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의 의미

- 2023 베르나데타 생일 축하 기념

- 2부의 언젠가

- 우울한 분위기

 

 

 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자연스레 소름이 돋아 몸을 움츠렸다. 보호 장구는 생명을 보호할 수는 있을지언정 식어버린 몸을 추위로부터 지켜주지는 않았다. 아마 전장에 서 있는 다른 병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베르나데타는 애써 단전에서부터 힘을 주어 소리를 짜냈다.

 

  “모두 철수!”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부상자를 부축해 하나둘 발을 옮겼다. 베르나데타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축축이 젖은 장갑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쳐서 몸이 무거운 것인지, 실제로 옷이 물을 머금어 무거운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힘을 다 긁어모았다. 다리를 다쳐 질질 끌며 걷고 있는 병사를 부축하며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이 짠 전략은 언제나 유효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은 늘 발생했다. 겨울 날씨에 맞지 않게 추적추적 비가 내린 것도 그런 돌발 상황에 해당했다. 비바람은 가뜩이나 비거리가 짧아진 화살의 방향마저 틀어놓았다. 궁수 부대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전투는 승리했다. 전략이 뛰어난 덕도 있었고, 상대 부대 역시 갑자기 내리는 비에 우왕좌왕한 덕도 있었다. 베르나데타는 미끄러워진 바닥 때문에 상대 부대의 대열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부대를 진격시켰다. 멀리서부터 단숨에 다가와 급습하는 어쌔신 부대 상대로는 모험이었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비거리가 짧아졌다면 물리적으로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단거리용 활까지 장비하고 있던 궁수 부대는 재빠르게 장비를 바꿔 들고 상대를 겨누었다. 전술은 먹혀들었고 그들은 승리했다. 아군 병사에도 크고 작은 부상자가 다수 나왔지만 패하지 않았다.

 

  이것을 승리라 불러도 될까?

  매 전투가 끝나면 떠오르는 생각이 파도처럼 베르나데타를 집어삼켰다. 자신의 선택으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 현실이 괴로웠다. 예전처럼 방에 틀어박혀 자수나 놓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수고했어, 베르나데타.”

  “선생님.”

 

  부상병을 의무병에게 맡기고 돌아서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에 튄 피가 비에 뒤섞여 선생님의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아마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몰골일 테지만 새삼 소름이 돋았다.

 

  “이겼구나.”

 

  이것은 과연 승리일까.

  그런 의문에도 베르나데타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 사람의 역할이 컸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이 사람을 믿고 함께했다. 제게 늘 적절한 관심을 표하며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베르나데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겼다고 해도 되는 걸까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되물었다.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허투루 대답하거나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빗소리와 발소리, 각종 무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이건 어떤 정적에 속했다. 얼마간의 정적 후, 선생님이 입을 뗐다.

 

  “이긴 거야. 이긴 자가 살아남는 거니까.”

 

  그러면 나의 선택으로 원치 않게 죽은 이들은?

 

  “너는 성장했어. 단순히 이론이나 숫자로서 전쟁을 파악하지 않고 네 선택의 무게를 통감하며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괴로워도 선택하고 나아가는 너에겐 살아남을 자격이 있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까지 읽은 듯 대답하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쳤다. 기운이 없었다.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곧바로 목을 휘감아오는 죄책감에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살아남은 것을 기뻐해도 되는 것일까. 

  지끈지끈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베르나데타.”

  “네?”

  “생일 축하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온 탓에, 진흙 속에 파묻힌 듯 무겁기만 했던 고개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오늘이 며칠인지조차 잊고 있었으니 생일이란 사실도 당연히 기억하지 못했다. 전장에 나선 순간부터 생일은 사치스러운 소리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있자니 선생님이 덧붙였다.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비가 와서…… 가르그 마크에 돌아가서 줄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베르나데타는 어안이 벙벙했다. 생사의 경계를 가르는 행위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며 한없이 늪에 가라앉던 몸이 단숨에 단단한 평지로 끌어 올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일을…… 축하해도 되는 걸까요?” 

  “응. 적어도 나와 다른 친구들은 너를 축하하려고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눈물이 솟았다.

 

  “이렇게 누군가가 죽어도요?”

  “응. 그래도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가까운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그런 삶의 한 과정이겠지.”

 

  태어났다는 사실을 축하받는 행위가 곧 살아 있다고 외치는 행위인 것만 같았다. 이겼노라고, 내가 살아남았노라고 공표하는 셈처럼 느껴졌다. 살아남은 자신에게 너는 살아남아야 마땅하고 타당성마저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저도 그래도 되는 거예요?”

  “응. 너도 살아남은 사람이니까.”

 

  아마 이것은 선생님 나름의 위로일 것이었다. 고민하지 말고 너의 삶을 살라는 말 대신 생일 축하를 건네는 것이 선생님 방식의 위로일 테고, 그것은 동시에 베르나데타에게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위로였다.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빗방울에 섞여 티 나지 않을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생일을 맞이한 것이 반가웠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베르야 생일 축하한다...!!

아니 축하하는 거 맞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우울해도 되는 건가 싶고

베르가 성장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런... 이런 우울한 글이 나왔군요

그래도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사랑해 베르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