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향

     시시도 료 드림




 민트향이었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키가 작은 풀숲에서는 민트향이 났다. 그냥 평범하게 물에 젖은 풀 냄새일 뿐이었지만 왠지 민트향처럼 느껴졌다. 민트를 좋아해서 그런 걸까? 아니, 딱히 그런 게 이유는 아니더라도 지금 맡은 풀냄새는 정말 민트에 가까웠다. 무언가 향긋하면서도 코를 맑게 하는 그런 냄새였다.

 공원을 뛰는 동안 풀숲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고, 그만큼 민트향도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따라했다. 누군가가 생각나려고 했다. 짧은 머리긴 했지만 홱 고개를 돌릴 때 살짝 흩날리면서 보이는 볼에 왠지 시선이 늘 닿았다. 씨익, 즐겁게 웃는 그녀는 왠지 모르게 민트향을 닮아 있었다.


 "야호, 료."

 "정말 왔어?"

 "그럼 가짜로 오냐?"


 세트로 된 가벼운 민트색 트레이닝복 차림이 꽤나 잘 어울려서 시시도는 잠시 감탄했다. 가뜩이나 마른 몸매가 트레이닝복 때문에 더 말라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잘 먹어도 될텐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그녀가 이미 충분히 잘 먹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시도는 말 없이 발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도 함께 발을 떼었다.


 "따라올 수 있겠냐?"

 "물론이지. 그 정도도 못 할 것 같아?"


 씩씩하게 웃어보이는 모습에 시시도는 피식 웃었다. 타박타박 소리만 공원을 울렸다. 강한 민트향이 코를 찔렀다. 아, 역시. 시시도는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미소지었다.

 뭐, 민트는 좋아하니까 말이야.




(2012. 11. 09.)









가지 마

     후지 슈스케 드림


 무겁게 들어올려진 손이 간신히 그의 옷깃을 붙들었다. 작고 작은 손의 묵직함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간신히 자켓을 붙잡기까지 그 복잡하게 꼬인 뇌에서, 쿵쾅대는 심장에서, 제멋대로인 신경계통에서 얼마나 많은 혼란이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그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묵직하지만 아주 힘없는 부름에 응해주었다. 그저 그 자리에 멈춰선 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가지마…….”


 입 안에서 다시 씹어삼킬 생각인지 말들은 제대로 그녀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냥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의중을 어느정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고의 소유자인 후지 슈스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물쭈물하느라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감정이 얼굴뿐 아니라 온 몸에 드러나는 성격이었다.


 “응? 뭐라고 했어? 잘 안 들렸거든.”


 웃는 낯인 그가 돌아보았다. 반면에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세상 모두가 알아듣지 못했다 해도 그만큼은 알아들었을 거라는 걸 그녀는 확신했다. 하지만 굳이 다시 묻는 그의 성격도 알고 있기에 그녀는 다시금 입에서 말들을 짜 맞추기 시작했다. 용기가 없어서는 딱히 아니었다. 똑같은 말이라도 그냥 칭얼거리듯 뱉어낸 적은 훨씬 많고 그녀는 보통 칭얼거리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있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우……”


 아무 말 없이 그는 웃고 있었고, 그녀는 울먹거렸다. 부끄러워서 말이 도통 나오지를 않았다. 집에 혼자 있으니 자고 가라는 소리가 뭐가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전에도 곧잘 혼자 있으면 무섭다면서 그를 부르지 않았던가. 그 때와 별로 다를 것 없이 똑같이 그를 부르는 것이다. 상황도 똑같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와 그녀의 사이랄까.


 “집에 혼자 있으니까 자고 가…….”


 조금 더듬거리긴 했지만 그녀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중간에 흘리듯 목소리가 작아진 것도 같지만 일단은 다 말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제멋대로인 그녀를 컨트롤할 수 있는 그는 역시 굉장하다고 그녀 스스로도 생각했다.

 아까 전보다 조금 더 환하게 그가 웃었다. 응, 하고 짧게 대답하면서 그는 툭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아 그녀는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역시 직접 듣는 게 좋잖아. 그렇지?”

 “우, 그치만 부끄러운 걸…….”

 “음, 뭘 생각했길래 부끄러운 걸까나?”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장난스럽게 그는 쿡, 하고 웃었다. 물론 뒤에 농담이라고 덧붙여주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후지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밤바람은 차니까. 들어가자.”

 “응. 헤헤.”




(2012. 11. 22.)







141128 :: 키쿠마루 에이지 생일 축하해!

 

* 연예인 패러렐 주의 (테니뮤 패러렐에 가깝습니다...)
* 테니뮤 세컨드 시즌이 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무대는 참으로 조용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는 이렇게 적막했던가 하는 생각이 키쿠마루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평소에 공연하던 곳보다 더 커서 그런 게 아닐까.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서 천천히 사방을 멀리 둘러보았다. 이 무대에서부터 저 끝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자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누군가 보면 참 쓸데없는 걸 고민한다고 여길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키쿠마루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저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무대 위에 선 우리가 어떤 크기 정도로 보였을까?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을 쭉 뻗으면 닿을 것처럼, 파랗게 관객석을 수놓은 팬라이트의 불빛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상은 한참을 뛰어올라가야 하는 거리가 공연 중간에는 전혀 멀지 않았다. 신나게 웃었고 즐거웠고 더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 쓸쓸했다. 이젠 이 무대에 설 일은 없겠구나. 쓸쓸했고, 그보다 조금 더 이상했다.

 

 「잘 부탁해!」

 

  에이지라고 부르면 돼, 하고 웃었을 때 자신을 향해 똑같이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어 준 건 오오이시였다. 얘가 앞으로 내 파트너구나. 누구나 처음엔 다 긴장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키쿠마루 에이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긴장보다는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무대에 더 들떴다. 다만 테즈카 앞에서는 잠깐 긴장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모시로가 어찌나 자지러지면서 웃어댔는지 잊을 수가 없었다. 키쿠마루는 무대를 위한 훈련 기간 동안 유난히 모모시로가 힘들어했던 이유에 분명 테즈카의 복수가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게 어느새 몇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몇 년을 똑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했다. 그다지 긴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렇게 긴 시간이 흘러 마지막을 맞이했다. 아직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대 하나가 끝났으니 며칠 휴일을 가진 다음에, 다시 연습장에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뛰고, 새 안무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며칠 뒤에는 분명히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게 뻔했다. 으악, 지각이야! 하고. 하지만 곧 연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앉은 채겠지. 며칠 뒤를 떠올리니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키쿠마루는 홱홱 고개를 저었다.

 

 “에이지, 여기서 뭐 해?”
 “그냥 보는 중.”

 

 키쿠마루는 자신의 옆 자리를 팡팡 쳤다.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오이시가 다가와 앉았다. 커다랗고 빈 무대 위에 두 사람이 있었다.

 

 “별로 끝난다는 실감이 안 난다냥.”
 “나도 그래.”
 “이 멤버가 다 같이 모여서 또 연습하기는 아마 어렵겠지?”

 

 대답하는 대신 오오이시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당연하게 해 왔던 모든 게 바뀌게 될 것이다. 키쿠마루는 그게 어딘지 자꾸 자신의 마음을 간질여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항상 인사는 “내일 봐!”거나 “다음 연습 때 봐!”였는데. 물론 다른 무대에서 다시 보게 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모두가 다 같이 다른 무대에서 만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이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고 나서주던 사람들. 다시 코끝이 찡했다. 웃으면서 끝내자고 말한 건 무대 위에 있던 자신들이었다. 최대한 웃었다. 물론 정말 다른 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모든 무대가 끝나고 난 지금 느끼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행복한데 섭섭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복잡하고도 미묘해 보이는 그 표정을 오오이시는 놓치지 않았다.

 

 “복잡한 기분이지?”
 “오오이시도 그러냥?”
 “응. 무척.”

 

 키쿠마루는 앉은 자세에서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아직 빼놓지 않은 파란색 손목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지. 정말 고마워.”
 “응?”
 “넌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어.”
 “뭐, 뭐다냥, 갑자기!”

 

 왠지 부끄러워져서 손사래를 쳤지만 키쿠마루도 내심 기뻤다. 다행이다.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키쿠마루의 표정을 보더니 오오이시는 또 피식 웃었다. 오오이시의 시선도 관객석을 향했다. 아까와는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공기만이 내려앉은 관객석을 보는 눈이 어딘지 반짝거려 보였다.

 

 “마지막까지 최고를 보여줬으니까 우린. 아쉬움 같은 거 남기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걸로 괜찮을 거야.”
 “우와, 오오이시 지금 엄청 오글거려.”
 “아, 그런가.”

 

 머쓱하게 오오이시가 머리를 긁적였다. 키득키득 웃었지만 키쿠마루도 그 말에 동의했다. 진짜 이게 정말 최후, 마지막의 마지막이니까 남은 걸 전부 다 쏟아 부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온 힘을 다했다. 좀 더 잘 할 걸, 그런 종류의 감정은 남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으면서 끝났다.

 

 “그래도 진짜 열심히 했어.”
 “절대로 못 잊을 거야, 관객석.”
 “그치? 엄청 파래서, 막 여기서부터 저어기까지 다 파래서 진짜 신기했어.”
 “엄청 예뻤지.”
 “응응! 감동이었다냥. 쪼금 울 뻔 했어.”
 “노래 부르다가도 울 뻔 했으면서.”
 “아냐!”

 

 키쿠마루는 잔뜩 볼을 부풀렸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도 절대 울지 말아야지, 웃는 얼굴로 끝내야지, 그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걸로 진짜 마지막이야!”하고 말할 때에 울컥 솟아오르던 감정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그건 그냥 평범한 대사가 아니었다. 정말로 오오이시와 부르는 마지막 듀엣곡이었으니까. 펑펑 울어버리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 순간엔 아찔했다. 어라, 울면 안 되는데.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더랬다.

 

 “뭔가 우리 연습장 몇 시까지 맞지? 이런 얘기 안 하겠구나 싶어서 이상하다냥.”

 

 오오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쿠마루가 그 뒤에 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젠 이렇게 만날 볼 수는 없겠지. 정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하지만 오오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오오이시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이제 가자.”
 “응?”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니까.”

 

 키쿠마루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다. 주인공? 무슨 주인공을 말하는 거야? 주인공은 내가 아닌데. 멍하니 오오이시를 쳐다보던 키쿠마루의 표정이 점점 환해졌다. 아, 내 생일 얘기하는 거구나. 내 생일 파티 하자는 거구나. 그렇지, 참. 이 무대가 끝난다고 해서 영영 못 만날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니잖아. 바보 같은 고민을 했단 생각에 웃음이 났다.

 

 “당연하지!”
 “무대는 끝났지만 우린 계속 만날 거니까.”
 “당연한 소릴!”

 

 키쿠마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기지개를 피고 허리도 한 번 쭉 폈다. 그리고는 오오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오이시가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무대 위에 섰다.

 

 “생일 축하해, 에이지.”
 “고맙다냥!”
 “그럼 이제 내려갈까.”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냥!”

 

 

(2014. 11. 28.)

 

 

 






루키즈의 어느 날

 

 “하아아아."

 

 길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그는 모자의 캡을 살짝 잡아당겼다. 햇빛이 강했다. 이런 땡볕에 서있게 하다니. 오기만 해 봐, 진짜 가만 안 놔둘 거야.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는 오사카가 아닌가. 정말 끔찍할 정도의 더위였다.
 그 녀석을 못 알아볼 리가 없을텐데. 그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어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빨간 머리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흐응, 타임 오버. 그는 음료수라도 뽑을 생각으로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멍청이, 길 잃은 거 아냐? 여태까지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방금까지 심통이 나 있던 그는 금세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덜커덩, 캔 음료가 부딪치는 소리에 그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익숙한 포도맛 폰타. 고리를 젖혀 캔을 따고 나면 탄산이 올라오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한 모금으로 일단 목을 축이고서 그는 다시 자판기를 바라보았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동전을 더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 몇 개를 더 꺼내었다. 잠시 후, 폰타 하나를 더 손에 쥐고 그는 벤치로 돌아갔다.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정말 가야지.

 

 “코시마에!”

 

 아, 왔다.
 막 한 모금을 더 들이킨 찰나였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그 사고뭉치의 모습은 점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발음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시끄러워. 게다가 부끄러워, 저 녀석.
 여전한 호피 사랑은 말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토우야마 킨타로를 보면서 에치젠 료마는 저 바보,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오는 모습에 그는 자신에게 달려들 것까지 예상하고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킨타로는 그 속도 그대로 점프까지 해서 료마의 목에 매달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 한가득 터질 것 같은 미소를 머금은 킨타로는 료마를 세게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코시마에~ 오랜만이데이!”
 “너 늦은 거 알고는 있는 거야?”
 “아, 미안하데이. 내 뛰쳐오다가 쪼끔 헤맸다!”

 

 역시나. 매달려서 떨어질 줄 모르는 킨타로를 밀어내면서 료마는 뒤로 잔뜩 젖히고 있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킨타로도 그제야 그의 목을 놓아주고는 똑바로 섰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짓던 킨타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킨타로는 고개를 쭉 빼고 료마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번 찬찬히 훑었다가 다시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어레?”
 “왜 그래?”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킨타로와 눈을 마주친 료마는 순간 움찔했다. 어라? 킨타로가 알아차린 사실을 료마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킨타로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 위치 그대로 앞으로 내뻗었다. 료마는 그 손이 닿기 전에 휙 고개를 뒤로 빼내었다.

 

 “코시마에, 니 은제 이래 작아졌나?”
 “윽, 바보야, 작아졌을 리가 없잖아. 니가 큰 거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엄연한 키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분명 료마가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키가 비슷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에 띌 정도로 킨타로가 컸다. 윽, 소리를 내뱉으며 료마가 살짝 뒷걸음질쳤다. 거짓말. 정말 저 녀석이 더 크단 말이야? 말로는 꺼낼 수 없는 그 묘한 분함이 료마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는 고개를 팩 돌리고 마시던 폰타를 쭉 들이켰다. 탄산이 목을 톡톡 쏘아댔지만 꾹꾹 참고 넘겼다. 그 모습에 목이 말랐는지 킨타로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료마의 한 손에 들린 폰타에 머물렀다.

 

 “아, 코시마에, 그거 내 줄끼가?”
 “아니.”

 

 매몰차게 대답한 료마는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캔도 마저 땄다. 왠지 열받아. 왜 저녀석만 더 컸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가 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도 1cm는 더 커서 돌아온 셈이니까. 하지만 킨타로는 적어도 5cm는 더 큰 것 같았다. 먹기도 잘 먹는데 왜 나는 안 크지?

 

 “뭐꼬, 두 개 들고 있었음서. 욕심쟁이래이.”
 “흐응, 늦은 녀석한테는 줄 거 없거든.”
 “우우~ 알았데이! 내 늦었으니까는 타코야끼 사주께!”

 

 료마의 등을 떠밀며 킨타로가 발을 떼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발을 떼면서 료마는 홀짝홀짝 폰타를 들이켰다. 그가 슬쩍 곁눈질로 킨타로를 훑어보았다.

 

 “근데 너, 얼마나 큰 거야?”
 “내도 잘 모른데이. 쩌언에 신체검사 했을 때는 백칠십……칠? 이라 카던데?”
 “하?”

 

 그가 미국에 가기 전의 키는 170cm에 조금 못 미쳤다. 그럼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이란 말인가? 또 한 번 열받아, 라고 생각하면서 료마는 또 벌컥벌컥 폰타를 들이켰다.

 

 “뭘 먹고 그렇게 크는 거야.”
 “내는 뭐든지 잘 먹는다! 편식은 안 좋대이!”
 “누가 그걸 모르냐.”

 

 료마는 여전히 툴툴거리고 있었지만, 킨타로는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간만에 만나는 친구가 그리도 반가운 모양이었다. 따로 말도 하지 않았건만 마치 약속한 것처럼 테니스백을 메고 온 료마를 보며 역시 통한다고, 킨타로는 느끼고 있었다. 사선으로 오게 맨 가방 끈을 양손으로 꼭 쥐면서 킨타로가 료마를 쳐다보았다.

 

 “이따 테니스 치러 갈 끼제?”
 “내가 이기겠지만.”
 “그건 해봐야 아는기래이!”

 

 

(2012. 06. 04.)

 

 

 

루스님이 주신 키워드

<후지, 사진, 노란색 꽃다발, 겨울에서 봄>

 

 

 

 “이제 곧 봄이구나.”

 

 창가에 기대어 있던 그가 무심결에 뱉어내었다. 방 한 쪽에 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던 유타가 슥 그를 돌아보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형의 모습은 유타에게 익숙했다. 뭐, 봄이 올 때가 되긴 했지. 유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만화책을 덮었다. 슥 그의 시선이 형에게서 벗어나 벽에 걸린 달력으로 향했다. 봄이 가까워져 간다는 것은 형의 생일이 가까워져 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형, 그 전에 형 생일이 먼저 아냐?”

 “난 유타가 모르는 줄 알았지.”

 

 생글 웃으면서 돌아보는 후지를 보며 유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유타가 투덜거리자 후지는 다시 쿡쿡거렸다. 언제나 귀엽다니까, 유타는. 사실 후지는 그를 괴롭히거나 놀릴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표현되는 것은 그저 그의 성격 탓이었다. 그렇게 웃는 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거 있어?”

 “글쎄. 카메라 렌즈?”

 “형…….”

 “농담이야.”

 

 또 한 번 쿡, 하고 가볍게 후지가 웃었다. 카메라라면 이미 쓰던 게 손에 익은 상태였다. 렌즈라도 새로 살까 싶었지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동생에게 요구할 것은 아니었다. 누나라면 사주지 않을까, 하고 잠시 고민하는 그였지만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새로 책이 나온 기념으로 누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보다 유타, 나갔다 오지 않을래?”

 “응? 갑자기 왜?”

 “나가자.”

 

 더 말없이 그는 창가에서 벗어나 카메라부터 집어 들었다. 슬슬 해가 저물어 가는데 아직 괜찮으려나. 뒤에서 유타가 투덜거리는 게 들렸지만 후지는 피식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형, 뭐하려고?”

 “유미코 누나한테 뭔가 선물이 될 만한 걸 주고 싶어서.”

 “아, 맞다, 꽃다발은 줘야 할 텐데.”

 

 유타가 주머니를 뒤적이는 동안 후지는 어느새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 있었다. 카메라를 손에 쥔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저물어가는 해 때문에 공원은 붉은 빛이었다.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 빛 사이로 후지가 서 있는 모습이 유타의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림에 나올 것 같은 장면이었다. 붉게 채색된 배경에다가 살짝 은빛이 도는 공원, 그리고 그 가운데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남자. 풍경화의 배경이 되기에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타, 이리 와봐.”

 

 한참 카메라를 들여 보고 있는 것 같던 후지가 손짓으로 유타를 불렀다. 유타가 쫓아갈 때까지도 후지는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후지가 보고 있던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그의 발 바로 앞쪽의 화단이었다. 때를 착각해서 조금 일찍 나온 것일까, 화단에는 노란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예쁘지?”

 “헤, 이거 용케 발견했네. 이거 찍으려고?”

 “잘 찍으면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노을도 졌고.”

 

 카메라에 집중하는 후지를 보며 유타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보면 이런 걸 열심히 하고 있는 형도 대단하다니까.

 

 “그보다 형, 꽃다발은 어떻게 하지?”

 “나 지갑 있어.”

 “언제 챙겼어?”


 피식, 하고 웃으면서 후지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몇 번을 반복하던 그가 한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을 머리 뒤로 하고 서 있던 유타가 후지를 슥 돌아보았다.

 

 “맘에 들게 나왔어?”

 “응. 꽃다발도 그럼 맞춰서 노란색으로 사가지고 갈까?”

 “뭐 괜찮지 않아?”

 “그럼 가자.”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후지의 얼굴에 올랐다. 유타도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주었다. 공원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뒤로 해가 아예 넘어가고 있었다.

 

 

(2012. 01. 07.)

 

 

 

로유님이 주신 키워드

<니오 일루젼과 싱크로한 오오이시한테 징징대는 에이지>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닐 텐데. 이층 침대는 이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베게 위로 살짝 삐져나온 붉은 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에이지, 벌써 자?”

 

 자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붉은 색 머리카락이 쏙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 난감한 듯 오오이시가 머리를 긁적였다. 큰일이군. 혁명군단이 1군과 시합을 한 이야기는 이미 U-17 합숙소 내에 쫙 퍼져 있었다. 오오이시도 그 혁명군단 안에 속해 있었다. 키쿠마루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에이지.”

 “잘 거야.”

 “낮에 시합 말인데…….”

 

 이불을 팩 베개까지 덮어버리는 신경질적인 움직임을 보며 오오이시는 살짝 한숨 쉬었다. 싱크로를 가능하게 할 만큼 니오의 일루젼은 굉장했다.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은 오오이시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니오는 키쿠마루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쳐다봐도 키쿠마루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럼 다음에 얘기하자.”

 

 키쿠마루의 침대에서 시선을 떼고 오오이시가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반쯤 굽혔을 때, 위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가 고개를 들자 키쿠마루가 이층 침대에서 살짝 허리를 굽힌 채로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시 무릎을 펴 품에 베개를 끌어안고 볼을 잔뜩 부풀린 키쿠마루의 얼굴을 마주했다. 잔뜩 뚱한 표정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기세였다.

 

 “니오의 일루젼은 굉장했어.”

 “안다냥.”

 “나도 싱크로를 할 수 있었던 것에선 정말 놀랐으니까.”

 

 키쿠마루가 부풀리고 있던 볼을 풀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역시나 이것 때문이었구나.

 

 “에이지.”

 “나도 안다냥. 일루젼해도 내가 더 오오이시랑 호흡 잘 맞는 것도 알고, 아크로바틱도 내가 더 잘 하는 거 알아.”

 

 하하, 난감하게 오오이시는 그저 웃었다. 그는 키쿠마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알아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그걸 겉으로 다 드러내고 마는 자기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내 파트너는 에이지니까.”

 

 키쿠마루가 품에 안은 베개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시선이 베개와 오오이시를 계속 오고갔다. 조금 갈등하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가 마침내 오오이시를 똑바로 쳐다봤다.

 

 “다음번에는 진짜 세이가쿠 골든페어의 힘을 보여주자냥.”

 “물론이지.”

 

 오오이시가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다. 키쿠마루도 베개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주먹을 맞대었다. 씨익, 평소의 미소를 지으면서 웃어주는 키쿠마루에게 오오이시도 웃어주었다.

 

 

 

 

(2012. 01. 07.) 

 

 “메이.”


 귀를 간질이는 부드러운 목소리. 선룸의 입구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굴곡진 올리브색 머리카락이 하나로 단정하게 묶여 어깨 한 쪽으로 내려와 있다. 슌소 상의 눈은 머리카락과 같은 올리브색이다. 얼마 전, 나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을 때에 처음 알게 된 사실.


 “왜 그러고 있어?”

 “네?”

 “시계. 귀신이라도 나온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잖아.”


 들어오면서 날 부른 게 아니었던 걸까. 넋을 놓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진다. 입을 오물거리다 결국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고개를 돌렸다.

 시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처럼 낯선 시선으로 시계의 문자판을 본다. 분명 청소를 하려고 이 앞에 섰던 것 같은데. 천천히, 그리고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바늘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내 등을 따뜻하게 만드는 햇살 말고는 명확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가까워. 작게 부르르 떨리는 걸 알아차렸을까.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져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반사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내 시도는 금방 의미를 잃는다. 내가 비틀거리는 걸로 오해했는지 슌소 상이 양 손으로 내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팔이, 뜨겁다.


 “괘, 괜찮아요. 그냥 잠시 생각을…….”

 “무슨 생각?”

 “그게…….”


 대답할 수 없다. 마구 튀는 내 시선을 일일이 쫓아와 맞추는 슌소 상의 눈이 두렵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내게서 평정심을 빼앗아 간다. 이대로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서 애꿎은 슌소 상의 교복단추만 노려본다.


 “혹시 뭔가 기억났어?”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걸 막지 못한다. 결국 눈을 마주친다. 내 의지를 거스른 눈물이 터져 나온다.


 “모, 모르겠어요. 기억난 것 같은데 금방 사라져서…….”


 내 시야가 흐릿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로 표정이 미묘한 걸까. 슌소 상이 왜 그런 표정인지 알 수 없다. 평소에도 슌소 상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지금은 더 혼란스럽다. 눈물이 더 솟는다. 내 안의 빗장을 열까봐 두렵게 했던 방금 전의 눈빛보다, 지금의 읽기 어려운 표정이 수천 배 두렵다.


 “시계를 보고 생각난 거야?”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게…….”


 너무 슬퍼요.

 슌소 상이 내 양 손을 붙들고 조금씩 발을 옮겼다.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 조심스러운 동작에 맞춰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인다. 슌소 상의 한 걸음. 그리고 내 한 걸음. 우리 두 사람의 사이는 더 좁아지지도, 더 넓어지지도 않는다. 소파에 앉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흐른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슌소 상의 손도 내 손을 떠나지 않는다.


 “뭔데. 숨기지 마.”


 시간이 없어요.

 뭘 떠올렸는지는 모호하지만 그 전에 했던 ‘어떤’ 생각 때문에 감정이 요동친다.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러갔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분명히 내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이 조급하다. 달은 점점 차오르고, 나는 혼란스런 마음만 가득 안은 채 어떤 것과도 맞부딪치지 않는다. 나는 용기가 없다. 작은 한숨 소리에 다시 어깨가 움츠러든다. 눈을 마주칠 수 없다. 이런 내 불안함이 슌소 상에게 닿지 않길 바란다.

 어쩌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빠지고 만 걸까요. 왜 나는 돌아가야만 할까요.

 슌소 상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계속 유지되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고 조용히, 그 손이 내 등을 토닥인다. 부드럽게, 상냥하게. 선룸을 비추는 햇살만큼이나 따뜻하게.

 나는 울고 슌소 상은 말이 없다. 눈물방울이 내 유카타와 슌소 상의 교복 바지에 번져간다. 


 “너 말이야.”


 겨우 호흡이 진정되는 가운데 슌소 상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여 네, 하고 대답하는 대신 조금 몸을 일으켜 눈을 마주친다. 올리브색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해 있다. 아까만큼 두렵지는 않다.


 “또 기억도 안 돌아왔으면서 떠나야한다느니 생각한 거 아냐? 금방 불안해져서 울 거면 왜 그런 생각을 해? 애도 아니고.”


 어느새 꺼내든 손수건이 부드럽게 내 볼을 쓸어내린다.


 “여기 있어.”

 “네?”


 올리브색 눈동자는 참으로 흔들림 없이, 곱다.


 “그냥 여기 있어. 불안해하지 말고, 울지 말고 이대로 있어. 그냥 내…….”


 작은 입이 잠시 오므라들었다 천천히 열린다.


 “어쨌든. 쓸데없는 생각 말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아. 끄덕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는데. 함께 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만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만 걸까.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슌소 상의 교복바지와 내 유카타가 금세, 경계를 잃어버린다.


 “너. 이 말에 솔직하게 답한 거 지금이 처음인 거 알지?”


 고개를 끄덕인 게 답이 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내 입술은, 혀는, 이는, 여전히 어떤 대답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하게 답한’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여기를, 메이지 시대를 떠나고 싶지 않다. 그냥 슌소 상과…….


 “하아. 하여간 손 많이 가는 녀석.”


 내 손을 잡아당기는 온기에 고개를 든다. 슌소 상은 어느새 일어서 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눈부시게 빛나서, 슌소 상이 태양처럼 보인다.


 “일어나. 산책이라도 하면서 숨 좀 돌리는 게 낫지 않겠어?”


 힘을 주어 손을 맞잡고 일어선다. 다리는 이제 후들거리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참아왔던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한다. 슌소 상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안에 내가 슌소 상을 좋아한다고 정말로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2016. 06. 26.)

 

 

 

160503 전력드림 <DOLCE>

「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이즈미 쿄카 드림




  만월(滿月)이 가까워진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동시에 동그란 제 모습을 되찾아가는 달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렸다. 성큼성큼 밖으로 나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귀찮은 변명을 생각해낼 필요가 없게 된 건 다행이었다.

  그보다 내가 왜 밤하늘도 올려다볼 수 없게 됐냐는 말이야.

  굳이 말하자면 나는 완벽하게 동그란 형태의 달이 뜬 밤하늘을 좋아했다.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는 그 모습 자체가 내 영감(靈感)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건 과거의 일일 뿐이다. 달 같은 게 있어서 뭐 해. 어차피 가스등도 생겼고, 정 어두우면 촛불이라도 키고 돌아다니라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도 손으로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온기만 있다면 충분하니까. 내가 기억하는 그 따뜻함으로 그 앨 찾아낼 수 있어. 머리카락 한 올, 자그마한 몸, 뜨거운 입술까지 전부 다 빠뜨리지 않고 새겨놨으니까 아무 문제없어. 그러니까 달 따위, 없어져버리면 돼.


  만월이 무섭다.


  방금 전까지 그 애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손을 얹고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지금은 터무니없이 무섭기만 하다. 멋대로 약속까지 잡아놨지만 불안감은 가시질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전부 토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보다 내가 지껄인 말 중에 얼마만큼이나 알아들었을까, 그 멍청이. 너 같은 건 일주일 만에 잊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거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당연히 그딴 건 불가능하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그 앨 붙잡고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니까. 이게 다 그 멍청이 때문이야. 애초에 떠날 거였다면 왜 입 싹 닫고 있었던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그야말로 멍청하게 그 앨…….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화들짝 놀라서 발을 멈췄다. 나도 모르게 그 애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거길 가서 어쩌려고? 그보다 데려다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거길 가려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하다.

  지금 당장 뛰어 들어가서 네가 아직 이 시대에 있다는 걸 확인하면 안심이 될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다시 돌아섰다. 이 순간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만월도 아닌, 너. 너의 존재 여부. 뛰어 들어갔다가 네가 없는 걸 알게 되면, 그 순간 찾아올 수없이 많은 감정의 파편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무서운 순간은 조금 늦추기로 한다. 정말로 네가 만월이 뜨는 날, 너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전까진 여기 있을 거라고 믿어도 되겠지. 그게 어린애 같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왜 좋아하게 되어 버린 걸까. 돌아간다면서 왜 그 애는 나를 같이 끌어안은 걸까. 정말로 그 애가 돌아간다면, 내가 한 모든 말을 안고 간다고 생각하면 후회스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 곳에서 날 떠올리며 혼자 울길 바라지만 그런 그 앨 떠올리고 싶진 않다. 나 혼자 여기서 그렇게 아파하는 건 확실히 불공평하지만 우는 그 앨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아프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널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리고 넌 언제부터 나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 그 모든 순간마다 전부, 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났단 걸 우리 둘 다 눈치 채지 못한 탓이다. 그래, 내 탓도, 그 애 탓도 아니다. 그저 아직은 이지러져 있는 달이 없어져주기만 하면, 아니, 적어도 그대로 멈춰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그깟 사랑에 빠지는 소리쯤, 수백 번 수천 번 울려도 상관없어.

 

 

(2016. 05. 03.)

 

 

 

* 가면라이더 더블 48화의 중요 네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화까지 전부 보신 분만 읽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필립."

 

 조금, 겁이 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그래, 하며 대답도 했지만 쇼타로의 저 부름에는 겁이 난다. 다시는 들을 수 없겠지. 나는 계속 여기에, 너와 함께야, 쇼타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확신을 할 수가 없다. 데이터일뿐인 내가 쇼타로를 계속 지켜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계속 지켜보고 싶은데.

 쇼타로. 쇼타로. 쇼타로.

 이름을 되뇌일수록 마음이 약해진다. 훌쩍거리는 그의 등을 토닥이고 싶지만 내 손이 너무 떨려서 그만둔다. 미소 지으면서 떠나고 싶다. 마지막 모습은, 가장 행복해보이고 가장 환한 얼굴로 기억되고 싶다. 쇼타로가 평생 기억하게 될 모습이잖아?

 

 "그럼."

 

 벨트에 손을 뻗는다. 익숙한 메모리가 손에 잡힌다. 사이클론. 항상 변신을 할 때 사용하던 이 메모리. 이제 사용할 일이 없는 메모리. 죠커와 트리거, 메탈은 짝을 잃겠지. 쇼타로도 짝을 잃는 걸까. 난 계속 쇼타로의 짝이고 싶은데. 계속. 계속.

 파트너였으면 좋겠어.

 메모리를 뺄 수가 없다. 메모리를 손에 잡을 수가 없다. 겁이 난다.

 

 "잠깐만."

 

 흠칫 놀라는 순간 손끝이 메모리에 닿는다. 메모리에서 정전기라도 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쇼타로의 손이 내 손을 덮는다.

 

 "내가 하게 해줘."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최대한 참는다. 웃자.

 

 "아아. 그래."

 

 최대한 부드럽게, 부자연스럽지 않게 천천히 손을 빼낸다. 사실 자신이 없다. 메모리를 뺄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쇼타로와의 이 관계를 끝낼 자신이 없다. 쇼타로는 그걸 알고 이러는 걸까. 알지도 모르지, 우린 둘이서 하나인 가면라이더니까. 이젠 혼자서 가면라이더가 될 쇼타로를 바라본다. 우느라 날 돌아보지 않는다. 쇼타로도 힘들겠지. 내가 쇼타로를 보는 게 힘든 것처럼. 그래도 다행이야. 와카나 누나를 구해서. 쇼타로가, 내 의뢰를 들어줘서. 평생, 아니 데이터가 되어서도 잊지 않을 거야. 고마워, 쇼타로. 말로 만들지 못하고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쇼타로가 울먹인다.

 

 "해제한다."

 

 그의 손이 사이클론 메모리를 붙잡는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안녕. 쇼타로.

 

 "안녕."

 

 목소리가 떨렸던 것도 같다. 웃었지만 제대로 웃은 건지 잘 모르겠다. 사이클론 메모리가 천천히 빠져나온다. 발끝부터 조금씩 사라진다. 초록색 빛이 눈부시다. 무섭다. 쇼타로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눈물이 난다. 이제 눈물들도 데이터 속에서 사라지겠지. 안녕. 파트너.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난 평생 가도 하프보일드일 모양이다. 하긴 필립이 사라지면 이제 계속 하프보일드 밖에 안 되겠군. 변신을 풀어야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진짜로 사라지나, 이녀석?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몇대 패주고 웃어줄 자신이 있는데. 필립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몰라 돌아볼 수가 없다. 젠장. 전혀 하드보일드하지 않잖아.

 

 "필립."

 

 간신히 내뱉은 말이 겨우 이름이라니 멍청한 자신을 한 대 패주고 싶다. 하지만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도 계속 대답해줄 것 같아서 그 외의 것은 떠올릴 수가 없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젠장. 젠장! 최고로 멋있는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

 

 필립의 손이 벨트로 내려온다. 언제나 가볍게,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이 이렇게까지 끔직하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란다. 필립의 손이 사이클론 메모리 위에서 멈춘다. 덜컥 겁이 난다. 정말 사라진다고?

 

 "잠깐만."

 

 나도 모르게 필립의 손을 잡는다. 이렇게 멀쩡하게 필립의 손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데 겨우 전자데이터가 되어버린다니 믿을 수가 없어.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내가 하게 해줘."

 

 필립의 마지막은 내가 하고 싶다. 이 변신이 해제되면 필립은 사라진다.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가 하는 것보다도 더.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제길. 언제까지고 함께 있어줄 것 같던 내 파트너가 사라진다고. 

 

 "아아, 그래."

 

 또 평소처럼 웃고 있겠지, 필립 녀석. 내 손 밑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필립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진다. 눈물이 더 솟아난다. 무언가 정말 방법은 없는 걸까. 단념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필립, 너 정말 사라지는 거냐? 솟아나는 눈물 때문에 숨이 격해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필립을 보내줘야 한다. 평생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난 이제 혼자서 가면라이더가 되겠지. 파트너가 없는 반쪽자리 가면라이더. 하지만 하나로서 온전해야 하는 가면라이더. 어깨가 무겁다. 어깨보다 가슴이 무겁다.

 

 "해제한다."

 

 힘을 내어본다. 메모리에 손을 얹는다. 필립을 보고 싶으면서도 볼 수가 없다. 사이클론 메모리를 손으로 붙잡는다. 이젠 정말 안녕이야, 필립. 제길. 고마웠어. 내 파트너.

 

 "안녕."

 

 필립이 운다. 이미 진작부터 울고 있었겠지만 필립은 이제야 눈물을 보인다. 초록색 빛이 눈부시다. 저 빛들을 모아다가 어딘가에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건 필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필립의 시선이 느껴진다. 안녕. 내 파트너.

 반쪽자리 벨트는 생각보다도 훨씬 가볍다. 가슴도 그만큼 가벼우면 좋으련만.

 

 

 

(2013. 04. 03.)

 

 

 

 

Lina.


여, 천칭자리, B형.

해리 포터 / 테니스의 왕자 / 여자친구 / 永田聖一朗 /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

 

한번 잡은 덕질은 주구장창 하고 있어서 장르가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어느새 여친이들도 팝니다. 아이돌은 짱이야.

주식회사 SUI 소속 나가타 세이치로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세이치로 좋아해.

 

키쿠마루 에이지는 제 남자입니다.
중요하니 또 말합니다. 키쿠마루 에이지는 제 남자예요.
관련 발언에 매우 민감하므로 말씀하시기 전에 주의해주세요. :)

 

본교 효테이. 아토베님을 부장으로 모시며 쵸타로와 지로, 각군을 예뻐하고 있습니다.
분타는 아이돌이고 후지는 마왕님.
여러분, 저랑 같이 료사쿠 좀 파주실래요?

 

글러입니다, 그리고 드림러입니다.
기본적으로 올캐러를 지향합니다.

 

본계 @linajeain731에서 테니스부터 아이돌까지 온갖 이야기를 합니다.

 

게임계정...을 빙자한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 이야기를 하는 계정 @Ganaian1010

베르나데타 최애에 최애컾은 레트베르, 베르 커플링은 안 가리고 다 좋아합니다.

흑수리에 애정이 높지만 기본적으로 올캐러를 사랑합니다.

올캐러부터 NL, BL, GL 안 가리고 좋아합니다.

 

 

OFF 활동

 

2012. 02. 12. 테니프리 온리전 <Love Festival> 참가


2013. 01. 26. 드림 배포전 <Dreams Come True> 참가
2013. 03. 10. 테니프리 온리전 <Brave Heart> 참가
2013. 05. 25~26. 116회 서울코믹 부스 <공으로 꽁냥꽁냥>
2013. 06. 30. 릿카이 온리전 <해이한 온리전> 참가
2013. 07. 20~21. 117회 서울코믹 부스 <공으로 꽁냥꽁냥>
2013. 08. 17. 드림 온리전 <움(Umm)> 참가


2014. 02. 08~09. 122회 서울코믹 부스 <공으로 꽁냥꽁냥>
2014. 03. 02. 3회 케이크 스퀘어 Piece Of Cake <테니프리 FEVER> 참가
2014. 05. 31. 드림 온리전 <Dreams Come True ~5월의 신부~> 참가
2014. 07. 19~20. 125회 서울코믹 부스 <공으로 꽁냥꽁냥>
2014. 08. 10. 효테이 온리전 <빙제시대> 메인 스텝


2015. 07. 19. 드림 온리전 <데이 드림> 참가
2015. 07. 26. 릿카이 온리전 <상승릿카이> 참가


2016. 01. 23. 스포츠 드림 온리전 <Eres Tu~내 님이 계신 곳까지~> 참가
2016. 02. 21. 테니프리 온리전 <테니스가 너무해> 참가
2016. 09. 10. 테니프리 배포전 <테니스가 너무해2> 참가


2017. 02. 12. 세이가쿠 온리전 <靑春신드롬> 참가

2017. 11. 18. 드림 온리전 <Day Dream ~Winter's Tale~> 참가

2019. 08. 10. 테니프리 배포전 <러브투러브> 참가

 

2023. 10. 29. 제8회 대운동회 테니프리 쁘띠존 부스 <테니스의 왕자의 공주님이 바로 나야> NEW

 


BOOK

 

2012. 02. 12. 드림 개인지 <당신에게 빠지다> Sold Out


2013. 01. 26. 드림 앤솔 <Dear Prince> Sold Out
2013. 01. 26. 드림 개인지 <My Only Lady> Sold Out
2013. 03. 10. 효테이 앤솔 <氷神~The Emperor of Ice> Sold Out
2013. 03. 10. 더블스 앤솔 <GooD Combination> Sold Out
2013. 03. 10. 히가 앤솔 <여섯시 내고야> Sold Out
2013. 03. 10. 세이가쿠 앤솔 <청춘 GLORY> Sold Out
2013. 03. 10. 형제본 개인지 <아옹다옹> Sold Out
2013. 05. 25. 에치젠 료마x류자키 사쿠노 <벚꽃 흐드러진 곳에서> 재판 예정
2013. 06. 30. 릿카이 올캐러 연예인 패러렐 트윈지 <Rikkai Revolution> Sold Out
2013. 08. 17. 프로포즈 드림 앤솔 <Would you marry me?> Sold Out


2014. 02. 08. 에치젠 료마&토야마 킨타로 <그 언젠가 루키즈가 부장이 된다면> Sold Out
2014. 05. 31. 19금 드림 앤솔 <너와의 XXX> Sold Out
2014. 08. 10. 효테이 올캐러 동양패러렐 <얼음꽃 피는 곳에서> 재판 예정
2014. 08. 10. 아토베 케이고 드림 앤솔 <아오빠 킹덤> Sold Out


2015. 07. 19. 드림 트리플지 <왕자님은 연애중> Sold Out
2015. 07. 26. 릿카이 올캐러 판타지 패러렐 <악마가 눈 뜰 때 上> 재판 예정


2016. 01. 23. 드림 앤솔 <나랑 데이트 할래요?> Sold Out
2016. 02. 21. 클래스메이트 앤솔 <Classmate!!> Sold Out
2016. 02. 21. 릿카이 올캐러 판타지 패러렐 <악마가 눈 뜰 때 下> 재판 예정
2016. 02. 21. 에치젠 료마x류자키 사쿠노 <사쿠라 공방> 재판 예정
2016. 09. 10. 오오토리 쵸타로 판타지 패러렐 드림 <백색 인연> 재판 예정

 

2017. 02. 12. 에치젠 료마x류자키 사쿠노 <너에게> 재판 예정

2017. 11. 18. 세이슌 3학년 드림 트윈지 <青春恋歌> Sold Out

 

2019. 08. 10. 드림 트윈지 <Happy Summer Valentine Day> Sold Out

 

2023. 10. 29. 세이가쿠 올캐러 미스터리 소설 <세이가쿠 테니스부의 코케시는 어디로 갔을까>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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