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스급 163화 기준의 내용

*170화 언저리까지밖에 아직 안 읽어서... 이후의 내용과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몸을 일으켰다. 답지 않게 식은땀도 흘린 모양이었다. 더위도 추위도 잘 타지 않는 체질이 되어도 식은땀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손바닥으로 대충 얼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보았다. 320. 아직 어둠 속에 은은한 달빛만이 빛날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조금만 신경을 곤두세워도 형이 아무 문제 없이 저 방에서 자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으니까. 다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꿈이었는데. 그저 꿈.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악몽이라면 더욱. 형이 나온 건 더더욱. 갑자기 마지막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라 섬뜩해졌다. 다시 방 밖으로 신경을 세웠다.

 

  어쩐지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

 

  타고나길 이렇게 태어난 탓에 절망감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밀어냈을 때도 형은 날 사랑했다.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랑 달리 F급으로 태어난 탓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형은 내게서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른 가족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 생각하면 형도 너무 어렸던 게 아닐까 싶지만.

 

  물론 나도 형을 사랑했다. 그래서 멀리했다. 나 때문에 형이 위험해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게 절망할 일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형을 만나지 못하는 게, 멀리 두어야 하는 게 가슴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었다. 형이 뭘 하든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손으로 놓은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

 

  이건 달랐다. 나는 빼앗겼다. 내 손에 있던 형을 빼앗겼다. 놓친 셈이었다. 그 순간엔 절망감밖에 들지 않았다. 타고나길 이렇게 태어났으면서도 형을 지키지 못하고 무력하게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심정. 어쩐지 꼭 겪어본 것만 같아서 더 구역질이 났다. 내가, 내가 지키겠답시고 오만방자하게 손에서 놓은 척을 하는 바람에 놓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답지 않게 눈물이 터졌다. , 사랑하는 내 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던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나를 바쳐서도 형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빼앗긴 탓에 그 순간에는 기억하지 못했던 어느 날의 꿈처럼.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난 형이 살기를 바랐다. 나 때문에 위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밀어냈는데, 억지로 만나지 않았는데, 날 미워하도록 내버려뒀는데. 꿋꿋이 버텨왔던 3년이 산산이 조각나 온몸에 박히고 동시에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럴 순 없어. 내가 있는 세상에서 형이 사라지다니 절대로 안 돼. 내 옆에 없어도, 날 미워해도 상관없으니까 절대로, 절대로 사라지는 것만은 안 돼.

 

*

 

  어떻게 던전까지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을 바쳐서라도 형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을 덮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불태웠다. 번쩍 고개를 들고 날 보는 표정이, 그 미소가 더없이 안심됐다.

 

  결국은 형 앞에선 울지 않겠다는 어린 날의 다짐조차도 깨뜨리고 말았다. 나는 형을 안고 울었다. 형이 살아 있어서, 나를 안아줘서, 여전히 그때와 같은 온기로 내 등을 두드려줘서. 나를 이 세상에 두고 가지 않아서.

 

*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 꿈을 꾼 게 얼마 전이더라? 형을 세성에 맡겨놓기 전이었을 텐데, 왠지 몇 달도 전의 일만 같았다.

 

  어릴 적에 악몽을 꾸면 형이 꿈은 반대라고 곧잘 말하곤 했다. , 정말 반대였으면 내가 갈가리 찢겨 나갔어야 했겠지만. 다행이다. 꿈이 사실이 되지 않아서. 진심으로.

 

  “유현아, 기다렸어? 먼저 자도 되는데.”

  “팔베개하고 자장가 불러준다며.”

 

  진짜 해줘? 하고 형이 푸시시 웃었다. 어릴 때와 똑같이 형의 팔을 베고 누웠다. 형도 피곤한지 자장가 소리가 웅얼웅얼 뭉개졌다. 그래도 좋았다. , , 규칙적으로 들리는 심장 소리까지 더해져서 한없이 편안했다. 어쩐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여기서부턴 잡소리.

170화 대충 그 언저리...까지 다 읽으셨다는 전제 하에 안 가리고 얘기하니

혹시라도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넘어가주세요.

 

 

 

성현제가 예민한 탓에 회귀 전의 자신과 합쳐지지 못했다던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유현이도 어쩌면,

어떠한 형태로 회귀 전의 기억이 남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유현이가 유진이를 구하러 온, 회귀 전의 사건이,

그러니까 이 소설의 시작 부분에 있던 사건이

어떠한 형태로 유현이에게 남았을 것 같아서.

 

물론 회귀 전 세계의 유현이는 죽었고

그래서 합쳐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하얀 새가 시체를 가져간 이상

어떠한 형태로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래서 그게 기억은 아니고 꿈으로 남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유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 mm)

유진이도 유진이지만

스무살짜리가, 아니지 3년 전이면 열일곱살짜리가

뭘 그렇게 대단하게 잘 안다고

형 위험해질까 봐 떨어뜨려 놓았을까 싶은 거야.

 

애기 때부터 부모가 저를 멀리하는 걸 알고 있었다면

유현이에게 세상은 곧 한유진이었을 텐데

(아기들의 세상이 부모로 한정되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피눈물 흘리면서 멀리했겠어.

 

회귀 전 유현이가 그렇게 부리나케 던전으로 달려와서

유진이를 살려놓은 건 역시

형이 내 곁에 없는 것도, 날 미워하는 것도 다 괜찮지만

형이 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

 

유현이에겐 형이 있다는 자체가 세상이 존재하는 것과 같았을 테니까.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 사람이잖아.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서 그냥 존재 자체로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이니까.

 

그래서 성현제 말대로 유현이는 영원히 유진이에게 동생일 수밖에 없겠지만

뭐, 어쩌겠어.

아이템과 스킬이라는 효율을 추구하는 관계보다는

맹목적이긴 해도 한유진도 한유현도 절대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가 더 낫지 않겠니, 유현아?

 

 

아무튼 예림이까지 셋이서 알콩달콩 예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유진이도 유현이도 예림이도 각자 결혼해서 가족이 더 늘어도 좋고

그냥 셋이서 피스랑 블루랑 삐약이랑 (이하생략) 데리고 계속 평생 살아도 좋고.

아무튼 행복하기만 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