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에 반지를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홍화 지원 S 이후

- 레트베르 강화 월간 다섯째 주: 반지

 

 


 “선생님한테 반지 받았다면서, 축하해!”

 

 도로테아가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베르나데타는 뭐라고 답할 시간도 없었다. 숨 막힌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나서야 도로테아는 베르나데타를 놓아주었다. 아직까지 얼떨떨한 당사자보다 축하해주는 도로테아의 얼굴이 훨씬 더 밝았다. 베르나데타는 괜히 겸연쩍어 왼손 약지에 낀 반지만 매만졌다. 벨레트가 준 그 반지였다.

 

 “그래서, 베르는 선생님한테 반지 줬어?”
 “어?”

 

 반짝반짝 빛나는 도로테아의 눈동자가 베르나데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당황해서 손을 흔들었다. 

 

 “나, 나도 줘야 해?”

 “줘야지! 선생님 손에도 반지를 끼워야 할 거 아니야. 베르는 안 보고 싶어?”

 

 그제야 뭔가 깨달음을 얻은 베르나데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벨레트에게 반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들뜨고 설레 며칠간 붕 뜬 느낌으로 살았더랬다. 베르나데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것을 본 도로테아가 덥석 손을 잡았다.

 

 “진정해, 지금부터 준비해서 주면 되지! 아마 다들 도와줄걸?”
 “다들이라니?”
 “선생님 손가락 굵기를 알아내야 하잖아. 린이나… 아니다, 귀찮다고 안 할 것 같으니까 휴한테 부탁하는 게 나으려나?”
 “휴, 휴베르트 씨한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휴는 정보를 캐내는 데는 선수잖아.”

 

 당황한 베르나데타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테아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나아가는 긴 다리가 아무래도 정말 휴베르트가 일하고 있을 집무실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베르나데타는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다.

 

 “그, 그래도 이런 일로 휴베르트 씨를 찾아가면 호, 혼나지 않을까?”
 “괜찮아, 에델도 같이 있을 테니까 에델이 괜찮다고 해줄 거야.”
 “뭐어? 에, 에델가르트 씨한테 말하면 더 크게 혼날 것 같은데!”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도로테아는 시원시원하게 걸음을 옮겼고 도로테아는 부리나케 쫓아가기 바빴다. 마침내 집무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베르나데타는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집무실에는 도로테아의 예상대로 에델가르트와 휴베르트가 모두 있었다.

 

 “도로테아, 무슨 일이야?”
 “휴, 부탁할 게 있어요.”
 “저 말입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선생님 왼손 약지 굵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이미 알고 있으면 더 좋은데.”

 

 집무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에델가르트의 손이 깃펜을 쥔 채로 그대로 멈췄고, 휴베르트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입을 딱 벌린 채 굳었다. 이제는 도망칠 순간도 놓쳤다. 꼼짝없이 이 대화의 방향은 자신에게로 흐를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선생님이 베르나데타한테 반지를 줬다는 소식은 들었어. 늦었지만 축하해.”
 “가, 감사합니다, 에델가르트 씨.”
 “그런데 왜 저를 찾으신 겁니까? 조사라는 명목으로 알아내는 건 린하르트 님이 훨씬……”
 “린은 귀찮다고 안 해줄 것 같거든요. 게다가 목적도 그냥 술술 말해버릴 것 같지 않아요? 그럼 깜짝 놀라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안 그래, 에델?”

 

 도로테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베르나데타도 기왕 반지를 줄 거라면 벨레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에델가르트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휴베르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당한 지적이군요.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휴베르트. 축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해줘.”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더는 거절의 말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것도 까먹고 베르나데타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휴베르트가 벨레트의 왼손 약지 굵기를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벨레트는 휴베르트의 요구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 같았다. 휴베르트는 어중간한 핑계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잠시 손을 달라고 하고는 줄자로 굵기를 잰 뒤 돌아왔다는 말에 도로테아마저 아연실색했지만, 벨레트는 왜 그러는지조차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점마저 참 벨레트다워서 에델가르트도, 도로테아도, 베르나데타도 허탈해졌다. 그럼 굳이 휴베르트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 도로테아가 다녀왔어도 됐을지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베르나데타는 새 반지를 맞추었다. 결혼할 상대에게 선물할 반지라는 말을 하며, 반지 모양도 신중하게 골랐다. 벨레트가 제게 준 반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반지였다. 만들어지는 데는 열흘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앙바르로 출발하기 전에 완성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베르나데타는 그 열흘이 세상에서 제일 길게 느껴졌다. 괜히 벨레트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어서(물론 그 전에도 베르나데타는 벨레트를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긴 했다)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언제, 어떤 상황에 벨레트에게 반지를 주는가 하는 점이었다. 무작정 찾아가서 반지를 들이밀 수는 없었다. 벨레트가 그랬듯이 자신도 그를 여신의 탑으로 데리고 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곧 그들은 앙바르로 모두 옮겨갈 것이었다. 아예 앙바르로 옮겨간 뒤에 주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았다. 다만, 벨레트에게 하루라도 빨리 주고 싶기도 했다. 베르나데타는 하루를 꼬박 고민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 차, 차 드실래요?”

 

 베르나데타가 먼저 다과회를 청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베르나데타가 다과회를 좋아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베르나데타에게 벨레트가 먼저 다과회를 제안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이었다. 벨레트는 흔쾌히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색이 짙은 녹색으로 돌아온 뒤로, 벨레트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웃게 되었다. 가슴이 찡 울리는 것 같아 베르나데타는 괜히 가슴을 한 번 부여잡았다.

 

 “베르나데타가 먼저 다과회를 요청한 건 오랜만이군.”
 “헤헤, 그러네요. 매번 서, 선생님이 하자고 하시니까 베르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달까…….”

 

 여전히 ‘벨레트’라는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됐다.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말 같아서 괜히 망설여지고는 했다.

 두 사람은 베르나데타의 방 안에 있었다. 이제 곧 떠나게 될 자신의 두 번째 안식처였다. 베르나데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안식처라는 점에서도 그랬고, 동시에 벨레트와 함께 떠나게 될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금세 방 안은 베리차의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찼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찻잔이 놓이고, 다과가 놓였다. 오늘따라 달그락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잘 마실게.”
 “마들렌도 드세요. 맛있어요.”

 

 차를 홀짝 들이켜면서 베르나데타는 벨레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반지를 꺼내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창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뜬금없이 반지를 꺼내기도 그랬다. 적절한 순간이라는 게 과연 찾아오기는 하는 것인지 하는 두려움이 문득 엄습했다.


 “베르나데타?”
 “헉, 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쩐지 벨레트의 표정이 좀 어두운 것처럼 보였다. 베르나데타는 화들짝 놀라 무심코 손을 뻗어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다른 생각은 맞지만, 선생님 생각이긴 한데……”
 “무슨 뜻이지?”

 

 완벽한 계획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엉망진창인 상황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창피해진 베르나데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그게……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언제 드려야 할지 고민하느라……”

 

 벨레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표정이 귀여워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베르나데타는 당황해서 자꾸만 여러 군데로 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심호흡했다. 베르나데타는 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뒀던 반지 함을 조심스레 꺼냈다.

 

 “벨레트 씨가 반지를 주셨으니까 저도 반지를 주고 싶었어요.”

 

 처음 입에 담아본 것도 아니건만, 어찌나 떨리던지 목소리가 같이 떨릴 정도였다. 찻잔과 그릇만 놓여 있던 탁자 위로 자그마한 함이 올라왔다. 이젠 손까지 덜덜 떨렸다. 베르나데타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함을 열었다.

 놀라서 눈만 깜빡이던 벨레트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수줍어 보이기도 해서 베르나데타의 가슴이 또 시끄럽게 뛰었다. 자기가 입을 열면 말소리 대신 쿵쿵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꺼낸 베르나데타가 말했다.

 

 “끼, 끼, 끼워드릴게요.”

 

 얼마 전의 밤처럼, 베르나데타도 벨레트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인 벨레트가 왼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이 새삼스레 무척 커 보였다. 너무 떠는 바람에 삐끗하기도 했지만, 베르나데타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반지는 이제 벨레트의 왼손 약지 위에 있었다. 휴베르트의 감사한 도움 덕에 반지는 꼭 맞았다.

 

 “고마워.”
 “헤, 헤헤…… 너무 좋네요.”

 

 솔직한 감상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신만 증표를 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젠 그 또한 평생의 반려가 될 것이라는 증표를 손에 끼고 있었다. 벨레트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런 기분이군.”
 “네?”
 “베르나데타가 자주 그랬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이제야 이해했어.”

 

 가뜩이나 쿵쾅거리며 뛰던 가슴이 더 시끄러워졌다. 벨레트의 말대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덩달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벨레트의 가슴 또한 저로 인해 뛴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눈물마저 솟을 지경이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벨레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사랑해요, 벨레트 씨.”
 “응. 나도 사랑해, 베르나데타.”

 

 그의 말에 망설임은 없었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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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받고 좋아하는 벨레트가 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심장도 다시 뛰니까 이젠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게 뭔지 알겠죠!

 

사실 자유 주제로도 뭔가 하나 더 쓰고 싶었는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관계로 ㅠㅠㅠ

일단 레트베르 강화 월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또 좋은 소재가 생각나면 열심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화 월간 주최해주신 테후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함께 멋진 글, 그림 올려주신 모든 분들 감사했어요

즐거운 한 달이었습니다 :D

 

레트베르 결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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