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면라이더 더블 48화의 중요 네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화까지 전부 보신 분만 읽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필립."

 

 조금, 겁이 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그래, 하며 대답도 했지만 쇼타로의 저 부름에는 겁이 난다. 다시는 들을 수 없겠지. 나는 계속 여기에, 너와 함께야, 쇼타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확신을 할 수가 없다. 데이터일뿐인 내가 쇼타로를 계속 지켜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계속 지켜보고 싶은데.

 쇼타로. 쇼타로. 쇼타로.

 이름을 되뇌일수록 마음이 약해진다. 훌쩍거리는 그의 등을 토닥이고 싶지만 내 손이 너무 떨려서 그만둔다. 미소 지으면서 떠나고 싶다. 마지막 모습은, 가장 행복해보이고 가장 환한 얼굴로 기억되고 싶다. 쇼타로가 평생 기억하게 될 모습이잖아?

 

 "그럼."

 

 벨트에 손을 뻗는다. 익숙한 메모리가 손에 잡힌다. 사이클론. 항상 변신을 할 때 사용하던 이 메모리. 이제 사용할 일이 없는 메모리. 죠커와 트리거, 메탈은 짝을 잃겠지. 쇼타로도 짝을 잃는 걸까. 난 계속 쇼타로의 짝이고 싶은데. 계속. 계속.

 파트너였으면 좋겠어.

 메모리를 뺄 수가 없다. 메모리를 손에 잡을 수가 없다. 겁이 난다.

 

 "잠깐만."

 

 흠칫 놀라는 순간 손끝이 메모리에 닿는다. 메모리에서 정전기라도 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쇼타로의 손이 내 손을 덮는다.

 

 "내가 하게 해줘."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최대한 참는다. 웃자.

 

 "아아. 그래."

 

 최대한 부드럽게, 부자연스럽지 않게 천천히 손을 빼낸다. 사실 자신이 없다. 메모리를 뺄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쇼타로와의 이 관계를 끝낼 자신이 없다. 쇼타로는 그걸 알고 이러는 걸까. 알지도 모르지, 우린 둘이서 하나인 가면라이더니까. 이젠 혼자서 가면라이더가 될 쇼타로를 바라본다. 우느라 날 돌아보지 않는다. 쇼타로도 힘들겠지. 내가 쇼타로를 보는 게 힘든 것처럼. 그래도 다행이야. 와카나 누나를 구해서. 쇼타로가, 내 의뢰를 들어줘서. 평생, 아니 데이터가 되어서도 잊지 않을 거야. 고마워, 쇼타로. 말로 만들지 못하고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쇼타로가 울먹인다.

 

 "해제한다."

 

 그의 손이 사이클론 메모리를 붙잡는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안녕. 쇼타로.

 

 "안녕."

 

 목소리가 떨렸던 것도 같다. 웃었지만 제대로 웃은 건지 잘 모르겠다. 사이클론 메모리가 천천히 빠져나온다. 발끝부터 조금씩 사라진다. 초록색 빛이 눈부시다. 무섭다. 쇼타로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눈물이 난다. 이제 눈물들도 데이터 속에서 사라지겠지. 안녕. 파트너.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난 평생 가도 하프보일드일 모양이다. 하긴 필립이 사라지면 이제 계속 하프보일드 밖에 안 되겠군. 변신을 풀어야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진짜로 사라지나, 이녀석?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하면 몇대 패주고 웃어줄 자신이 있는데. 필립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몰라 돌아볼 수가 없다. 젠장. 전혀 하드보일드하지 않잖아.

 

 "필립."

 

 간신히 내뱉은 말이 겨우 이름이라니 멍청한 자신을 한 대 패주고 싶다. 하지만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도 계속 대답해줄 것 같아서 그 외의 것은 떠올릴 수가 없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젠장. 젠장! 최고로 멋있는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

 

 필립의 손이 벨트로 내려온다. 언제나 가볍게,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이 이렇게까지 끔직하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란다. 필립의 손이 사이클론 메모리 위에서 멈춘다. 덜컥 겁이 난다. 정말 사라진다고?

 

 "잠깐만."

 

 나도 모르게 필립의 손을 잡는다. 이렇게 멀쩡하게 필립의 손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데 겨우 전자데이터가 되어버린다니 믿을 수가 없어.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내가 하게 해줘."

 

 필립의 마지막은 내가 하고 싶다. 이 변신이 해제되면 필립은 사라진다.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가 하는 것보다도 더.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제길. 언제까지고 함께 있어줄 것 같던 내 파트너가 사라진다고. 

 

 "아아, 그래."

 

 또 평소처럼 웃고 있겠지, 필립 녀석. 내 손 밑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필립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진다. 눈물이 더 솟아난다. 무언가 정말 방법은 없는 걸까. 단념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필립, 너 정말 사라지는 거냐? 솟아나는 눈물 때문에 숨이 격해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필립을 보내줘야 한다. 평생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난 이제 혼자서 가면라이더가 되겠지. 파트너가 없는 반쪽자리 가면라이더. 하지만 하나로서 온전해야 하는 가면라이더. 어깨가 무겁다. 어깨보다 가슴이 무겁다.

 

 "해제한다."

 

 힘을 내어본다. 메모리에 손을 얹는다. 필립을 보고 싶으면서도 볼 수가 없다. 사이클론 메모리를 손으로 붙잡는다. 이젠 정말 안녕이야, 필립. 제길. 고마웠어. 내 파트너.

 

 "안녕."

 

 필립이 운다. 이미 진작부터 울고 있었겠지만 필립은 이제야 눈물을 보인다. 초록색 빛이 눈부시다. 저 빛들을 모아다가 어딘가에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건 필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필립의 시선이 느껴진다. 안녕. 내 파트너.

 반쪽자리 벨트는 생각보다도 훨씬 가볍다. 가슴도 그만큼 가벼우면 좋으련만.

 

 

 

(2013.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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