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어떤 하루
- 벨레트 x 베르나데타
- 현대 AU
- 이미 결혼한 사이!
이불 속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인지 눈물을 훔치는 소리인지 불확실했기에, 벨레트는 이불을 들쳐 보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바로 그 고민을 내려두었다. 경험으로 이럴 때는 굳이 파고들지 않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 이불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아내와는 같은 집에 살게 된 지도 1년이 지났다. 사귀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는 시간. 상대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언정 배려하는 방법은 분명히 알 만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벨레트는 이불을 들추는 대신, 다정하게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베르나데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팽팽하게 펼쳐져 있던 이불이 약간 느슨해졌다. 슬그머니 내려가는 이불 뒤에서 베르나데타의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눈까지 빼꼼 드러낸 베르나데타가 벨레트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빨간 것을 보니 예상대로 운 모양이었다.
“울지 마.”
“으으, 그치만…… 억울해요. 기껏 마감도 다 끝냈는데, 오늘 피크닉하러 가기로 한 것만 기대하면서 열심히 썼는데…….”
요 몇 주간 베르나데타는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출근하는 벨레트와 달리 베르나데타는 프리랜서 작가였다. 작가라는 일은 예술에는 문외한인 벨레트의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마감 시기가 가까워져 오면 베르나데타가 골머리를 앓는 일이 많았다. 이번엔 특히 더 그랬다. 몇 달 전부터 원하는 대로 내용이 안 풀린다며 울먹였는데, 마감이 다가와도 그게 제 맘처럼 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끙끙 앓은 탓인지, 마감을 마친 후 베르나데타가 드러눕고 말았다. 메일을 보냈다고 환하게 웃은 지 두 시간 만에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열이 오른 것이었다.
“피크닉은 다음 주말에도 갈 수 있어. 원한다면 평일에 휴가를 낼 수도 있고.”
“오랜만에 벨레트 씨랑 알콩달콩할 수 있었는데…….”
금세 또 베르나데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래도 아내는 아픈 것보다 데이트가 취소된 것이 더 억울한 듯했다. 벨레트는 베르나데타의 이마에 얹어놨던 물수건을 치우고 새 물수건을 얹어주었다. 얼굴에 난 식은땀을 살살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마에 입도 맞추고 싶었지만, 감기가 옮으면 안 된다고 빽 소리칠 것이 분명해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잔기침도 하는 아내의 목까지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병간호를 해주는 알콩달콩 이벤트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놀랐다. 아무래도 베르나데타가 쓰는 소설을 옆에서 쭉 읽었기 때문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눈물이 고여 있던 베르나데타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알콩달콩 이벤트’라는 말이 베르나데타의 가슴에 확 꽂혔을 것이었다. 벨레트는 허튼 공격을 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 그건 기뻐요. 헤헤…….”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벨레트는 똑같이 그녀에게 웃어주었다.
“다 나을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정말요? 약속이에요?”
“응, 약속해. 밥도 먹여주고 땀도 닦아주고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고 잠들 때까지 토닥여줄게.”
베르나데타가 배시시 웃었다. 부부가 된 지 1년. 예전 같았으면 부끄럽다며 손사래 칠 말에도 배시시 웃는 것을 보니 새삼 부부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베르나데타가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손을 뻗었다. 벨레트는 거기에 손을 얽었다. 열이 나서인지 평소보다 손이 더 뜨거웠다. 제 손도 뜨거운 편이라 썩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벨레트 씨 손, 기분 좋아…… 이렇게 잡고 있어요.”
머뭇머뭇 부탁하거나 과도하게 고마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던 벨레트가 수도 없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아내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응, 계속 여기 있을게.”
“다 나으면 꼭 피크닉하러 가요. 꽃구경도 하고 도시락 싸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응. 둘이서 담요 하나를 덮고서 손도 꼭 잡고 해 지는 것까지 보자.”
이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꼭 잡은 채, 효과를 발휘하는 약 덕분에 꾸벅꾸벅 눈이 감기기 시작한 아내를 보는 것처럼.
벨레트는 이제야 제대로 잠이 든 아내가 편하게 누울 수 있게 자리를 정돈했다. 아무리 힘든 마감 작업을 해도 좀처럼 아픈 법이 없던 아내가 드러누워서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아마 열이 올라 정신이 없는 게 아니었다면, 베르나데타도 벨레트가 당황해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베르나데타가 푹 잠든 것을 재차 확인한 후, 벨레트는 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이제부턴 당황한 마음에 서두르다 이것저것 엎지르고 넘어뜨려서 엉망이 된 거실을 정리할 차례였다.
“최대한 조용히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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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걸 쓰려고 했는데...?
베르가 아프네요?
하지만 행복한 부부의 일상 같은 느낌으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된 것은 제가 테니뮤 원정을 다녀오자마자
미친 마감 러시를 마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저는 아프지는 않지만 근육통과 손목 통증에는 시달리고 있습니다 ㅎ
레트베르 사랑해 결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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