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이론인가요?

                            야나기 렌지 드림

 

 

  “렌지는 옷 어디서 사 입어?”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 같았지만 주의를 환기하기에는 충분했다. 가볍게 차를 홀짝이던 야나기가 고개를 들어 세라를 보았다. 세라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입고 있는 셔츠를.

  직장인의 교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셔츠였다. 새하얗고 말끔한 데다 옷깃도 똑바르게 서 있는 점이 그다웠다. 특별한 무늬도 없고, 단추조차도 그저 하얗기만 했다. 새로 산 옷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빛나는지라, 무심코 그런 질문이 입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었다.

 

  “백화점에 갈 때도 있고, 의류매장에 갈 때도 있다.”

  “흐음…… 그 옷도 새로 샀어?”

  “아니, 이건 원래 입던 옷이다만.”

 

  대체 어떻게 빨아야 밤새 소복이 쌓인 눈 같아지는 걸까?

  연이어 떠오르는 질문은 마음 한구석에 제쳐두었다. 셔츠 대신 얼굴을 마주하자 평온하던 야나기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이상하다면 개의치 말고 지적해줘도 좋아. 패션에는 자신이 없거든.”

  “아니, 잘 어울려. 근데 항상 비슷한 옷만 입으니까……

  “그럼 같이 옷이라도 보러 가는 건 어떤가?”

 

  야나기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말인지라, 세라는 잠시 입을 벌린 채로 멈춰 있었다.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이 신기했는데, 뜻밖의 제안을 하는 순간에는 평소와 같이 진지했다. 차갑고 예리하지만 차분하고 예쁜 얼굴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문득, 상대방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제야 슬쩍 시선을 피한 세라는 벙한 표정을 가다듬었다.

 

  “의외라고 생각했을 확률 구십팔 점 삼 퍼센트.”

  “그야, 딱히 관심 없는 줄 알았단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 법이니까. 이 기회에 세라의 취향도 알게 되면 일석이조겠지.”

 

  그 담백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단어들을 읊조리면 꼭 어딘가의 전공 서적에 나오는 논리적인 말처럼 느껴져서, 세라는 조금 늦게 볼이 달아올랐다. 세라가 매번 데이트를 앞두고 옷장을 몇 번씩 열면서 고민하듯, 야나기도 그런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어쩐지 수줍어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럼 내가 골라주는 옷 다 입을 거야?”

  “원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지체할 것이 없었다. 세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야나기는 놀라는 기색 없이 따라 일어났다. 무엇이든 금방 예측하는 남자친구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건 답례로 받아줘.”

 

  옷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부터 이 남자는 이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 깨달은 탓에 세라는 좀 분했다. 야나기에게 옷 선물을 할 생각이었는데 도리어 제 손에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야나기는 말을 꺼낸 사람답게, 세라가 추천하는 옷은 전부 입어보았다. 얇은 니트와 목폴라 티부터 후드 티셔츠에 청재킷, 카디건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세라는 그중에 제일 잘 어울리는 두 가지를 속으로 점찍어 놨었다. 매장을 나서기 전에 야나기 몰래 사서 선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파악하는 게 인생이자 취미인 남자친구에게 몰래는 통하지 않았다. 분명 티도 내지 않았건만, 이미 야나기는 그 옷 두 벌을 결제한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물하려고 했다며 부루퉁하니 입술을 내미는 세라를 달래서 자연스레 여성복 매장으로 데리고 갔다. 야나기의 말대로, 애인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세라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선물을 받을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아무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한 사람이었다.

 

  “내가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치사해. 자기만 선물하고.”

  “오늘만큼은 내가 선물하고 싶어서 수를 썼으니 부디 용서해.”

 

  성실하게 사과하는 모습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평소에 보이던 예리한 눈빛은 어디로 가고,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것에도 약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그런 표정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세라는 뾰로통했던 마음을 살짝 누그러뜨리고 제 앞에 서 있는 야나기를 보았다.

 

  “근데 왜 오늘이야?”

 

  음. 짧은 소리만 내뱉고 야나기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보이기도 했다. 덩달아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세라가 막 손사래를 치려던 순간이었다.

 

  “세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한 날이다.”

 

  정말이지,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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