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데타와 도로테아가 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는 이야기

 

 

 

  꿈 한 번 꾸지 않고 이토록 깊게 잠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늘 크고 작은 불안과 피해망상에 시달렸으니 악몽도 언제나 따라왔다.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 일쑤라 저택 내에 있던 가족이며 시종이며 가릴 것 없이 함께 고통을 받았다. 물론 아버지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방으로 침소를 옮겨버렸다. 그 사실을 안 것은 거의 한 달이나 뒤였다.

  아무튼 베르나데타 폰 발리는 기분이 좋았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정말 더없이 평화로운 밤이었다. 말로만 듣던 잠이 잘 오는 약을 먹기라도 한 듯…….

  불안이 엄습했다. 어제 뭘 하다 잠들었는지 떠올려보려 했으나 뿌옇기만 했다. 보통은 자수를 놓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자수를 놨던 것 같지는 않고, 책을 읽은 것 같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긴 했다. 시종이 가져다준 스튜를 대충 다 비웠던 기억이 났다. 그 뒤로 어머니가 차를 가져다주셔서…….

 

  차?

 

  그러고 보니 이 차가 불면증에 좋다느니,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았다. 유독 초조해 보이는 어머니를 보며 제가 간밤에 또 비명을 어지간히 질러댄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어라? 나 그 뒤에 일어나지 않았나?

 

  어렴풋하지만 일어나서 뭔가를 먹은 기억이 있었다. 너무도 흐릿한 탓에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뭘 한 건지, 누구와 있었는지, 어디였는지, 그런 구체적인 부분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하기보단 두려웠다.

  여전히 베르나데타는 눈을 뜨지 못했다. 처음엔 평화로웠던 밤을 좀 더 연장하고자 그랬고, 지금은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가 무서워서 그랬다. 어쩐지 술렁거리는 가슴이 좋지 않은 예감을 부채질했다. 베르나데타는 대충 손을 휘저어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얼굴을 침대에 묻어버리고 숨을 크게 뱉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베르. 눈 뜨면 매일 보던 그 방에 있을 거야. 당연하지.”

 

  주문이라도 외는 듯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린 뒤에야 베르나데타는 일어날 용기를 쥐어짰다. 제가 놓는 자수의 땀만큼이나 작고 작은 용기였기에, 엎어진 자세에서 팔로 침대를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은 여전히 꾹 감은 채였다.

 

  “셋 하면 눈 뜨자. 하나, 두우우울…… !”

 

  분명히 셋보다는 몇 초가 더 지났겠지만 베르나데타는 눈을 뜨는 데는 성공했다. 너무 놀라서 다시 눈을 감기는 했지만, 어쨌든 떴다가 감은 것이니 성공은 한 셈이었다.

  귓속이 쿵쾅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아예 머릿속 자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토할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머리를 기대고 있던 베개가 말끔했다. 분명 자수를 놓은 탓에 여기저기 꽃도, 나비도, 나무도 있어야 할 텐데 베개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었다. 베르나데타는 양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았다.

 

  베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납치? 납치인가요오오오? 아니지, 아니야, 납치라니?! 날 잡아서 뭐에 쓰려고? 문장? 역시 문장 때문에에에? 죽는 거야? 죽는 거구나! 아아, 적어도 내 방에서 죽길 바랐는데!

 

  마구 생각이 튀었다. 그리고 그렇게 튀던 생각은 한참 만에야, 그래도 혹시 어쩌면 아직 자기 방에 있는 걸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냈다. 오히려 거칠 것이 없어진 베르나데타는 덮고 있던 이불을 홱 걷어버리고 눈을 떴다.

  밝았다. 등 뒤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사실에 기함했다. 이곳은 베르나데타의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었다.

 

*

 

  도로테아 아르놀트는 뿌듯하게 방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제게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줄 곳이었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되짚을 필요까지도 없었다. 기지개를 한 번 쭉 편 도로테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젠 한결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국의 가극단 출신이니 당연히 흑수리반으로 배정됐지만, 가볍게 넘길 만큼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같이 수업을 들을 사람들이 귀족이라 해도 무서울 게 없었다. 여태까지 도로테아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정리하던 도로테아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옷가지를 떨어뜨렸다. 살면서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사실적인 비명이었다. 금방 뒷목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문을 닫아걸고 있어야 할까 고민이 드는데 다시금 비명이 들렸다.

 

  “무슨 일이람?”

 

  도로테아는 그런 소리를 무시할 만큼 냉혈한이 아니었다. 게다가 꽤 가까운 데서 들렸으니 어쩌면 옆방을 쓰는 학생이 낸 소리일 수도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도로테아가 씩씩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래도 예상한 대로 비명의 주인공은 옆방 학생이 맞는 모양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근처로 모여들어 수군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난 소리 맞냐는 둥, 안에서 무슨 일 있는 거냐는 둥 추측하는 말만 가득했다.

 

  “아아아아아아!”

 

  도로테아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처음 들은 비명이 놀란 소리였다면 지금 것은 아니었다. 좀 더 공포에 사로잡힌 듯, 절규하는 듯한 소리였다. 도로테아는 옆방의 문 앞에 방호벽을 세우듯 둘러선 사람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척척 걸어 나가 문을 홱 밀고 들어갔다.

  여자아이 혼자 벽에 박은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괜찮니?”

 

  도로테아가 말을 걸자 비명이 뚝 그쳤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부들부들 가늘게 떨던 여자가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덜덜 떨기 시작한 탓이었다. 도로테아는 갑자기 말을 걸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먼저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 , , 누구, 누구세요?”

  “난 도로테아 아르놀트라고 해.”

  “, , ,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세요오오오오오오!”

  “잠깐,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돼?”

 

  하지만 도로테아가 불만을 토로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소녀가 연신 도로테아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세요, 저는 별 도움도 안 될 거예요, 저 따위는 쓸 데도 없어요, 저 같은 건 없는 게 나은데, 히익, 죽는군요, 죽는 거군요.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느라 주변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도로테아는 섣불리 발을 디뎌서는 안 될 영역에 들어섰다는 걸 감으로 알았다. 무언가가 이 애를 착란 상태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도로테아는 상대와 똑같이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최대한 시선을 맞추려는 시도였지만 여전히 제게 사과를 하는 머리는 바닥에 닿을 듯 한참 낮았다.

 

  “, 너 이름이 뭐야?”

  “제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오오오!”

  “아니, 이름을…….”

  “베르나데타 폰 발리.”

 

  그 차분한 대답은 문밖에서 나왔다. 시선을 돌린 도로테아와 눈이 마주친 것은 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였다.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서 있던 사람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여자의 곁에는 키 큰 남자 한 명만이 서 있었다.

 

  “발리 가문에서 딸을 여기로 보냈단 소식을 들었어. 어머니께서 보내셨다고 했으니 아마 발리 교무경은 몰랐던 거겠지. 지금 상황을 보니 당사자도 몰랐던 모양이네.”

  “세상에.”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설명이었다. 도로테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당사자도 모르게 낯선 곳에 데려다 놓으면 누구라도 정신적으로 착란을 일으킬 법했다.

 

  “베르나데타.”

  “, , ,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아무 도움도…….”

  “괜찮아. 몰라도 돼. 도움을 안 줘도 돼.”

 

  이제 겨우 도로테아의 목소리가 닿는 모양이었다. 바닥을 향해 있던 베르나데타의 고개가 슬그머니 위로 올라왔다.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도로테아는 섣불리 손을 뻗는 대신 눈을 맞추었다. 다행히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베르나데타. 여긴 학교야.”

  “, , , 학교? 학교라고요? 베르가 왜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서 베르나데타를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정말인가요?”

 

  방울진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져 바닥에 번졌다. 아까보다는 숨소리가 훨씬 차분했다. 도로테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전히 베르나데타의 양손이 머리를 꽉 감싸고 있었다. 가볍게 손목을 잡는 시늉만 하듯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두 손이 스르륵 내려왔다. 도로테아는 꼭 아이를 칭찬하듯이 그 손을 짧게 도닥였다.

 

  “. 아무도.”

  “, 여긴 베르의 방이, 아닌데요. 제 방이 아니면, , 아니면 싫어요…….”

  “지금부터 여기를 베르나데타의 방으로 만들면 되지.”

  “, , 여기를요? 하지만 아, 아버지가…… …….”

  “당신을 여태까지 괴롭히던 그 누구도 여기선 못 괴롭힐걸. 여신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대수도원이잖아.”

 

  딱히 믿지도 않는 여신을 들먹거린 건 순간적인 기지였다.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탓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그럼……

  “. 괜찮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무서우면 언제든지 나 불러, 옆방에 있거든.”

  “…… 으아아아아아앙!”

 

  눈물이 터진 베르나데타가 덥석 도로테아를 끌어안았다. 그래도 도로테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겁에 질린 비명보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해방감에 젖은 통곡 소리를 듣는 게 나았다. 도로테아는 작은 등을 토닥였다.

  가르그 마크 사관학교의 다사다난한 첫날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첫날 자기 방이 아니어서 정줄 놓은 베르를 달래는 건

역시나 도로테아일 것 같고

학교에서 베르를 처음 방 밖으로 데리고 나온 사람도

도로테아일 것 같아  :Q

 

처음엔 에델일까 생각하긴 했는데...

왜냐면 에델도 고통 받던 시기가 있었잖아

근데 역시 도로테아일 것 같아

 

물론 그렇다고 에델은

베르가 구경거리가 되게 놔두진 않았을 것 같아서

구경꾼을 물리친 건 에델이었을 것 같음

 

흑흑 베르나데타 좋아해 ㅠ_ㅠ

사실 선생님은 모든 애들이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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