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12 <너의 빨강구두>

「다녀왔어」

유키무라 세이이치 드림






 기다리는 것은 나일까, 너일까.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떠나갔고 내가 남았다.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그를 배웅하러 공항에 갔을 때에도 그런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내일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다녀와.”하고 말했다. 대답으로 “다녀올게.”를 들었다. 우는 대신 손을 흔들어주면서 웃었다. 게이트 너머로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쳐다보았다.

 유키무라 세이이치. 그리고 나. 두 사람이 서로 좋아했다. 그러다가 그가 떠났다. 남들이 말하는 유학, 뭐 그런 거. 그때쯤 우리 사이는 굉장히 이상했다. 헤어진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사귀는 중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그런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확연하게 틀어질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나둘 맞지 않는 성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서 신경질을 부렸고 그는 성격 특유대로 말을 비꼬았다. 그렇게 조금씩,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설렘은 남지 않고 의무감만 남았다.

 그의 이름 네 글자를 쓸어내렸다. 그리운 이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잘 사는지 그런 건 잘 모른다. 나는 그냥 그가 떠난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떠나는 뒷모습만 보았다. 종종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런 공부를 했어. 너는 어때? 그러면 이랬어. 이렇게 지내. 그런 짧은 답장을 했다. 마치 명절 때나 되어서야 가끔 연락하는 어중간한 친구 사이 같은 느낌. 난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이 관계가 끝나길 바라는 걸까. 스스로도 잘 몰라 헤매는 게 싫었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떠난 게 그라고 해서 꼭 기다리는 게 내가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이상한 관계를 만든 나 때문에 그가 떠난 건지도 모른다. 아니, 나를 떠나보낸 건지도 모른다. 돌아가야 하는 건 그가 아니라 나인게 아닐까.


 「유키무라가 돌아왔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 거라고 생각한다. -야나기군」


 그동안 띄엄띄엄 연락하면서 돌아오는 날 한 번 묻지 않았다. 같은 땅 위에 있다 이거지? 그에게 무엇도 묻지 않았으면서, 보고 싶다는 말 따위 한 번도 한 적 없으면서 왜 눈물이 쏟아질까. 무작정 달렸다. 그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처럼 설렘이 가슴 속에서 요동쳤다. 뭘 입었는지, 뭘 신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슨 머리 꼴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작정 달리고 달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는 그대로였다. 나도 그대로였다. 그냥 그 그대로가 조금씩 드러나고 드러나서 차이를 만들었을 뿐인데. 그걸 모르고 내가 도망갔던 것 뿐이었는데.


 “세이이치!”


 꽤 긴 시간, 입에 담은 적 없던 이름이었다. 뱉어내고 나니 감당이 되질 않았다. 간만에 보는 그의 작업실이, 그 건물이, 전부 세이이치를 담은 것만 같아서 숨이 차올랐다. 세이이치. 세이이치. 작업실 문은 열린 채였다. 벌컥,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이이치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캔버스 앞에 그가 서 있었다. 잠깐 놀란 눈을 하는가 싶더니 그가 웃었다.


 “어서와.”

 “세이이치.”


 역시. 기다리던 건 내가 아니었어. 천천히 발을 떼었다. 조심조심 한걸음씩 내딛었다. 세이이치가 손을 내밀었다. 방금 전에도 붓을 만졌는지 손에 물감이 묻은 채였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세이, 세이이치.”

 “응.”

 “다녀왔어.”

 “늦었네.”


 손을 마주잡았다. 와락 품으로 안겨 들어갔다. 토닥토닥. 내 등을 도닥여주는 그의 손이 따뜻했다.


 “나도 다녀왔어.”




(201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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