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괴물과 결혼한 아가씨

     치토세 센리 드림 (ver. 동화) (For. 메이님)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숲이 많기로 유명한 어느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대부분은 나무로 뒤덮인 채였고 영지의 정 중앙을 가로질러 커다란 강이 흘렀습니다. 숲 속에는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낮은, 그렇다고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높은 동산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강줄기에서 벗어나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많았지요.

 메이네 집은 나라에서 제일 큰 숲인 사천숲 속에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메이 세 명이 사는 이 안락하고 작은 집은 사천숲의 입구라고도 할 수 있는 보물시내의 왼편에 있었습니다. 햇살에 반사되는 물 표면이 보물 같다고 해서 보물시내라고 불렸습니다. 사천숲은 보물시내를 따라 올라갈수록 깊어지는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탓에 하늘이 보이는 곳이 네 군데 밖에 없다고 해서 사천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해가 높이 뜨면 아버지는 언제나 나무를 하러 깊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물을 캐러 조금 멀리 있는 양지로 나갔습니다. 집에 혼자 남은 메이는 냇가로 나와 빨래를 하거나 키 작은 나무의 열매를 따고는 했습니다. 메이는 냇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징검다리 사이를 솨아아 하고 흐르는 물소리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메이에게는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메이는 시내 반대편에 사는 유라네 집에 종종 놀러갔습니다. 시내라고는 해도 꽤나 폭이 넓었기 때문에 징검다리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물론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보물시내 마을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고민거리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사천숲에 나타난다는 괴물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사천숲 깊이 나무를 하러 들어간 마키 아저씨가 혼비백산해서 뛰어나왔습니다. 마키 아저씨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메이네 아버지였습니다. 메이네 아버지는 당황한 마키 아저씨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습니다. 마키 아저씨는 찻잔 밖으로 방울방울 차가 튀어나올 정도로 손을 떨었습니다. 차 몇 모금을 마신 후에야 마키 아저씨는 겨우 진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습니다.


 “이봐, 다나카. 나는 봤네.”

 “무엇을 말인가?”

 “괴물 말일세!”


 메이는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손에 들었던 그릇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메이네 아버지는 장난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마키 아저씨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습니다.


 “덩치는 곰처럼 엄청 컸다네. 하지만 생긴 건 사람이랑 엄청 비슷하게 생겼었지. 거적때기를 둘러쓴 것처럼 보였어. 머리에 엄청 털도 많았다네! 그건 꼭 괴물이었어.”


 메이네 아버지는 매우 진지한 마키 아저씨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메이네 집에서 나설 때까지도 마키 아저씨는 괴물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이네 아버지는 그저 피곤해서 잘못 본 것일 거라고 마키 아저씨를 달랬습니다.

 그 후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아랫마을에서 올라온 봇짐장수가 숲 속에서 괴물을 봤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봇짐장수 역시도 마키 아저씨가 본 것과 비슷한 괴물을 봤다고 했습니다. 이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이라는 게 그렇듯 덧붙이고 덧붙여져서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사람처럼 생겼다던 괴물은 나중엔 곰처럼 털이 잔뜩 난 야수 혹은 늑대인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일파만파 커져가는 괴물 이야기에 무서워진 사람들은 사천숲에서 먼 곳으로 하나둘씩 이사를 갔습니다. 마지막까지 메이네와 함께 있어주던 유라네 역시도 어린 동생의 성화에 결국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보물시내에는 메이네만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메이네 아버지는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직접 본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공포심 때문에 자신이 본 것을 왜곡하기 쉽단다.”


 메이가 무서워하자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입니다. 메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밤중에 냇가에 나오면 바람 소리가 엄청 무섭게 들릴 때가 있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자 메이는 괴물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보나마나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를 보고 착각한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메이네 가족은 그대로 사천숲 입구 보물시내 옆에서 살았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흐른 어느 날, 평소와 똑같이 아버지는 나무를 하러 숲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나물을 캐러 양지로 나갔습니다. 메이도 냇가에 나와 옷가지 몇 벌을 빨았습니다. 집 뒤의 작은 나무에 옷을 널어놓고 메이는 다시 냇가로 나왔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 바로 보이는 집 문을 두드려 보아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 일이 없어 메이는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어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첨벙, 시내에 발을 담그니 온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워낙 물이 깨끗해서 물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자신의 발을 훤히 다 볼 수 있었습니다. 메이는 허리를 잔뜩 숙여서 동그랗고 예쁜 조약돌을 찾아보았습니다. 자그락자그락, 발밑에서 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조약돌을 하나둘 주워가며 보물시내를 따라 오르다보니 메이는 어느새 사천숲 안에 들어왔습니다. 메이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작고 아담한 메이네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온 후였습니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고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람이 부는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문득 무서워진 메이는 크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새가 함께 짹짹거려 주었습니다. 메이는 뒤로 돌았습니다. 자신이 오던 방향과 정 반대로 다시 걸어가면 집이 나올 것이었습니다. 자그락자그락, 다시 돌들이 부딪혔습니다.


 바스락!


 메이의 왼쪽에 있던 덤불에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메이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리가 나는지 듣기 위해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메이는 큰 바람이 불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갔을까요.


 바스락!


 다시 메이의 왼편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덤불이 흔들리는 것도 함께 보았습니다. 메이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덤불에 다가가는 대신 메이는 조그맣게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이는 분명히 덤불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사천숲에 사는 동물일까요? 문득 메이는 소문의 괴물을 떠올렸습니다. 혹시나 그런 괴물이 정말로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메이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습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덤불이 부스럭댔습니다.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모양이었습니다. 메이는 잔뜩 긴장해서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좀 더 나더니 덤불 뒤에서 커다란 형체가 움직였습니다. 그 커다란 형체는 아직 몸을 다 일으킨 상태가 아니었는지 점점 커졌습니다. 아뿔싸, 걱정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저 형체는 마키 아저씨가 말했던 괴물인가 봅니다. 메이는 지금부터 달려서 도망을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무섭기 때문에 왜곡해서 볼 수 있다는 말 말입니다. 그래서 메이는 무섭더라도 한 번 괴물을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몸을 일으키는 형체를 지켜보았습니다.


 “안녕.”


 놀랍게도 괴물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메이는 무심결에 손을 펴서 입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메이가 쥐었던 조약돌이 시냇물로 떨어져 퐁당 퐁당 소리를 내었습니다. 덤불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괴물은, 아니 이제는 괴물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요. 그 형체는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매우 크고 덩치도 매우 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머리카락이 엄청 부스스하게 많이 나서 하늘 위로 솟은 상태였습니다. 이걸 보고 마키 아저씨는 털이 많이 났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옷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꾀죄죄하고 낡은 옷도 괴물처럼 보이게 했지만 말입니다. 메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안녕.”


 괴물, 아니 키가 매우 큰 사람은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앉았습니다. 높이 치올렸던 고개를 내리며 메이는 목 주변을 주물렀습니다.


 “넌 누구니?”

 “내는 치토세 센리다.”


 키가 큰 사람은 치토세 센리라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메이는 모두가 괴물이라 오해했던 이 커다란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내 안 무섭나.”


 조금 다른 말투를 썼기 때문에 메이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괴물인 줄 알았던 거대한 형체가 그냥 평범한(많이 크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것입니다.


 “니는 누고?”

 “난 다나카 메이야. 저기 아래 보물시내 옆에 살아.”


 치토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난 이제 집에 갈 건데 데려다 줄래?”

 “좋제.”


 치토세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치토세의 몸집이 워낙 커다랬기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높은 나무 위에서 새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치토세의 어깨에서 나뭇잎이 몇 장 떨어졌습니다. 메이는 왠지 든든해진 기분이었습니다. 진짜로 괴물이 나타나거나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시내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메이는 여전히 시내 안에서 참방참방 거리며 물을 튀겼고, 치토세는 진흙 색으로 물든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그 옆에서 걸었습니다. 메이는 심심해서 치토세에게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치토세가 왜 사천숲을 돌아다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내는 여 산대이.”


 치토세의 말에 메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키도 덩치도 매우 크긴 했지만 치토세가 혼자서 숲에 살아도 되는 어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메이가 놀라서 두 눈을 깜빡거리며 올려다보자 치토세가 하하 웃었습니다. 치토세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치토세가 살던 마을에는 키가 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치토세의 키가 쑥쑥 자라 어느새 어른의 키도 뛰어넘고 웬만한 나무와 키가 비슷해질 정도로 커지자 마을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요. 메이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치토세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놀림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돌팔매질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것과 다르게 생긴 것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 치토세는 마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가 치토세를 따라 떠날 수는 없었지요. 치토세의 부모님은 치토세가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사천숲에 그를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숲 깊은 곳에 그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뒤로 치토세는 사천숲에서 혼자 열매를 따먹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습니다. 기나긴 이야기를 듣고 난 메이는 코를 훌쩍였습니다.


 “힘들었겠다.”

 “사천숲은 좋대이. 사람도 안 오니께.”


 두 사람은 어느새 사천숲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언제나 메이가 뛰놀던 보물시내가 보였습니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저 쪽 언덕 너머에 걸렸습니다. 하늘이 홍시 색으로 물들어서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내는 인자 간데이.”

 “내일 또 놀러 갈게!”


 손을 흔드는 치토세에게 메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치토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터벅터벅, 느린 발걸음으로 치토세가 다시 시내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메이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로 메이는 거의 매일 사천숲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치토세와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혼자 사는 치토세가 얼마나 심심할지, 누구와 대화는 할지, 열매 말고 다른 것도 챙겨먹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치토세가 입은 거적때기 같은 옷도 너무나 신경 쓰였습니다. 온갖 때를 탄 데다 나뭇가지에 걸려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는 전혀 그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진흙 범벅인 신발도 탐탁지 않았죠. 하지만 치토세의 몸에 맞을 만큼 커다란 옷이 메이네 집에는 없었습니다. 커다란 발에 맞는 신발도 없었습니다. 메이는 집에서 챙겨온 빵과 구운 고기 조각을 치토세에게 선물하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언제나처럼 메이는 사천숲에 들어가 치토세와 놀다가 함께 시내를 따라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사이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메이는 그것이 나무를 찍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메이는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 튀어가듯 그 소리를 쫓아갔습니다. 치토세도 이제는 당연하게 메이의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메이가 세 걸음을 걸어갈 때 치토세는 단 한 걸음을 걸었지만 말입니다.

 어느 정도 걸어갔을까요.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메이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빠르게 뛰어갔습니다. 메이의 앞에 나무를 하는 나무꾼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나무꾼은 아무래도 저 아래 언덕 너머로 이사 간 혼다 아저씨 같았습니다. 메이는 놀라서 홱 뒤돌았습니다. 오지 말라는 뜻으로 연신 치토세에게 손을 흔들어보였습니다만 치토세는 이미 메이에게 충분히 가까웠습니다. 치토세의 커다란 키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솨아아 소리를 냈습니다. 혼다 아저씨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괴, 괴물이다!”


 놀란 혼다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저씨는 나무로 향했던 도끼를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저씨가 도끼를 휘두를까봐 메이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러다가는 또 치토세가 괴물로 몰려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이, 이리 오너라, 메이! 위험해!”

 “아니에요, 치토세는 위험하지 않아요!”

 “괴물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치토세는 괴물이 아니에요!”

 “괴물에게 홀렸어! 홀렸다고! 저리가!”


 아저씨가 앞쪽으로 크게 도끼를 휘둘렀습니다. 메이와 치토세가 선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이긴 했지만 메이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치토세와 통 부딪치자 치토세가 메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다 그런데이. 가재이.”

 “도망가면 안 돼, 치토세!”


 치토세는 메이를 끌어안은 채로 뒷걸음질 쳤습니다. 메이가 팔다리를 버둥거렸습니다. 이대로 또 도망가 버리면 치토세는 영영 괴물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메이는 그런 슬픈 상황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치토세는 자신과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메이가 자꾸 버둥거리자 결국 치토세는 메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치토세에 대해 몰라서 그런 거잖아. 설명하면 알아줄 거야.”

 “괴물이 메이를 홀렸다!”


 혼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사천숲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파사삭 소리가 여러 번 나더니 점점 멀어졌습니다. 아저씨가 마을로 돌아가려는 모양입니다. 메이는 겁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올까요? 치토세를 해칠까요? 해치지 않고 쫓아낸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쫓겨난다면 치토세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메이, 집에 가그래이.”

 “싫어, 치토세 혼자 두고는 안 갈 거야.”

 “내 괜찮타. 메이 빨리 가그래이. 다치믄 안 된데이.”

 “싫어, 안 가!”


 메이는 치토세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치토세를 연신 잡아당기는 메이에 치토세는 할 수 없이 발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메이가 앞서 인도하는 대로 따라 걸었습니다.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치토세의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도망칠 수는 없었지만 당장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무서웠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치토세가 사는 집은 어쩌면 사람들이 찾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기댈 것이라고는 운 밖에 없었습니다. 메이는 속으로 사천숲에 산다는 신령님을 몇 번이나 불렀습니다. 제발 치토세를 도와주세요. 치토세는 나쁜 괴물이 아니에요.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치토세는 얌전히 메이에게 끌려 왔습니다. 이미 여러 번이나 왔던 치토세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메이는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메이와 치토세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혹시 창문에 치토세가 비칠지도 모르니까요.


 “치토세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지켜줄게.”

 “메이는 작다 안카나.”


 메이는 양 볼을 뚱하니 부풀렸습니다. 이 와중에 농담이라니 치토세는 참 속도 편한 모양입니다. 씩 웃고 난 치토세는 톡 손가락으로 메이의 볼을 찔렀습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고맙데이.”


 메이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코를 훌쩍였습니다. 이렇게 상냥하고 따뜻한 괴물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이 치토세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괴물이라고 부르는 게 못내 속상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사람들도 분명 치토세를 좋아해 줄 텐데 말이죠.

 사천숲 너머 저 멀리로 해가 넘어갔습니다. 창밖으로 비치던 세상이 주황색에서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어두워지자 치토세가 초를 찾아 불을 켰습니다. 좁은 집이 촛불로 은은하게 빛났습니다. 메이는 초를 꺼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됐습니다. 이 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 와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정말로 메이가 괴물에게 잡혀가 홀려버렸다고 생각해서 치토세를 해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온갖 걱정 때문에 메이는 마음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고프단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시끄러운 나뭇잎 소리가 들렸습니다. 메이는 잔뜩 긴장해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치토세는 메이의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메이의 작은 몸이 치토세의 커다란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품에 안겼더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어딘지 든든하게 느껴졌지요. 점점 시끄러운 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모두 섞여서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밖이 밝아져 갔습니다. 사람들이 결국 이 집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점점 커지던 소리는 어느 순간 동시에 멈췄습니다. 밖은 이미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괴물은 메이를 내놓거라!”


 혼다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메이는 치토세의 품 안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창밖으로 불꽃이 일렁였습니다.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보여서 메이는 다시 겁이 났습니다.


 “메이, 안에 있니? 메이!”

 “엄마다.”


 메이는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또르르 또르르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메이의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치토세는 상 위에서 손수건을 집어 메이에게 건넸습니다. 메이는 손수건을 양손에 쥐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문 밖으로 나가도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치토세만 혼자 놔두고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메이, 나가래이.”

 “같이 나가자.”

 “안 된다.”

 “아니야, 같이 가야 돼. 괜찮을 거야.”


 치토세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지만 메이는 완강했습니다. 치토세가 함께 나가지 않는다면 메이는 언제까지고 이대로 버틸 작정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치토세는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메이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습니다. 조심스럽게 메이를 일으켜준 뒤 치토세도 따라 일어섰습니다. 쑥 올라온 치토세의 상체가 창문으로 보였는지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괴, 괴물이 움직인다!”

 “조용히 해보게, 혼다! 저건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메이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은 문 앞에 서서 서로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비록 작은 메이의 손이 치토세의 커다란 손을 절반 밖에 잡지 못했지만요. 메이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습니다.


 “아빠, 저 나가요.”


 웅성거리던 바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메이 대신 치토세가 손을 뻗었습니다. 가볍게 힘을 주자 삐그덕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습니다. 눈앞이 환했습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자 두 사람 모두 눈을 찡그렸습니다. 하지만 잡은 손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메이, 메이! 괜찮니?”


 어머니가 앞으로 뛰어나오려고 했지만 옆에 선 사람이 어머니를 붙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위협적으로 횃불을 앞으로 휘둘렀습니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횃불을 똑바로 쥔 채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칠게 숨을 쉬느라 어깨가 높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난 괜찮아요, 엄마. 치토세는 괴물이 아니에요!”

 “메이, 당장 이리 와! 그 괴물이 널 해치면 어쩌려고 그래!”


 혼다 아주머니가 호들갑스럽게 말했습니다. 메이는 여전히 치토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앞으로 나왔습니다.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긴 했지만 아버지는 매우 침착했습니다.


 “자네는 누군가? 우리 메이를 해칠 건가?”

 “아입니더. 지는 치토세 센리라 캅니더.”

 “치토세는 착한 애예요! 누굴 다치게 하지 않는다구요!”


 메이가 자꾸 치토세의 편을 들자 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메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메이가 걱정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메이와 치토세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메이는 치토세를 끌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사람들이 동시에 우르르 뒤로 물러났습니다. 바닥에서 먼지 구름이 일었습니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채였습니다.


 “메이는 괜찮니?”

 “네, 괜찮아요. 저랑 같이 놀았어요, 보물시내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고! 치토세는 그냥 커다란 사람이에요, 아빠.”

 “그래, 아빠 눈에도 보이는구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아버지는 치토세를 그다지 겁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치토세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허리까지 꾸벅 숙여가며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더니 놀란 얼굴을 했습니다. 메이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겁에 질린 상태였습니다.


 “이보게, 다나카! 그대로 둘 건가?”

 “이 사람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네. 우리 메이도 멀쩡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냥 둘 순 없다네!”

 “아무도 해치지 않은 자를 괴물이라고 내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저, 저렇게 커다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무섭다구요! 돌연변이 아니에요?”


 똑바로 선 치토세의 어깨가 축 늘어졌습니다.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메이가 올려다본 치토세의 얼굴이 여태까지 본 얼굴 중에 제일 슬퍼 보였습니다. 메이는 그 때까지 잡은 채였던 손을 놓았습니다. 치토세가 시선을 돌려 메이를 보았습니다. 메이는 그대로 치토세를 끌어안았습니다. 완전히 치토세의 품에 폭 들어가 버린 메이는 치토세의 등 뒤에서 손깍지를 끼었습니다. 치토세의 손이 부드럽게 메이의 등을 토닥였습니다. 이 말없이 조용한 위로에 사람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치토세는 그저 너무 클 뿐,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들 돌아가게. 이 자는 아무도 해치지 않을 걸세.”


 못마땅한 듯 불평하는 소리가 몇몇 터져 나왔지만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잔뜩 내밀었던 횃불도 다시 하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대로 모두가 천천히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치토세의 집 앞에는 이제 치토세와 메이, 아버지, 어머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조금 겁이 나는지 아버지의 등 뒤에 반쯤 몸을 숨긴 채로 치토세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든 횃불이 어두운 사천숲을 밝혔습니다.


 “늦었으니 우리도 돌아갑시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메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메이는 치토세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빠, 치토세도 함께 가면 안 돼요? 낮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우리 집에는 그가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침대가 없는데.”

 “지는 괜찮슴더.”

 “저녁 같이 먹어요.”


 아버지의 등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반만 고개를 내밀고 치토세를 바라보았습니다. 치토세는 두 눈을 깜빡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메이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래, 가세나. 잘 곳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거야.”

 “저, 감사합니더.”


 치토세가 다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경계심을 풀었는지 허허 웃었습니다. 치토세와 메이, 두 사람이 걷던 시내를 따라 이제는 네 사람이 걸었습니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바람에 지저귀는 나뭇잎 소리도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횃불에 일렁이는 그림자조차도 메이를 무섭게 하지 못했습니다. 메이는 세상 누구보다도 든든한 사람들과 함께 있었으니까요. 절로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메이는 꾹 참았습니다. 밤중의 사천숲에서는 메이의 노랫소리도 누군가를 무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 시내를 따라 걸은 뒤에야 모두 사천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보물시내와 따뜻한 불빛이 빛나는 메이네 집이 그들을 맞이하였습니다. 메이네 가족 세 명과 치토세까지 집 안에 들어오자 마치 집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부산스럽게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집 안에는 따뜻한 수프 냄새가 퍼졌습니다. 네 사람은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습니다.


 “자, 수프를 들어요. 구운 감자도 있으니 마음껏 먹도록 해요.”

 “감사함더.”


 그 저녁식사는 매우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치토세가 자신의 손에 비해 너무도 작은 숟가락을 휘게 만들어버린 걸 빼고는 말이죠. 이야기꽃이 집안에서 만개했습니다. 메이는 치토세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메이와 어머니는 힘을 합쳐 치토세가 입을 만한 커다란 옷을 만들었습니다.


 “입어봐, 치토세!”

 “고맙데이.”


 치토세가 드디어 그 거적때기를 벗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메이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뒤돌아섰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탄성을 내었습니다. 메이가 돌아보자 치토세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온갖 색이 뒤섞여서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옷은 치토세에게 딱 맞았습니다. 적어도 이제 치토세가 괴물처럼 보이는 일은 없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치토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메이에게도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메이 없었으믄 내 안즉 거 있었을 지도 모른데이. 메이, 윽수로 고맙데이.”

 “그야 치토세는 괴물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니까!”


 치토세가 메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메이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치토세를 꼭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보물 시내는 이제 메이네 가족 네 명이 든든하게 지키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살았던 것처럼 치토세는 메이네 가족과 어울렸습니다. 함께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잠들었습니다. 메이네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하는 치토세를 본 사람들은 하나둘 두려움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치토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치토세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리운 집을 향해 돌아왔습니다. 보물시내는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재잘재잘 울려 퍼지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처음 괴물을 봤다고 말한 마키아저씨네를 마지막으로 보물시내의 모두가 되돌아 왔습니다.

 치토세와 메이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물론 두 사람은 알콩달콩 보물시내와 사천숲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많은 날이 지난 어느 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제는 치토세를 든든하게 여기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축하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성대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알콩달콩 예쁘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2015.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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