 

  여자의 심리를 잘 아는 건지, 그냥 사람 심리는 다 잘 아는 건지, 아니면 나를 잘 아는 건지.

  있는 힘껏 유키무라를 쏘아 보던 히요리가 결국 한층 풀어진 마음으로 몸을 기대었다. 자연스레 풀어낸 손으로 허리를 감싸는 손길이 싫지 않았다. 밖이 어두워진 탓에 창문에 아른아른 비치는 유키무라의 표정이 더없이 즐거워 보이는 것도 싫지 않았다.

 

  “아쉽지만 꽃놀이 일정은 새로 짜자. 오늘은 이대로 집에서 놀고.”

 

  그래, 꽃이 하루 만에 다 져 버릴 것도 아니고.

 

  “뭐 해줄 건데?”

  “글쎄, 뭘 해주면 좋아하려나?”

 

  웃음기가 섞인 질문에 왠지 심통이 났다. 머그잔을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히요리는 유키무라의 품을 파고들었다. 등 뒤로 똑같이 탁 소리가 울렸다.

 

  “맛있는 거 먹여주고, 디저트도 먹여주고, 안아주고 예쁘다 예쁘다 해줘.”

  “욕심쟁이네.”

  “이렇게 예쁜 내가 사귀어주는데 당연히 해줘야지.”

  “후후, 이렇게 예쁘니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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